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언젠가 히말라야에 간다면
네팔 히말라야 아라비카
옛날 옛날 그리 멀지 않은 옛날, 히말라야는 고 박영석 대장, 엄홍길 대장, 오은선 대장 등 무슨 무슨 등반대의 대장들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요즘엔 집 근처의 작은 산도 헐떡거리며 겨우 오르는 사람들도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네팔 정부가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휴식과 힐링을 겸한 일주일 내외의 가벼운 걷기, 베이스캠프 4310m를 찍고 오는 열흘 내외의 코스, 쏘롱라 패스 5414m를 통과하는 종주코스 등 히말라야로 입성하는 길이 여러 가지로 열려 있다. 혹시 나도 갈 수 있을까 하여 요즘 관련 책들을 사고 틈틈이 읽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창궐한 바이러스가 주춤하며 가라앉고 있지만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히말라야 관련 서적에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방법, 현지 적응, 가방 싸는 법, 고산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가이드 구하는 법, 고어텍스 재킷과 파카, 오리털 침낭을 현지에서 빌리는 방법 등이 자세히 실려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고산병이다. 상상보다 심각한 병으로 읽힌다. 고지대에 이르게 되면 12시간 이내에 두통이나 무력감, 구토와 불면증, 현기증 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치명적이지는 않고 휴식을 취하면 사라진다. 문제는 뇌부종이나 폐부종 같은 치명적인 증세 때문이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나 면역질환이 있는 사람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3개월 일시불로 끊은 헬스클럽에 등록했거나 강인한 체력과 사지 곧고 건장한 신체를 지녔다고 고산병에 저항력이 있는 것도 아니란다. 대체 어떤 상태여야 겨우 트레킹 정도를 할 수 있단 말인지 읽는 내내 이해되지 않아 고민이다.
6월에서 9월까지 우기를 제외한 날에 네팔에 간다면 신들의 봉우리 언저리를 신들린 듯 걸을 수 있다는 설명은 마음에 와닿는다. 설산들이 걷는 사람들의 등을 끌어안고 따라온다든가 나무와 바람이 두런거리며 사람들 이야기에 휘~웅 하며 대답한다든가 하는 표현들이 히말라야를 꿈꾸게 한다. 카트만두 공항 옆에서 「빵도 굽는 커피집 」. 이런 간판을 단 5평 남짓의 카페를 차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든다. 물론 네팔 정부에서 허가를 할지 의문이다.
오늘의 커피는 네팔 히말라야 아라비카. 신들의 봉우리 옆에서 자란 원두라 깨끗하다. 부드러운 갈색으로 말갛다. 구운 땅콩 맛이다. 고소하고 달착지근하고 섬세한 느낌의 커피다. 세간의 비교에 위축되고 작은 실수에도 주눅 들고 팔랑귀를 가진 조울증 비슷한 성격의 중년 줌마에게 비스따리(천천히)라고 말하는 커피다. 커~ 맛나다. 쓸쓸한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커피다. 네팔 히말라야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변덕이 죽처럼 끓고 뻑하면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줌마는 꼭 가봐야 할 곳이 히말라야가 아닐까! 그럼 일단 돈, 돈을 모으시게나 하는 신의 음성이 들린다. 거대한 빙하가 쓸고 간 자리에 하얀 눈이 덮인 신들의 봉우리에서 낮고 건조하게 들리는 계시다. 먹고사는 일에 시달리는 어른이들에게 서쪽 하늘에 걸린 해를 보며 삶을 해석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는 커피다. 잠시 놀아도 좋다고, 깜박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간신히 버티는 일만 하다 아이쿠 너무 늦어버렸구나 하는 후회는 하지 말자고 한다. 오늘만큼은 가슴에 빨간색 꽃 한 송이 달고 흐뭇하게 웃어도 좋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