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하고 톡~ 쏘는 차가운 육수가 일품인 초계탕을 먹었다. 가늘게 찢은 쫄깃쫄깃한 닭고기가 입안에서 움직이는 느낌은 참으로 자극적이다. 생소한 이름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초간단 설명을 해본다. 초계탕, 덥다고 냉면처럼 찬 음식만 먹으면 안 된다던 외할머니께서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저만치 물러날 때까지 더운 음식이 물릴 때마다 내놓던 음식이다. 일단 모양은 국수랑 비슷하다. 메밀로 밀어낸 면을 삶아 건진다. 집 냉장고에 얌전히 있는 숙주, 호박, 땡초 같은 평범한 채소들을 데치거나 채 썰어 볶거나 해서 고명으로 얹는다. 미리 삶아서 식힌 육계 한 마리를 껍질은 벗겨내고 뽀얀 속살만 손으로 잘 찢어 준비하면 완벽하다. 아참, 살얼음 살짝 언 닭 육수가 빠졌다. 기름기 빠진 슴슴한 육수를 고명이랄 것도 없는 재료 위에 부으면 진짜로 새콤한 초계탕이 된다. 겨자가 들어 톡 하고 뒤끝 있는 쌔~ 한 맛이 무기다. 살짝 달면서 무덤한 한 치도 모자람이 없는 정육면체의 깍두기가 반찬의 전부다. 맛있다고 무리해서 다 먹을 필요는 없다. 담백함을 강조한 음식이지만 차서 먹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엄마와 외할머니는 모녀 사이지만 싸울 때가 많았다. 엄마는 부족하다 하는데 외할머니는 괜찮다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옥신각신했다.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 마음이 많이 있는데 엇갈려서 서로 모르면서 너무 많이 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섣부른 기대가 많아서 그런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수히 많은 일과 삶의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 알지 못하고 그저 어릴 적부터 가끔 뵐 때마다 알게 된 것들로 모녀 사이를 짐작하고 판단한다. 지금 단정한 결론도 어쩜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후련하게 진심을 꺼내놓는 모녀 사이였던 것은 확실하다. 까먹고 있던 일을 초계탕 때문에 기억해냈다. 외할머니는 먼 데서 따뜻하게 계시려나 모르겠다.
오늘의 커피는 재스민 향이 난다. 작고 예쁜 꽃들이 한 바구니에 담긴 정물화 같다. 부드러운 꽃잎을 뜯어 살짝 날려보고 싶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향이 잔잔한 물결 같다. 집중해서 마시다 보면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재스민은 빼어난 모양을 타고나진 않았지만 담담하고 수수한 색과 향이 예쁜 꽃이다. 가까이 두면 좋은 향이 스민다. 시다모 벤사 커피는 신맛이 살아 있고, 포근한 고소함이 좋다. 초콜릿의 쓴맛이 미뢰 세포를 순간에 일어서게 한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이도 저도 마실 게 마뜩잖을 때 얼음 동동 띄워 차갑게 마시면 가슴이 뻥 뚫린다. 얼그레이 홍차 빛의 커피가 얼굴을 빤히 비춘다. 아무리 더워도 반듯한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이 즐겨 마실 듯한 커피다. 머릿속에 넣어둔 계획을 종이에 적지 않고도 잘 실천할 수 있는 스마트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닮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일상의 작은 감정조차 감당이 되지 않는 사람과 다르다. 툭 하면 숨어서 울고 새벽에 깨어 서성이는 사람도 아니다. 자기답게 잘 헤쳐나가는 사람이다. 혼자서 다 잘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늘 혼자 잘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닮은 커피다. 일명 여려 보이지만 씩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