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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권 May 09. 2020

[인도 여행이 뭐길래?] #14

#14 해발 4000m에서의 저녁


"배고프다"


판공초의 웅장함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판공초와 히말라야 산맥의 조화는 대단했다.


인생에서 가장 높은 해발 고도에 서 있음은 덤이었다.


감상을 하면서도 저녁이 되기 전에 미리 밥을 준비해야 해질녘을 여유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해온 닭과 감자를 구워 먹기로 했다.

닭 보다 감자

전 날 레 시장을 돌며 생 닭과 감자들을 구매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서 닭은 한 마리만 사고, 나머지를 감자로 채웠다.


감자를 살 때에 너무 싸서 한 번, 아날로그식으로 추를 달아 무게를 재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저녁 준비

'저녁 준비'


나는 준비해온 닭과 감자를 호일에 싸고, 현상이는 돌을 구해와 불을 지필 장소를 준비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보다 많은 돌을 준비해야 했지만, 해질녘의 판공초를 보며 닭다리를 뜯는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장작

우선 판공초는 우리의 생각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불이 조금 붙나 싶으면, 곧바로 꺼지기를 반복했다. 장작을 구해도, 휴지를 넣어봐도 소용없었다.


이 정도의 불로 익었나 확인해봐도, 감자는 딱딱하고 닭은 새 빨갛기만 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로 판공초까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아저씨가 오토바이 기름을 조금 빼서 우리에게 주기도 하고, 정글의 법칙을 연상케 하는 다른 아저씨는 나무 장작을 효과적으로 세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강해졌던 불길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하던 '캠핑 놀이'수준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빨간 닭

"음, 아직 덜 익은 것 같은데?"


판공초의 해는 조금씩 가라앉아, 우리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해질녘은 커녕 하루 굶고 레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그나마 제일 익은 부위를 뜯어 나눠 먹었는데, 겉만 익고 속은 여전히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이것도 다 경험이야'라며 먹기는 했지만, 생 닭과 아직 딱딱한 감자는 그리 맛있지 않았다.

우리의 구세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자린고비처럼 판공초 경치 한 번, 덜 읽은 닭 한 입 먹기를 번갈아 하고 있을 때, 네팔에서 왔다는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다가왔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불은 그렇게 붙이는 게 아니라며, 우리에게 불에 탈 것 같은 것은 모두 주워오라고 시켰다.


"Move faster, my lazy boys"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연상시키는 외침과 함께.

거의 셋째 아들

네팔 가족의 도움으로 불을 제대로 붙이고, 우리가 원했던 닭을 먹을 수 있었다.


저기 밀리터리 점퍼를 입은 큰 아들이 우리 보고 바보 같다며 놀리긴 했지만, 겨우 성냥 몇 개를 준비해온 우리는 바보가 맞았기 때문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굳이 도와주지 않고 모른 척할 수도 있었는데, 아들 같다며 우리를 도와주신 아주머니께 너무 감사했다.


가진 것 없는 배낭여행자로서, 드릴 것은 없어서 우리를 놀린 아들에게 한국 전통 과자라며 약과와 초코파이를 선물했다.


아직도 아들의 'so stupid~'가 귓가에 맴돌지만, 덕분에 판공초에서 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좋은 추억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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