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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Feb 12. 2022

135 나 여기, 너 거기 있다면

라오스 코너스  이스테이트 카르티모

초콜릿을 처음 먹었을 때 마장세는 정신이 아득했다. 미군 병장은 구두 닦은 값으로 동전 세 개를 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병장은 주머니를 뒤져서 먹다 남은 초콜릿 반토막을 땅바닥에 던졌다. 마장세는 초콜릿을 집어서 포장지를 벗겼다. 앞니로 잘라먹은 자국이 나 있었다. 마장세는 초콜릿을 입안에 넣고 혓바닥으로 빨다가 보채는 이빨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씹어서 삼켰다. 아,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그날, 새롭고 놀라운 맛의 세계가 마장세의 몸속에서 문득 열렸다. 햇빛이 강렬한 날이었다.


 공터에서 - 김훈, 158쪽. 초콜릿의 선명하고 구체적인 맛에 마음의 헛것이 더 도드라졌을 것이다. 시대의 암울함도 있었지만 가난한 자는 그때도 여전히 힘들었으리라. 마장세는 주인공 마차세의 형이다. 형제의 인연은 장소와 공간을 버린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들러붙어 있는 가난한 기억은 남루하지만 현실을 더 건강하게 버티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머뭇거리고, 허겁지겁하지만 단호하게 살아내고 있다. 마차세는 그렇게 살고 있다.


 처처에 꽃, 그 색도 눈부시다. 상상으로 봄꽃을 그린다. 밤바람은 아직도 싸하다. 살랑살랑 커피 향을 타고 번지는 상상의 꽃내음은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봄의 뒷모습에 반다. 겨울은 지겹고 아직도 봄은 멀었지만 그래도 겨울은 간다. 안면홍조 갱년기 줌마는 불어오는 꽃바람, 숨어서 노래하는 새소리, 떨어지는 꽃잎의 수런수런 거리는 삭임을 기다린다. 모두 사랑스러울 것이다.


 수시로 자주 분노하고 먹어도 헛헛한 속을 가진 까탈스러운 줌마는 겨울이 힘들다. 도도이 푸른색을 이고 흰 꽃을 달고 오면 밖으로 나갈 구실을 찾을 것이다. 정기적인 히스테리도 잠시 조용해질 것이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산방산 둘레길을 갈 것이다.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제주 올레 제10코스를 오는 봄에 갈 것이다.  길을 걷고 나면 기심이 말라버린 버석한 마음에 싹이 돋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스러질 것 같은 마음에 노란 꽃이 필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곡선 바위들의 구멍 난 틈을 보며 마음의 구멍을 채울 것이다. 오랜 세월 다져진 암석들의 유려한 자태를 보며 마음의 넓이를 넓히고 미운 사람에 대한 서운함을 날려 보내고 올 것이다. 봄꽃이 내미는 손을 잡을 시간이다.


 늘의 커피는 부드럽고 진하다. 가는 겨울에 발을 담그고 신록이 번져가는 봄을 미리 본다. 살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면 그때는 그냥 웃을 것이다. 어디서든 웃을 것이다. 티를 내지 않고 웃을 것이다. 동안 혼란과 소란스러움은 지나갈 것이다. 늘의 커피는 라오스 코너스 이스테이트 카르티모. 라오스는 어떤 언어를 쓸까? 라오스 말이나 배울까? 알지 못하는 언어에 집중한다면 흔적조차 사라진 호기심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설하고 오늘의 커피는 인간의 노동만이 의미 있는 고산의 농장에서 꾸준한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커피다. 근면한 노동과 지속적인 관리로 품질이 향상된 커피는 까다로운 입맛을 이렇게나 즐겁게 한다. 씨를 품은 해라바기 얼굴색으로 찰랑거리며 지중해 햇살 가득 품은 외로운 맛을 낸다. 너무 단정하여 되려 복잡하고 선명한 맛이다. 고소하고 반짝반짝 쌉쌀하다. 긴 인연을 인정하며 가난한 슬픔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마장세 형제를 위로하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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