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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숨겨진 이야기

세월호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국내 사고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 일어나든  선박사고에 대한 뉴스는 쉽게 스쳐가는 일상적인 뉴스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476명의 승객 가운데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엄청난 비극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슬픔은 아직도 우리들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있습니다. 107년 전인 1912년 4월 14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선박 사고가 난 날입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초호화 여객선이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을 출발하여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중 빙산에 충돌 침몰하여 2,200명의 승객 가운데 711명만 생존하고 1,500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타이타닉은 46,328톤의 초호화 여객선으로 당시 세계 최대 최고의 여객선으로 그 누구도 안전에 대해 의심치 않아 첫 출항에 당대 최고의 갑부들을 즐비하게 탑승시켜 항해하던 중 한 순간에 침몰하여 사상 최대의 비극적인 사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사고는 세계적인 거장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의해 1997년 영화로 제작되어 2조 5,774억의 수입으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당시 남녀 주인공이 뱃머리에서 취했던 포즈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 기록은 같은 감독의 2009년 작품 아바타에 의해 12년 만에 깨어졌습니다. 아바타는 3조 2600억의 흥행 수입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역대 흥행 1,2위를 보유한 거장 제임스 카메론의 기록은 2019년 어벤저스:엔드게임에 의해 10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3조 3000억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의 흥행 수입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영화가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넘었을 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진짜 타이타닉은 빙하가 침몰시켰지만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은 어벤저스가 침몰시켰다” 면서 축하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바타 2로 다시 흥행 기록 1위를 되찾아 오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을 때 영화에 나오지 않은 실제 숨겨진 감동적인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져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게 하고 있습니다. 이 숨겨진 이야기는 사고 당시 38세였던 구조 승객을 책임지던 선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찰스 래히틀러라는 이등 항해사가 오랜 침묵 끝에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으면서도 양심을 지키며 남을 배려했던 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스럽습니다. 배가 침몰 하기 직전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여성과 아이들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그가 여성과 아이들을 구명정에 태우려 소리치자 가족을 두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그가 갑판 위의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러나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나는 배에 남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녀의 남편은 “여보, 어서 보트로 올라가”라고 아내를 재촉하자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혼자는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배에 있을 거예요”. 계속된 재촉에도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두고 구명보트로 옮겨 타지 않았고 그것이 그가 그들 부부를 본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당시 세계 제일 갑부였던 애스터는 그의 부를 이용하여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그에게 구명보트에 오르라는 선원의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사람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하며 마지막 남은 한자리를 어느 아일랜드 여인에게 양보하고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대를 태우면서 구명보트를 타고 멀어져 가는 임신 5개월 된 아내에게 소리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그는 며칠 후 배의 파편에 찢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최후였습니다. 성공한 은행가 구겐하임은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순간에 화려한 턱시도로 갈아입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답게 죽겠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런 유언이 담긴 쪽지를 남겼습니다. “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요. 나는 금수보다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요”. 죽으면서도 진정 신사의 품격을 유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2번째로 부자였던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도 타이타닉호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구명정을 타라고 권유하였으나 그의 아내는 한사코 그와 함께 남아 있기를 원하자 구명보트 책임 선원이 67세의 고령자인 슈트라우스에게 아무도 슈트라우스 씨가 부인과 같이 구명보트에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권유하자 그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대답하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63세인 아내와 갑판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그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 위에 “ 바닷물로도 침몰시킬 수 없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라는 여인도 한사코 남편을 두고 구명보트 타는 것을 반대하자 그녀의 남편은 할 수없이 주먹으로 그녀를 쳐서 기절시킨 후 구명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구명보트였고 그녀는 다시는 남편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후 평생 재혼하지 않고 남편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 침몰 후 세월이 지나 생존자 모임에서 어느 여인은 자신에게 구명보트의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말했습니다. “당시 구명보트에 제 아이 둘이 오르자 만석이 되어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 제 손을 당기면서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합니다. 생존자 모임에서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라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은 타이타닉호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타이타닉호에 남으면서 자신을 희생한 그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모두 희생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 호소노 마사부 미라는 사람은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지만 귀국 후 바로 퇴직당했으며 일본의 모든 언론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10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한 삶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예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타이타닉이 침몰한 1912년은 우리가 일본에 강제 합병된 지 2년이 지나 일본의 핍박을 받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요즘 위안부, 소녀상, 독도, 화이트 리스트, 지소미아 문제로 핫이슈인 일본과의 갈등이 상기됩니다. 아베도 세월이 지나 후회와 수치로 가득한 생으로 마감해서는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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