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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May 10. 2022

165 희, 넌 집중력과 체력이 최고야

절집의 노란 믹스 커피

 열어놓은 창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목덜미에 차가운 손이 닿은 듯 서늘하다. 여름이 한 치 앞인데 아직 선득한 기운을 느끼는 몸이 좀 얄궂다. 하긴 피부처럼 얄따란 까만 발열내의가 내 몸을 떠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더울 때가 멀기도 하다. 아파트 고3 엄마들의 미담을 듣고 절집으로 발걸음을 한다.


 초파일에는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없고, 각양각색의 사람들 틈에서 세 번의 절을 하는 일도 버거운 까닭에 소풍이라 여기고 늦게 다녀왔다. 회색 손가방에 조끼, 몸빼바지처럼 통이 넓고 밑단에 끈이 달린 바지를 갖춰 입은 소띠 민진네를 동행한 걸음이다. 젊은 사람이 언제 그리 절집의 도리를 배웠는지 절도 잘한다. 아이 이름을  등을 달고(부처님의 자비도 치성드리는 금액에 따라 공발이 다름을 아는 사람은 안다는 종무소 보살의 말씀에 실소를!) 수시에 수월하게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불을 밝혀주십사 읊조리고, 부처님의 법력 아래 건강하기를 바라며 절집을 나왔다.


 일주문을 들어설 때는 건성으로 봤던 사천왕상이 눈에 들어온다. 천왕문 안의 네 명의 장수다. 왕방울만 한 눈, 어른 주먹도 들어갈 만큼 큰 콧구멍, 크고 투둠하며 굳게 닫힌 입, 짙은 눈썹과 콧수염을 지녔다. 호탕한 기운이 당당하게 넘치는 거구의 장수들이 검은색, 흰색, 선명한 붉은색, 진맑은 푸른색이 조화롭게 섞인 옷을 입고 있다. 삼지창을 든 장수가 두 발로 악귀를 지그시 누르고 용맹하게 섰는데 그 모습이 무섭기보다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를 일이다. 절에서 만난 장수들이 우렁찬 소리로 부처님의 불법을 전한다. 조용한 절집의 삶을 그대의 삶에도 옮겨보라고. 사소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살더라도 사소한 것에 걸려 허우적거리지는 말라고. 얕은수를 과하게 쓰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 스스로 움직이고 가눌 수 있는 신체, 가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행복한 인간으로 살 수 있지 싶다. 물론 절집 앞에서나 하는 실천도 못할 다짐이다.


 오늘의 커피는 따스한 느낌이 보드랍게 느껴다. 절집의 종무소에서 거칠하고 투박한 무지 오지 사발에 타주는 노란 믹스 커피다. 부처님의 공발을 받자와 두 손으로 공손히 마신다. 대웅전의 향내가 스며 코끝이 싸한 느낌도 다. 달달하고 쌉싸리한 맛이 좋다. 순하고 따뜻한 희에게 집중력과 체력을 가진 것만으로도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는 커피다. 초록 그늘이 서늘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은 곧 올 것이다. 시간은 기어코 흐를 것이다. 맑음과 흐림을 오가는 성적에 희가 마음 상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마신다. 잔꽃이 가득한 반소매 원피스의 여인이 절집으로 들어간다. 스님의 죽비로 등짝을 맞을 차림새다. 몸에 착 감기는 내리닫이를 입고 절집에 오다니, 혀를 차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다. 한바탕 사람들이 쓸고 지나간 뒤의 소란스러운 절집 풍경이다. 아직은 반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 오스스 희미한 소름이 돋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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