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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밥벌이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의 아버지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셨습니다.

아내와 4남매의 밥벌이를 위해 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집을 

나서셨습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아버지는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출근 운송수단을 

격상하셨습니다. 당시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그러나 한 겨울 그 추운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때 어린 나이에도 가족들의 

밥벌이를 위해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새벽에 일어나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셔서 다시 대문을 잠그러 들어오시는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대문을 열어 아버지가 마당에서부터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 바로 출근하실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당신 스스로를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쓰실 줄 모르고 오직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당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서비스였습니다. 

내가 새벽형 인간이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 새벽에 일어났던 것이 습관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 거인과도 같았던 아버지가 이제는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게 되셨습니다.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모두가 다 가족의 밥벌이를 위한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이라 생각 

됩니다. 나도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그때의 나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게 되었고 나의 

가족을 위해 33년간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에게 있어서 밥벌이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내 아버지가 생각하신 밥벌이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밥벌이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을 것입니다. 신현수라는 교사 시인이 쓴 시 <밥벌이 지겹지 않음>이라는 시가 

참으로 의미 심장 합니다.


예전엔 아이들과 씨름하고 종일 수업하는 게 힘들어 

딱 며칠만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많았지만

나이 든 지금은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그래서 밥벌이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먹고 살 수도 없고 

후배들에게 술을 살 수도 없고 

스리랑카의 따루시카디브안자리에게 안정된 급식과 학업에 필요한 

학용품 일상생활에 필요한 옷을 사줄 수 없고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친구 상조회에 회비를 낼 수 없고 

매일 아침 쿠퍼스를 날라다 주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날 수 없고 

내가 속한 여러 단체의 회비를 낼 수 없고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낼 수 없고 

뭐가 보장되는지도 잘 모르지만 보험금을 낼 수 없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아무리 곰곰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없다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의 엄정함을 깨닫는 것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실은 밥벌이였다는 걸 깨달으니 

이제 대체로 모든 게 견딜만하다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음날 일찍 벌떡벌떡 일어나야 하는 내가 하나도 가엽지 않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 의미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에 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아!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가 하나도 지겹지 않은 것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가고 어떤 부분은 부정하고 싶고 어떤 부분은 서글픈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밥벌이의 엄정함을 깨닫는 것이라는 말은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근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밥벌이가 하나도 지겹지 않은 것이라는 시구는 나에게 해당

되는지 해당되지 않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내 아버지는 그 추운 겨울 새벽에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출근하시면서 밥벌이가 단 한 번도 지겨운 적이 없으셨을까 매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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