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는다.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고 목구멍에 슬핏 걸리는 구절이 있다. 일상에서 많이 부딪히고 때때로 만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와닿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세상에는 참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참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서로 역할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공평한 일이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늘 안 참고, 참는 사람들은 늘 참는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못 참겠다고 말하면서 안 참는다. 그들에게는 늘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참는 사람들은 그냥 참는다. 그들이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봐 주고 염려해주는 사람도 없다.
77쪽. 참지 않는 사람들은 못 참겠다고 말하면서 안 참는다, 그 구절이 고갱이다. 너무 잘된 표현이다. '너무'라는 부사를 또 썼다. 글에 진심이 아니다. 진부한 표현을 썼다. 하루키처럼 '너무'라는 수식어를 여섯 줄의 문장으로 늘려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단어를 골라야 하는데 오늘도 실패다.
난데없는 불운이 삶을 어떻게 꺾고 구부리는지 궁금한가? 어긋나고 제 길로 가지 않는 삶이 어느 순간 안도감으로 바뀌는 지점에 닿는지 알고 싶은가? 상실감, 무력감, 자괴감, 어리석음 같은 감정만 남았는가? 내 삶이 오래 입어 무릎이 나온 추리닝 같아서 벗어던지고 싶은가? 그런 마음이라면 이 책을 읽자. 잠시 순해진다. 시월 끝의 바삭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기분을 올리고 싶으면 벤자리 돔 한 접시에 매운탕, 청춘 소주 두 병을 싹 비우자. 그러고도 해가 남아서 술을 더 마셔야 하나 고민이라면 일몰에 자지러지는 플라타너스와 햇빛 아래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어릴 적 친구들을 생각하자. 엊그제 지난주는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교 운동장은 생각나지 않은가!
이 책은 소중한 것이지만 배우기 가장 어려운 타인의 슬픔, 그것을 공부하는 법, 슬픈 공부에 대한 책이다.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가르쳐주는 책이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마음에 쉼을 준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틈을 준다. 책 읽기 준비가 되었다면 스팀을 이용해 생두의 중심부까지 열을 침투시켜 균일하게 볶인 원두를 준비하자. 원두 고유의 향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원두를 기분 좋은 느낌으로 드르륵드르륵 갈자.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모모라 내추럴 구지 G1. 2000m 이상 고지대 모모라 지역에서 나왔다. 비옥한 토양과 최적의 기후에서 자란 상품이라 탁월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화려한 레몬글라스, 로즈마리, 감귤, 딸기 향을 맡을 수 있다. 크림 같은 바디감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은 한껏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포근한 햇살의 느낌을 아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것,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빤히 바라보는 것, 저마다의 삶의 두께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살면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다. 코 끝에 편안하고 부드러운 향이 핀다. 딸기 향과 진한 꿀 맛이 좋은 커피다. 감정 곡선이 아래를 향할 때 그윽하고 파우더리한 질감의 커피가 세상을 쓰지 않고 달콤하게 사는 법을 말한다. 거친 삶을 조금은 순하게 살게 만드는 꽃 맛의 커피다.유쾌와 불쾌의 균형이 맞지 않는 삶에서 가능하다면 유쾌한 방향으로 살아보리라 하는 커피다. 아, 그럼 이제부터라도 우리 같이 즐거운 우리의 나날을 만들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