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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y 17. 2024

늙는다는 것은 아마 생각의 기쁨을 가끔은 잊고 사는 것

나의 2화


두 번째 편지를 읽고 가장 놀랐던 건 바로 타이스의 명상곡과 사랑의 슬픔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곡 이름이라 결국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타이스의 명상곡은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가 작곡한 오페라 ‘타이스’의 간주곡이었다.


그리고 사랑의 슬픔은 조성모의 노래가 아니었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조성모의 전성기는 2000년대 초반이므로 아빠가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보다 10년은 지나야 한다. 아빠의 편지에 등장하는 사랑의 슬픔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곡이었다.


도대체 아빠가 이런 노래를 실제로 들었던 게 맞는지 아니면 엄마를 꼬시기 위해 괜히 교양 있는 척을 한 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저 시대에는 저런 곡을 듣는 게 우리가 요즘 유튜브 뮤직에서 빌보드 Top 100을 듣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져 그냥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 이런 곡을 들은 게 맞아요?”


돌아온 대답은 사실 내 예상 밖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네.”


“잊고 있었다. 이런 감정을. 늙는다는 것은 아마 생각의 기쁨을 가끔은 잊고 사는 거다.”


이 말이 참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맞다. 늙는다는 것은 아마도 생각의 기쁨을 가끔은 잊고 사는 거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생각의 기쁨을 잊고 지냈다. 치열하게 준비해서 취업에 성공한 이후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 저녁 먹으면 잘 시간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 몇 개를 보고 웹툰을 두어 개 보다 잠이 들었다. 취업 준비생일 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많아 문제였는데, 취업을 하니 생각할 길게 이어갈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야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학생 때 재밌게 읽던 책은 어느새 재테크 유튜브 영상으로 바뀌었고, 수업 때 머리를 싸매며 쓰던 소설들은 업무 보고서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의 기쁨이라는 걸 잠시 잊고 지냈다. 아빠의 편지를 옮겨 적다 생각의 기쁨을 다시금 느낀다. 쓰는 건 참 신기하다.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이런 걸 느낀다. 인스타그램 돋보기에서 그만 빠져나와 생각의 기쁨을 다시금 느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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