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병원에서 임상강사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간다. 내가 있는 소화기 내과는 주로 진단 내시경 및 내시경을 이용한 시술을 담당한다.
어제는 지도교수님과 첫 저녁식사였다.
교수님께서는 '위점막하 절제술(ESD)'이라는 시술이 우리나라에 거의 처음 소개될 즈음 이야기를 해주셨다.
'위점막하 절제술(ESD)'이라는 시술이 있기 전에는 조기암 병변의 제거를 거의 대부분 수술에 의존했다. 수술을 하면 생존율은 높지만 위를 부분절제 혹은 전절제를 해야 했다. 위를 절제하게 되면 환자의 삶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100kg에 육박하던 거구도 위 전절제를 하게 되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가 된다.
먹는 재미가 인생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사는 게 얼마나 팍팍할까?
위점막하 절제술(ESD)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많은 환자분들이 위를 절제하지 않고도 암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박 선생, ESD(위점막하 절제술)하고 나서 검체를 고정할 때 왜 진주핀을 사용하는 줄 아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시술하고 나서 찍은 검체사진 모두 진주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저 사진으로 찍으면 예쁘니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내 스승님이랑 여러 가지 핀을 비교해본 결과 진주 핀이 가장 얇고 고정력이 좋아서 그렇다네.
진주핀을 사기 위해 코엑스 지하에 있는 알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택시를 타고 구해왔었지
그때는 내가 배우고 있는 이 시술이 신성하게 까지 느껴졌었어
지금은 너무 흔하지만, 작은 핀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술이라네”
순간 뭉클했다.
비단 점막하 절제술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X-ray, CT, 초음파 모두 한국에 처음 들여와서 작은 것 하나하나 섬세하게 생각하고 보급하는 선배 의사들의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진주핀을 보니, 나와 같은 어리바리 임상강사였을 교수님이 생각났다. 지금은 부산, 경남 지역에서 가장 왕성히 내시경 시술을 하고 있는 분인 교수님도 나 같은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구나 싶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보면 , 나에게 이 의술을 가르쳐준 자를 나의 부모님으로 생각하겠다는 구절이 나온다. 의술을 연마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과 똑같다. 사고뭉치인 아이가 한 사람분의 역할을 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지도교수님은 먼발치에서 아이가 잘 자라는지 봐주시는 존재이다.
이제 그 진주핀을 내가 사러 갈 것이다.
진주핀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