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짝

Sep 16. 2025

어느 시골 기차역 플랫폼에서 아주 남루한 옷차림에 삐쩍 마른 소년이 기차를 기다리는 많은 승객들 사이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 소년은 얼핏 보아도 기차를 타려는 승객은 아닌 것 같고 이 역 플랫폼에서 구두닦이를 하거나 물건을 파는 아이인 듯했다.

어느 날 이 소년은 플랫폼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떨어져 있는 낡은 슬리퍼 한 짝을 주웠다. 소년은 이 슬리퍼를 들고 구석진 곳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신을 수 있는 슬리퍼인지 살펴

보았다. 그러나 이 슬리퍼는 이미 낡을 대로 낡아서 고쳐 신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소년은 마치 이 슬리퍼가 자신의 처지인 것만 같아 서글펐다.

그때 손에 있는 낡은 슬리퍼 앞으로 반짝이는 가죽구두를 신은 어떤 남자아이의 발이 스쳐 지나갔다. 가죽구두를 신은 이 아이는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소년의 앞을 지나 쳤다. 그리고는 건너편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새로 산 구두인 듯 연신 구두코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소년은 부러운 눈으로 아이와 아이의 구두 그리고 아이의 곁에 있는 부모님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때 플랫폼 종소리가 땡땡 울리며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기차를 타려고 우르르 기차 쪽으로 몰려들었고 구두를 닦는데 정신이 없었던 남자아이는 인파에 밀려 아버지의 손을 놓쳤다. 그러자 앞서가던 아이의 아버지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시 돌아와 남자아이를 찾아 힘들게 기차에 태웠다.

그러나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니 아이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그만 플랫폼에 떨어지고 말았다. 기차는 이미 출발했고 플랫폼에 떨어진 구두는 점점 멀어져 갔다. 기차 문에 매달려 남자아이는 멀어져 가는 구두를 보며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소년이 쏜살같이 뛰어나와 남자아이의 구두를 주어 들고 잠시 구두를 쳐다보다 갑자기 달리는 기차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기차문에 매달려 있는 남자아이에게 구두를 넘겨주려 한참을 달리면서 손을 힘껏 내 뻗었으나 안타깝게도 채 미치지 못하였다.

기차와의 간격이 점점 더 멀어 지자 소년은 남자아이를 향해 구두를 힘껏 던졌다. 그러나 구두는 아이에게 미치지 못하고 기차를 맞고 튕겨 나와 플랫폼 끄트머리에 떨어져 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남자아이는 잠시 물끄러미 떨어진 구두 한 짝을 쳐다보다가 신고 있던 나머지 구두 한 짝을 벗어서 플랫폼에 서있는 소년에게 던졌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소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플랫폼에 서있던 소년도 웃으며 멀어져 가는 남자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집트 출신의 사라 로직이라는 감독이 만든 6분짜리 <The other pair: 다른 한 짝>라는 단편영화의 줄거리이다. 카이로의 영화학교를 갓 졸업한 20세의 사라 로직은 이 데뷔작으로 2014년 룩소영화제 은상을 수상 하였다.

그녀는 마하트마 간디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따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젊은 시절 변호사로 일하던 간디가 기차를 타다 신발 한 짝이 플랫폼으로 떨어져 집을 수 없게 되자 남은 한 짝을 던지며 그 연유를 묻는 사람에게 “따로 나누어진 신발 한 짝은 쓸모가 없죠. 그러나 짝을 찾은 신발은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욱 쓸모가 있겠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