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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국화와 코스모스

가을 하면 생각나는 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국화나 코스모스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코스모스는 10대의 소녀가 떠오르고 국화는 40대 누님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도 국화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의 표현 때문일 것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자신을 관조할 줄 아는 40대의 성숙한 누님 같은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20대의 봄과 30대의 여름으로 이어지는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쳐야 40대의 가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시인의 은유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국화는 정숙하고 단아한 40대의 여인과도 같은 꽃인 것 같습니다. 

또한 국화는 “매난국죽” 사군자 중 하나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문인 이정보는 그의 시조에서 국화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봄바람을 다 보내고 나뭇잎 떨어진 추운 계절에 너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매운 서리에도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고려시대의 학자 이규보도 “서리를 견디는 자태 외려 봄 꽃보다 나은데 삼추를 지나고도 떨기에서 떠날 줄 모르네 꽃 중에서 오직 너 만이 굳은 절개 지키니 함부로 꺾어 술자리에 보내지 마오”라고 국화를 칭송했습니다. 국화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이라고 합니다. 서리 내리는 추운 계절에 저 홀로 피어 쓸쓸히 지고 나면 긴 겨울의 여백을 맞게 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코스모스의 꽃 말은 “소녀의 순정, 순결, 애정, 진심’이라고 합니다. 꽃에 비해서 줄기가 가늘고 약해서 부드러운 가을바람에도 하늘거리는 모습 때문에 코스모스는 10대 사춘기의 소녀가 연상됩니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시 <코스모스>에서 소녀를 노래했습니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뚜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 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도 “가벼운 갈바람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꽃잎이 날개이냐. 날개가 꽃잎이냐. 아마도 너의 혼은 호접(胡蝶) 인가 하노라.”라고 코스모스의 가냘픔을 표현했습니다. 코스모스의 우리말 이름은 살살이 꽃입니다. 살살이란 가냘프면서도 고움을 나타내는 말로 약한 몸이 실바람에도 부드럽게 할랑거리는 모양을 말합니다. 그런데 코스모스는 이런 가냘픔의 대명사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광활한 우주와 질서와 조화의 세계라는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코스모스는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를 의미하는 카오스(Chaos)의 상태에서 기원전 5세기경 피타고라스에 의해 질서 정연한 우주라는 코스모스의 의미로 정립되었습니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넘어오면서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비합리적 세계로부터 합리적 세계로 넘어왔다고 합니다. 코스모스가 하늘하늘한 바람결에 온 몸을 제각각 살랑거리다가 힘찬 강풍이 불면 모두가 하나가 되어 힘찬 군무를 추는 것을 보면 질서 정연한 신의 섭리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코스모스는 신이 가장 먼저 만든 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딘가 유약하고 가냘프고 단순하게 보여 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이 이런저런 꽃들을 만들어 보다가 가장 아름답게 만든 꽃이 국화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코스모스는 국화과에 속하는 꽃이 되었나 봅니다. 대부분의 가을꽃은 국화과에 속합니다. 국화과 식물의 꽃은 모두 꽃송이가 머리를 닮아 두상화라고 하고 여러 개의 낱꽃이 한데 모여 하나의 꽃송이를 이루어 이 모양이 혀를 닮았다 하여 설상화라고도 부릅니다. 

신이 처음 습작한 코스모스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국화든 모두 신이 주신 가을의 선물입니다.

이제 다시 찾아온 가을날에 가을꽃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을 찾아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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