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판공초
레에서 판공초까지 운행하는 로컬 버스는 약 8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었을 때 우리가 한 말이다.
델리에서 마날리를 거쳐, 레에 오기까지 각각 20시간이 넘는 버스 경험에 비하면 8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딱 한 가지 인지하지 못했던 점은, 이미 해발 3500미터가 넘는 레에서 4000미터가 넘는 판공초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한두 시간은 문제없었다.
이미 레에서 고산지대 적응을 마쳐서인지, 피곤함과 걱정보다는 창 밖의 경치에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북인도의 하늘을 볼 때면, 어떻게든 이 순간을 담으려 카메라로 찍었지만 나중에 사진들을 아무리 보아도 그때의 감정 그대로 다시 얻지는 못했다.
적어도 그 순간은 '진짜 여행'중이었고, 판공초라는 우리가 정해뒀던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는 큰 틀만 기억에 남는다.
판공초행 로컬 버스가 이전의 것들과 달랐던 점은, 로컬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인과 여행객들의 비율이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여행객들 중에서도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혹은 조금 더 신경이 쓰였는지 앞자리의 아이는 계속 뒤를 돌아 우리를 쳐다보았다.
고산병은 튼튼한 성인 남자가 걸려도, 어린 아이나 나이 든 사람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복불복이라던데, 적어도 이 아이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고산병은 도대체 누가 걸리나 호기심 가득한 생각을 속으로만 하고 있을 때쯤, 옆을 보니 현상이가 끙끙대고 있었다.
나도 마날리에서 레로 넘어올 때 잠깐이지만 두통이 심해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답답함과 고통은 해결책이 없어 설명하기도 지칠 정도로 힘들었다.
물을 자주 마시면 좀 나아진다는데, 이미 과음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울 때 '물 마시면 나아질 거야'는 제 3자 입장에서나 건넬 수 있는 위로였다.
어쨌든 현상이를 보니, 앞자리의 아이가 왜 뒤쪽을 그렇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고산병과 제대로 마주한 현상이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가끔 멈추는 휴게소에서 데리고 내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해서 인도 여행 내내 우리가 즐겨 먹었던 쵸민을 주문했다.
'도대체 해발 4000미터에서 식당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것인가'하는 호기심도 음식이 나오자 사라지고, 어느새 포크를 잡은 손으로 쵸민을 먹고 있었다.
고산병을 겪는 사람이 많았는지 조용했던 버스가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판공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에 오기 전에 판공초, 타지마할, 갠지스 강은 꼭 보고 돌아가자고 했던 우리의 목표들 중 첫 번째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곳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넓은 강과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판공초는 그 자체만으로 충격적이었다.
판공초를 보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는데,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자연을 보고 압도당했다는 기분은 판공초 때가 유일하다.
도착했다고 우리가 특별히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가 떠있을 때의 판공초 앞에 앉아 최대한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고, 해질녘을 볼 장소를 찾으며, 판공초의 밤하늘을 기다렸다.
판공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였고, 어느 때보다 짧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