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탑건:매버릭>과의 공통점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았습니다. 주변 지인들 중 특히 남자분들이 극찬하면서 꼭 보라고 추천하길래, 다 아는 내용인데 뭐가 재미있을까 싶어서 처음엔 미심쩍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몇 주째 박스오피스 정상이었던 <아바타 : 물의 길>을 제치고 1위를 찍더라구요. 1위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극장판을 보러 갔고, 다 아는 내용인데 눈물이 계속 날 뻔해서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극장판을 보면서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원작의 명대사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경험을 하면서 다들 이래서 보러 오는구나, 하며 호평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경기 결과도 뻔히 다 아는데, 마지막까지 쫄깃한 긴장감 속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단순한 추억팔이용 콘텐츠가 아니라 연출 쪽으로도 상당히 신경 썼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장판은 그동안 원작에서 주인공으로 다뤄졌던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의 시각이 아닌, 송태섭(미야기 료타)의 시점에서 마지막이자 가장 최고의 성적을 거둔 '산왕전' 경기를 교차편집하여 보여줍니다. 산왕공고는 전국우승 3연패를 기록한 작중 최강의 고교농구 팀으로 그려지고, 주전으로 나오는 모든 선수들 하나하나가 최고의 실력자로 묘사됩니다.
그에 반해 주인공이 속한 북산고교는 평소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점차 실력자들의 합세와 좋은 감독(안선생님)의 영입, 그리고 어느 정도의 운빨로 전국대회에 겨우 출전한 상황이었습니다. 모두들 산왕고교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황. 북산고교 또한 스스로 승리의 확률이 거의 없음을 직감하고 있었을 겁니다. 첫 극장판의 소재로, 바로 이 극적인 경기를 끌어온 것입니다.
물론, 원작을 본 팬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슬아슬하게 북산고교가 산왕공고를 1점차로, 마지막 0.1초도 남겨두지 않은 채, 원작의 주인공 강백호가 혼신의 힘을 다 한 플레이로 마지막 골을 넣어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을요. 게다가 강백호는 경기 도중 등을 크게 다치면서 경기를 그대로 이어갔다가는 선수 생명을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던 상황입니다. 모두들 강백호가 지금까지 최선을 다 했다며, 이 경기는 포기하고 앞으로의 선수 생명을 이어가기를 바랐고 그러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강백호는 '나에게 지금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라며 끝까지 불태울 것을 다짐하죠.
게다가 마지막 경기였던 산왕전에서 온갖 명대사들과 명장면이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마지막, 항상 아웅다웅하던 강백호와 서태웅이 마지막 패스와 슛을 멋지게 성공시키고 나서 하이파이브 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죠. 항상 자기밖에 모르고 강백호를 무시하던 서태웅이 강백호에게 패스해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장면은 중요한 순간에 비로소 한 팀으로 뭉쳐지는 북산고교 선수들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작 <슬램덩크>는 90년대 TV에서 방영되어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농구를 소재로 했으며, 성장하는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기에 특히 사춘기 남자들에게는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도 많이 이끌어냈기에 아예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중간에 멈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혈기왕성한 시절,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해가는 주인공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자극하는 훌륭한 라이벌들도 많이 등장하죠. 게다가 온화한 듯 하면서도 적재적소에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감독까지. 그리고 주인공들은 각자의 개성과 장점, 단점이 뚜렷해서 캐릭터들간의 서사와 얽힘이 또 다른 재미를 자아냅니다. 이 다섯이 뭉쳐 하나의 미션을 해낼 때마다 마치 내가 그 일을 해 낸 것처럼 이입이 되기도 하고요.
CGV 예매사이트에는 영화마다 예매율과 관련된 여러 지표들을 검색해 볼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이끌어 내는 영화들은 2030의 예매율이 높은 편이고 남녀 비중은 크게 차이는 없으나 평균적으로 여성 관객이 살짝 높다고 합니다.(보통 여자들이 회원가입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니 남자 예매율 비중이 60%이고 3040의 예매율이 상대적으로 높더라구요. 원작을 보고 자란 남자(물론 그 시절의 여자들도 포함이지만)들이 커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며 추억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보니 작년에 크게 흥행했던 <탑건 : 매버릭>이 떠올랐습니다. <탑건 : 매버릭>은 예매율에 있어 남녀 성차는 크게 없었지만, 3040 예매율 비중이 꽤 높았더라구요. 1987년에 선보인 <탑건>의 후속작이니 그 시절 영화를 보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역시나 많이 보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탑건 : 매버릭>에서 그려지는 주인공 '매버릭'캐릭터는 중년 남성들이 성취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더라구요. 커리어적으로는 후배에게 인정받는 멋진 선임에, 인생에 있어서는 사랑도 얻고 우정도 되찾죠. 3040 남자들의 가슴을 저격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며 오랜만에 90년대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흝어보며 그 시절,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청춘의 패기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제가 보고 온 것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순수하게 성장을 바랐던 풋풋했던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