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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Mar 10. 2022

149 정신없이 달리다가 마주치는 바다

코스타리카 몬테 솔리스

완전한 망각이란, 사랑 안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보존. 그러니 이 완전한 망각 속에서, 아름다워라, 그 시절들. 잊혔으므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의 선사시대. 이제 우리에게는 그 시절의 눈이 없지. 그 시절의 귀와 입과 코가 없지. 스무 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너무나 끔찍한 얼굴로 우린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 한번 살았던 세계를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가는 유령들처럼. 그 누구에게도 결코 '학살'되지 않는 존재로 우리는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장수하고 나서도 그 뼈와 머리카락들 오래오래 썩지 않고 튼튼하게 남아 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세희를 잊고, 사랑하는 서연을 잊고, 이젠 우리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잊고, 우리가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것, 우리가 적이 라거나 환영이라거나 공포라고 불렀던 뭔가로 바뀌어가고 있을 무렵, 우리는 7번국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7번국도 Revisited - 김연수, 39쪽. 97년에 나온 <7번국도>를 다시 쓴 새로운 작품이다. 7번국도를 다시 여행하게 된 이야기, 자동차 전용도로가 된 후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사정, 7번국도를 다시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야기 등 소설 밖 작가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디로 갈까, 머물던 공간에서 벗어나면 지친 일상을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 읽는 소설이다. 사랑이 뭔지 모르고, 충분히 사랑한 적이 없었던 청춘들이 생각나는 책이다.


 내가 아는 7번국도는 바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다의 웃음을 들을 수 있는 긴긴 길이다. 살짝 사라졌다 다시금 나타나 환호하는 바다를 오래오래 볼 수 있는 길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코발트 빛깔 바다가 무한반복 되는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몸과 파도의 숨결과 맑은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족된 삶이라는 표정을 읽었다. 그 길은 그런 길이다.


 오늘의 커피는 코스타리카 몬테 솔리스. 가난하고 적적하고 새로운 인생을 원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청춘들에게 바다. 블랙커런트의 향미와 쌉쌀한 쓴맛이 찰랑거리고 사탕수수의 단맛이 다. 의리와 인정이 있는사람을 닮은 커피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매혹적인 여행을 시작하자고 구호를 외치는 커피다. 청춘의 고독함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상큼하고 달달해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다. 여전히 맛있다. 식욕이 없을 때 무언가 꼭 먹어야 된다면 커피를 마시자. 마시는 즐거움이 있다. 추억이 소환된다. 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일그러진 얼굴과 꽁한 마음이 풀어진다. 진정 여유로움을 느낀다. 쓸쓸한 커피 한잔에 동화되어 레는 마음이 된다. 언젠가 나도 그 길을 자전거로 달려보리라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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