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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넷 Mar 09. 2022

생각이 많으면 행동을 못한다

대학 입시 4수를 하면서 내가 배웠던 가장 큰 부분은 ‘행동에 대한 교정법’이다. 당시 나는 기초생활수급자에 상 of 상 그지였다. 돈이 없어 학원도, 과외도 못 받았다. 다행히 컴퓨터 계열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기술로 해킹을 해서 둠강 (어둠의 인강)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실력은 있었다.


이렇게 뚫어버린 인강에 (정보통신법 상 엄연한 불법이지만 나는 지금도 이걸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사교육이 없으면 공부를 못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썩어빠진 교육 시스템이 문제다. 그리고 공소시효 지났어 개꿀.) 중고나라에서 6만원 주고 업어온 PMP로 공부를 했었다.


군대 미룰려고 + 해킹 할 때 법률에 걸리지 않는 방법 배우려고 대학교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을 했는데, 로스쿨 입시를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4수생 시절 깨달은 독학 공부에 대한 행동 교정법 덕분이다.


그런데 중간에 카투사를 다녀오면서 예전에 몸으로 체득한 이 방법을 요즘 많이 까먹었다. 블록체인 공부에 좀 더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자 무턱대고 조선반도를 떠나 외국으로 날라왔는데 공부는 안하고 자꾸 놀고만 있다. 인생 4년을 그 놈의 대학교 학벌 하나 따려고 갖다바쳤다. 그 지X 맞았던 학벌 투쟁 과정에서 배운 것이 꽤 많은데 최근의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미로 오늘 그 중 하나를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왜 재수에 실패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유혹하는 놀거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일단 가장 큰 것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었다. 이게 너무 재밌어서 독학으로 재수하던 시절 집에서 이것만 무진장 했다. 두번째로는 습관의 부재였다. 엉덩이도 오래 붙여 본 사람들이 잘 앉아 있는다고, 공부를 한 번도 안해보고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기술이나 배우던 사람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나에게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책을 읽는 것은 그래도 재미있어 했다는 것이었다. 내게 처음 컴퓨터가 생긴 것은 중학교 때였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컴퓨터 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어서 심심해서 집에서 책이나 읽었다.​

(  참조)


인생 아무것도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 꼴통 실업계 학교 졸업생이었던 나에게 당시 대학 입시는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입시를 시작 한 것인데 재수를 놀면서 폭망해버리니 쫄려도 그렇게 쫄릴 수가 없었다. 인생 이러다 망하는거 아닐까하는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다행히도 어릴 때 형성된 독서 습관으로 방법을 찾고자 여러 책들을 읽었었다. 이 과정에서 칩 히스, 댄 히스 형제가 쓴 <스위치>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안 유명하고 묻혀버린 책이지만, 여기 나온 한 행동과학적 이론이 3수와 4수 생활에서 습관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상상하는 순간,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의아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원리는 이렇다.


사례 1 : “오늘 수학도 공부해야 하고, 영어도 공부해야 하네? , 오늘 공부해야 할 범위는 이렇고 여기까지는 진도를 나가야 되잖아. (무의식에서) X라 하기 싫다. 그냥 스타 한 판만 때리고 공부하자.


사례 2 : (독학으로 공부하니 잡아주는 사람이 없음) 아 일어났는데 도서관 가기 싫네.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상상함) 도서관에 가려면 씻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고, 그거 타고 내려서 또 걸어야 하고, 열람실에서 자리 잡아야 하고 등등. (자동으로) 아 가기 싫다. 스타 한 판만 때리고 가자.


위 사례 1과 사례 2는 실제 내가 재수를 하며 매일 보였던 망한 행동 패턴이다. 저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의지가 박약해서 공부를 하러 가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행동 과학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상상하는 순간 그 행동을 하지 않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실제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해도 상상하는 순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여러가지 과정들이 생각나며 무의식적으로 저 행동들을 언제 다 하지? 라는 거부감이 들게 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있으면 괜찮다. 그 사람의 명령이나 지시 자체가 생각의 꼬리표를 차단시켜줘 (예를 들어 직장상사가 강제로 시키면 상상하기 전에 행동 할 수 밖에 없음. 학원 원장이 숙제 시키면 할 수 밖에 없음.)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고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어떤 노력을 할 때 누군가의 명령 없이 혼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때 어마무시한 상상의 과정이 행동을 방해한다.


책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첫 발 들여놓기 테크닉’이라는 것을 제안했는데 방법은 이렇다. 무의식적으로 상상의 나래가 자동으로 펼쳐지기 전에 의도적으로 상상과 생각을 차단하고. “일단 지르고 보는 방식”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도서관에 가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행동과학 패턴을 적용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출발 하기 전에 ‘아 언제 씻지?’ , ‘아 언제 걸어가지?’ , ‘아 언제 공부하지?’ 등등 도서관을 가기 전부터, 가는 과정, 가서 공부하는 과정까지 무의식적으로 쫙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 순간 우리들의 본능은 그곳에 가기 싫어하고, 예전의 나와 같이 ‘다른거 하고 가자’라며 행동을 유예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첫발 들여놓기 테크닉을 사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핵심은 뒤의 과정에 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자.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자.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자” 이걸 세뇌 수준으로 스스로에게 외우게 해서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고 본다. 마찬가지로 출발 할 때도, “일단 신발장 앞에만 가자. 일단 신발장 앞에만 가자. 일단 신발장 앞에만 가자.” 이렇게 생각을 하며 신발장 앞으로 가고 본다.


우리들은 생각보다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다. 일부러 바로 직전, 세밀하게 쪼개고 쪼개 정말 바로 앞의 직전 행동만 상상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쪼개고 쪼개진 맨 앞의 조그마한 행동을 하는 순간, 그 다음 행동도 연쇄적으로 하게 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모든 과정을 전부 상상하는 순간 무의식적 거부감이 일어나는 것과 다르게 바로 맨 앞의 아주 작은 행동만 상상하는 것은 거부감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하는 순간 관성에 의해 어느 순간 다음 행동도 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을 되게 하기 싫었는데, 맨 앞의 아주 작은 행동 하나를 하자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몇 십분, 몇 시간씩 그 일에 집중했던 경험. 만약에 그 일을 하기도 전에 아 오늘 5시간 동안 이걸 해야지. 이렇게 상상했으면 쉽게 그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에 행동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삼수생, 사수생 때 저걸 몸으로 체득시켜서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공부 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일부러 가장 맨 앞의 쉬운 행동 하나만 생각하고 스스로 세뇌시켜서 그 행동부터 하고 봤다. 그러다보니 관성에 의해 자동으로 다음 행동을 하게 되더라. 이렇게하니 오래 공부 할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자주 말했다던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도 이런 측면에서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이 분이 <스위치>라는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겠지만, 살아오면서 몸으로 체득한 감각으로 첫 발 들여놓기 테크닉을 통찰력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절했던 대학 입시에서 몸으로 배운 것이 많은데 학벌을 가진 후로 돈도 많이 벌고, 한번 따는 순간 영구적으로 귀속이 되는 부분이다보니 헝그리 정신이 사라져 그 때 배운 것을 많이 잊고 살아가고 있다. 나 스스로가 이 글을 자주 읽어보며 예전에 익힌 몸의 감각을 다시 살려보자.


원문 링크 : https://m.blog.naver.com/no5100/222665428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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