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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y 12. 2024

아빠가 쓴 편지만 엮어도 책 한 권은 나온다.

프롤로그


“아빠가 쓴 편지만 엮어도 책 한 권은 나온다.”


나는 그냥 하시는 말인 줄 알았다. 설이었나 추석이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명절에 엄마는 두꺼운 파일철을 들고 나오셨다. 우리 집안은 명절에 술을 마시는 것도, 윷놀이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화투를 치는 것도 아니니, 이런 거라도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이게 웬걸. 정말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분량의 연애편지였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가는 아빠의 연애편지.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아빠의 예전 꿈이 기자였다는 말이 떠올랐다. 조금 어렵고 멋들어진 말들이 많았지만, 그 꿈이 사실이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글이었다. 아빠에게 이토록 격정적이던 시절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어느 날엔가는 아빠가 어느 신문사의 작은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너 인마 그걸로 책 한 권만 만들어 줘라.”


“아니, 아빠가 쓴 연애편지를 누가 읽어요.”


“누가 읽으라고 만들라는 거냐! 그냥 한 권 남기고 싶어서 그러지. 엄마 아빠만 읽으면 되는 거야.”


나는 아빠의 예전 꿈을 이어 기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과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또 전공과는 관련 없는 회사에서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의 전공이 아빠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나는 책을 출간하는 방법 같은 건 잘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글을 쓴다. 아빠의 연애편지를 하나씩 옮겨 적어야겠다. 완결이 나면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책 한 권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려고 한다. 또 모르지. 이게 언젠가 종이책이 되어 아빠의 손에 쥐어줄 수 있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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