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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권 May 05. 2020

[인도 여행이 뭐길래?] #11

#11 나? 체스 좀 하지


"될 대로 돼라"


판공초를 지날 수 있는 퍼밋의 만료 기간이 하루 씩 줄어들고 있었고 우리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굳이 동행 찾는데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엔 레를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판공초에 가는 방법이 지프 투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 있는 로컬 버스를 타고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버스 날짜 전까지 동행을 구하지 못하면 델리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로컬 버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김치볶음밥

'아미고'


레에는 '아미고'라는 유명한 한국 식당이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해외에 있는(특히 인도) 한국 식당의 존재 이유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우리는 아미고를 매일 같이 방문했다.


인도에서도 높은 해발 고도 때문에 적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아미고에서도 그런 한국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판공초를 가기 위해 힘들게 레까지 왔는데, 고산병 증세가 심각해 레에서 돌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아미고에서 만난 한국 분들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젊을 때 많이 돌아다녀라', '젊어서 부럽다'가 아니었나 싶다.

체스

"체스할 줄 알아?"


우리가 아미고에서 밥을 다 먹고도 쉽게 일어나지 못한 이유는 여기가 몇 안 되는 와이파이 존이었기 때문이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숙소에서 잠들기 전에 볼 스포츠 뉴스나 만화 등을 미리 수백 장 캡처해서 밤에 보다 잠들곤 했다.


다행히도, 눈치 없이 오래 앉아 있던 우리를 직원들은 오히려 챙겨주었다.


서비스를 주기도 하고, 가게가 한가한 시간이면 직원과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냈다.


직원과 내가 체스를 하고 있으면 식사를 위해 들른 손님이 또 참여하여 하루에 몇 시간씩 체스를 하며 보냈다.


인터넷이 느린 인도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조금 더 얻었다.


특히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친구와 아르헨티나 공격수 '이과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은 특별했다.


아르헨티나 공격수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을 들은 그 친구의 느낌은 내가 외국인한테 박지성 얘기를 들었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을까.

 

레 왕궁

'다시 레 왕궁'


아미고에서 가만히 앉아,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적인 여행을 하고, 다시 레 왕궁을 올랐다.


레에서의 한가한 시간을 채워주려는 의도인지, 이튿날이 되어도 레 왕궁을 오르는 길은 힘들고 틈틈이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전날보다 조금 더 천천히 올라가, 해 질 녘까지 레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레 야경

성 터에 걸터앉아, 내려다 보이는 건물들은 어떤 사람이 사는지, 이 곳까지 식자재는 어떻게 배달되는지와 같은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가라앉았다.


전등이 켜지지 않은 집이 더 많았지만, 레의 야경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판공초를 위해 '거쳐가는 곳'에 불과했던 레에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레라는 낯선 곳에서 익숙한 장소가 생기기 시작하고, 반가운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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