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유달리 독립성이 강했다. 지 마음에 안들면 눈 부라리며 이 새끼 저 새끼 거리는 아버지와, 본인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면서 변화에 대한 노력도 일절 없이 자녀에게만 기대려는 어머니 탓일까.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에도 최우선 조건 중 하나가 통학이 불가능한 거리였다.
제주도에 있는 대학에 지원해 면접까지 봤었는데
나는 중고등학교도 안나와서, 대학도 별로 가고싶지 않았는데, 아버지 호통에 대학은 어쩔수 없었이 가게 되었다. 아무튼,
학기 중 잠시동안이지만 전문대학 3년을 다니는 동안은 집안 일에 엮이지 않을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썩어서 떨어진 화장실 문이나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바퀴벌레들 같은건 끔찍했지만서도
한 달 생활비가 30만원이라 가난에 허덕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사회복무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나를 괴롭히는 부모를 보니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다.
오죽하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나보고 고위험군이니 검진받으라고 할까.
그런저런 이유로 복무 초기부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다 자취 보금으로 쓰려고 저축을 가득 들었다.
군적금은 물론, 소액 월 적금을 단기로 들어 모으고, 그 돈은 다시 예금에 넣어 1년을 키우고.
그렇게 수중에 반년 정도 밖에서 살 수 있는 돈이 생기니 괴로운 일이 있어도 버틸 힘이 생긴다.
돈을 모으는 기쁨이란 건 그 액수가 아니라, 기회에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