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들, <안나>와 <화차>

<안나>와 <화차>의 차이점, 공통점에 대하여

by KEIDY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안나>를 보았습니다. 배우 수지를 앞세워 적극적으로 홍보를 진행했었고, 실제로 콘텐츠의 퀄리티와 평도 좋아서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요. 드라마를 보기 전부터 <화차>라는 영화가 떠올랐고,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고 나니 오히려 두 콘텐츠가 담고 있는 함의가 같은 듯 굉장히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우선, <안나>를 보기 전에 <화차>를 떠올린 이유는 두 콘텐츠가 "내 것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작이 어찌 되었든지 간에 두 콘텐츠에서는 주인공이 타인의 명의를 도용한 것을 주된 줄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안나>에서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욕심도 많았던 주인공 "유미"가 자신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대학에 떨어진 사실을 숨기는 것이 거짓된 삶을 사는 계기가 됩니다. <화차>에서는 결혼을 앞둔 주인공 "선영"이 갑자기 휴게소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그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약혼자 "문호"를 통해 삶을 추적해 가면서, 알고 보니 "선영"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여 살고 있었음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안나>의 주인공 "유미"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마음먹은 것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며 겨우 먹고사는 아버지 밑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순 없었죠. 게다가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고, 고졸로서는 좋은 직장에도 들어갈 수 없어 부유한 가족이 운영하는 가족기업에서 거의 비서 겸 하녀에 가까운 잡무를 하게 되는데요. 이때, 그 집의 딸인 "안나"의 잔심부름을 하며 상류층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지를 보며 한편으로는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혐오를 느낍니다. 어느 날 엄마가 아파서 잠시 휴가를 내겠다는 그녀의 말에 관리자는 노발대발하며 지금까지의 그녀의 성실함과 노력을 폄하하며 모욕을 주죠. 그날, "유미"는 몰래 짐을 싸서 그 집을 도망쳐 나오는데 이때 가지고 나온 여러 서류 중 "안나"의 학위증명서와 여권 등이 있었죠. 망설임은 잠시, 학위증명서를 제출하니 그렇게 어려웠던 취업이 한방에 해결되는 것을 보며 유미는 "안나"로서 살게 됩니다.


<화차>에서는 사라져 버린 선영을 찾기 위해 약혼자 문호는 전직 형사인 사촌 형의 도움을 받아 사건 당시의 상황, 그녀의 흔적 등을 추적해 나가는데요. 추적하면 할수록 더욱더 의문이 생기는 것이, 이 모든 것이 의도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죠. 행방불명된 당일 핸드폰은 꺼져있었고, 은행 잔고가 모두 인출되어 있었으며, 집에 지문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 게다가 사건을 더욱 파고드니 "선영"이라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 삶의 궤적이 일치하지 않음이 드러났습니다.


<안나>에서 "유미"는 훔친 학위증명서와 이름을 사용해 미술 입시학원의 강사로 일하게 되고, 점점 더 좋은 조건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는데요. 이 시기에 젊은 나이에 IT회사를 성공적으로 일군 대표를 소개받아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결혼할 때도 본인의 원래의 삶을 밝힐 순 없었기에 돈을 주고 부모 역할을 해줄 사람을 고용하는 등,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은 계속 꼬리를 물고 진행이 되었죠. 남편은 부를 축적한 이후에는 정계로 진출할 야심을 드러냈고, 유미 또한 결혼 이후에도 대학 교수직까지 제안받으며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게 되는데요. 인생의 정점이라고 생각한 순간, 진짜 "안나"를 마주치게 되며 유미는 지금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에 처합니다.


<화차>에서 알고 보니 "선영"은 빚을 지고 사라져 버린 아버지 때문에 이 빚을 떠안게 되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을 길이 없었고, 남편 또한 그녀를 도와주려 했으나 결국에는 사채업자들의 계속되는 괴롭힘에 떠나게 되죠. 사채업자들에게 끌려가 밤일을 하던 선영은 간신히 탈출하는데, 아이를 임신했다가 유산까지 하게 되며 이대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도망쳐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채업자들의 협박과 독촉에 평범한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선영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가족도 친구도 없는 한 여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이름을 대신 사용하게 됩니다. 즉 "선영"이라는 이름은 살해한 여성의 이름이고 원래의 주인공 이름은 "경선"이었던 것이죠.


<안나>에서 진짜 "안나"는 유미에게 자신의 삶을 훔친 대가로 30억을 요구하고, 유미는 남편의 정계 진출을 발판 삼아 몰래 뇌물을 받아 돈을 모읍니다. 그러나 갑자기 "안나"가 자살로 결론은 지어졌으나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유미는 자신의 거짓말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유미의 좋은 이미지를 팔아 남편은 지지율을 높이고 결국은 선거에서 승리하는데요. 이제는 더 이상 유미가 필요 없게 된 남편은 지친 유미를 쉬게 한다는 핑계를 대고 미국의 한 요양소에 보내버리려 합니다. 운 좋게 일어난 교통사고로 유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남편은 죽음을 맞이하죠. 유미는 "안나"로서의 성공한 삶을 버리고,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유미로 조용히 살게 됩니다.


<화차>에서는 드디어 "경선"의 정체를 알게 된 문호는 정체가 탄로 난 그녀가 다시 한번 신분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훔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를 붙잡을 수도, 체포되게 둘 수도 없는 문호는 그녀를 마주치고도 그냥 보내주는데 이미 상황을 알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포위된 "경선"은 끝을 직감하고 자살을 택합니다. 이미 살인을 한 번 저지른 그녀에게는 체포된 순간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나>와 <화차>,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안나>의 원작은 [친절한 이방인]이라는 소설이고, <화차>의 원작은 동일한 이름의 [화차]라는 일본 소설이라고 합니다. [친절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누구에게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안나"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에 가깝습니다. [화차]는 돈 때문에 빚에 시달리며 괴로운 현실에 대해 일본에서는 火車, 또는 히노구루마(火の車) 라고 표현한다고 하며 나쁜 짓을 한 악인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불타는 수레, 그리고 한번 타면 내릴 수 없음을(도중에 멈출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은 그 거짓말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화차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안나>와 <화차> 모두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이 콘텐츠를 계기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각각 콘텐츠의 주인공을 맡은 수지 배우, 김민희 배우는 워낙 외모가 아름다워 연기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는데 <안나>와 <화차>를 통해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캐릭터지만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공통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할 때, 사람들은 허탈감과 상실감, 좌절을 겪습니다. <안나>와 <화차>의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이 매우 안타까우면서도, 주인공들의 선택이 선뜻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은 아무래도 그러한 선택이 엄연한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겠죠. 노력한 자가 충분히 보상받는 사회,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서 과도하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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