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글을 적고 몇 명의 친구들에게 카톡이 왔다. "주로 공감이 된다. 글 잘 읽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는데 현재 고려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HW의 카톡이 그렇다.
HW는 카투사 선임이었다.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같이 근무를 했었다. 부대 선임임에도 나이가 많은 나에게 깍듯이 존대를 해주고 계급을 보지 않고 형으로 대우해줘 친해질 수 있었던 그런 친구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HW는 가끔씩 내 글을 읽는다. 그리고 어제 내용이 인상 깊었나보다. 장문의 카톡이 왔다.
이 카톡을 읽고 내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내가 겁쟁이가 된 이유가 대학교 교육 때문이구나!"
나는 긴 대학 교육을 받았다. 대학교 중퇴 2번에 5학년까지 재학했으니 횟수만 7년이다. 인생 아무것도 없던 실업계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나는 겁 대가리가 없었다. 왜? 생각이 없었으니깐. 이게 나쁜 말이 아니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행동력이 강하다는 의미가 된다. 겁이 없으니 무대뽀처럼 지를 수 있다.
이미 성공을 한 구독자 몇십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코인 유튜버들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아니 저렇게 책임지지 못할 말을 어떻게 함부로 내뱉을 수가 있지?" , "가격이라는게 미래를 예측하는건데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확신 할 수 있지?" 그런데 이거는 내가 대학 교육을 빡세게 받아서 그랬던 것이다. 성균관대 교양 수업 중 교수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러분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 해요. 그게 대학교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에요.'
HW가 대학에 재학하며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학교에서 생각하고 사고하는 법을 계속해서 훈련 받았다. 무슨 현상을 접하든 그것을 비판하며, 통찰하고 논쟁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다닐 때만 해도 그게 좋은 줄 알았다. 왜? 멋있으니깐. 하물며 서울대 표어도 Veritas lux mea라는 라틴어 아닌가. 이런 말 쓰고 다니면 깐지나거든. 그야말로 명문대 뽕 맞는거다.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떠한 글쓰기 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소설가다. 그가 저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예창작학과나 전통적인 명문대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고 세계적인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 영역은 WISE가 아니라 STREET WISE이거든요."
WISE는 학교와 책에서 배우는 지식이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이론으로만 배우는 지식. 반대로 STREET WISE는 몸으로 부딪히며 길거리에서 배우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소설은 명문대에서 이론 수업 받는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쓰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현재 명문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성공하지 못하고, 비실대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요즘 나오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보면 학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야놀자 대표가 그렇다. 이 분은 전문대만 졸업하고 창업을 했다. 더 멀리 올라가면 우리나라 닭 업체 1위인 하림 회장도 고졸 출신이다. 이게 꼭 사업적인 분야에서만 이럴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10만 구독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는 5500명이다.
이 유튜버들 중에서 명문대 출신이 얼마나 될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조사는 없지만, 1% 미만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영역에 있어서는 제대로 대학 교육에 매진한 사람들이 굉장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꼭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어느 대학을 다니든 비판적인 사고 훈련, 생각 하기 훈련을 거듭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말살 당하고 있다. 차라리 F 학점을 맞고, 전문대에서 기술을 배우고, 고졸만 한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날라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겁쟁이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로스쿨에 재학하면서 내가 들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바로 '법찔이'라는 단어다. 법 + 찌질이라는 조합어로 지금은 변호사가 된 어떤 선배가 이야기 해 준 내용이다. 자기가 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하면 할수록 '와... 이런거까지 처벌을 받아?' , '와 이게 형량이 이렇게 쎄?' 등 아는 순간 쫄아버리는 그런 내용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무서워서 삶에서 어떤 행동이든 쉽게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깨닫는 것이 많았다. 아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구나. 공부 열심히 했다가 오히려 내 재능과 행동이 족쇄에 묶여버릴 수 있구나. 꼭 법 영역에서만이 아닌 대학 교육 자체에 행동 말살적 문제점이 많다. 생각 자체를 많아지게 만들어 사람들의 잠재력을 말살시키고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실업계 고등학교 시절이 더 용감했다. 그랬기에 더 많은 것을 이룰 잠재력이 있었고, 어떤 것이든 행동 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니다. 모르는 것이 때론 힘이다.
하지만 이미 대학 교육을 받아버린 마당에 이걸 뒤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부터라도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실업계 본성을 꺼내야 한다. 옆을 돌아보면서 명문대생 중 돌연변이 출신들을 찾으면 된다. 변호사 출신임에도 진짜 겁 대가리 없이 말을 막 하는 강용석 변호사나, 서강대 출신임에도 말도 안되는 행동력을 보이며 사업을 하고 있는 SH가 그렇다. 이 친구는 엄청난 겁 없음과 행동력 때문에 여러 법적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결국 이런 특성이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안겨주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용감하기 때문에 유명 스타트업의 임원을 하기도 했으며, 고소에 휘말린 것도 따지고 보면 큰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디폴트 값이 이미 생각이 많아서 이것을 억지로 줄이려 한다고 해도 100에서 50이 가는 수준 밖에 안 될 것이다. 나머지 50을 행동으로 채우고, 줄어든 50의 생각만으로 적당한 방어만 해도 송사에 휘말릴 일은 적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막장으로 가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