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레, 해발 3500m
마날리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늦은 시간이었고, 숙소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았던 우리는 아침까지 쉴 수 있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대부분 친구들은 이미 숙소가 있었고 우리와 일본인 친구만 남아, 셋이서 같이 자기로 했다.
버스 타고 레까지 오는 길에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 숙소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대 환영이었다.
들개와 소가 자유롭게 오가는 거리에서 열심히 발품 팔아 겨우 숙소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셋 다 잠들었다.
24시간의 버스 여행에서 꾸벅꾸벅 졸긴 했지만 피곤한 건 다 똑같았나 보다.
해가 뜨자마자 일본인 친구는 스케줄이 있다고 챙겨서 체크아웃했다. 우리가 숙소비는 3 등분하자고 끝까지 말했는데, 기어이 절반의 금액을 챙겨주고 떠났다.
도쿄에 꼭 놀러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침을 준비해온 컵라면으로 때운 우리는 레의 시내로 출발했다.
레는 마날리보다 더 건조했다. 햇빛 아래에 있어도 땀이 나지 않았고,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오르막 길을 오를 때면 둘 다 헉헉댔다.
그래도 우리의 목표였던 판공초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에 행복했고, 무엇보다 레의 하늘과 맑은 공기가 좋았다.
판공초로 가는 동행을 구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구해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바로 동행을 구하러 다녔다.
동행을 구하는 것이 너무 쉬울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짧았던 생각 끝에, '7일'이라는 기간이 주어진 판공초의 퍼밋을 바로 신청해버렸다.
퍼밋 신청 후 하루 만에 받을 수 있어서 동행을 구하고 신청해도 늦지 않았던 것이다.
졸지에 퍼밋 기간이 7일밖에 남지 않아서 서둘러 동행을 구하러 다녔다.
여행사 앞에 저렇게 동행을 구하는 공고가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모두 연락을 넣어봤지만 와이파이가 터지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비율이 거의 비슷한 레에서 연락을 보내는 것도, 답장을 기다리는 것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도 동행을 구한다는 공고를 하나 작성해서 벽에 걸어놓고, 레를 구경하며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여행사 앞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동행을 기다리기에는 레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레 왕궁을 올랐다.
높이만 봤을 때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조금 가파른 언덕' 높이였는데, 고산 지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해발 3500미터가 넘는 레에서 계단 몇 칸을 오르는 것도 숨이 벅찼고, 몇 계단을 오르다 노래 한 곡을 들으며 쉬기를 반복했다.
고산 지대에서 오르막을 걷는 것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쉴 때마다 레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이 곳'에서, 우리는 서로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얘기 사이사이에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린 등반이었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레의 풍경은 올라오는 데 들인 노력을 보상받기 충분했다.
라다크의 레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탁 트인 히말라야 산맥과 옛 건물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건물들이 아름다웠다기보다는 투박함에 가까웠는데, 그 투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판공초에 갈 때까지 레 왕궁을 몇 번 더 오르기로 약속하며,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