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꿀팁
여기 한 남녀가 있다.
하루는 평상시랑 똑같이 데이트를 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는데, 남자는 길가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여자가 갑자기 ‘어제도 돈가스 먹었는데, 또 돈가스 먹자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심지어 눈물까지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성분이 심하네. 남자가 불쌍하다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그날은 여성분의 생일날이다. 남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예쁜 옷으로 가라 입고 정성 들여 화장을 하고 나온 것이었다.
(거짓말하고 싶었으나, 사실 이건 내 얘기다 )
종종 신체검사에서 시행한 엑스레이 이상소견으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분들이 계시다. 이럴 때 꼭 물어봐야 하는 게 흡연력이다. 담배 피시냐고 여쭤보면 대부분 엄청 당황해하신다. 혹시라도 담배를 많이 태우셨다면 초조함이 배가 된다.
이럴 때면 꼭 의사랍시고 한마디 하고 싶어 진다.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셨으면 안 되셨죠…’
다행히 이렇게 말씀드린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만약 의사에게 그런 이야기로 들은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셔서 하루 종일 자책감에 잠 못 이루실것이다.
레지던트 시절, 어떤 교수님께서 진료를 보는 건 연애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셨다. 그때는 환자들이랑 연애하라는 이야기인가라는 좀 이해가 안 갔는데 (아직도 신출내기 지만) 그때 은사님의 말이 이런 말이었을까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모든 사건은 앞뒤 사정을 살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설픈 충고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
앞에서 말한 사건의 배후에는 남자 친구의 무심함이 깔려 있듯이, 의사는 항상 환자분들의 전후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담배를 시작했을 때는 대부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흡연을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끊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나도 담배를 끊은 지 거의 10년이 다 되가지만, 술을 먹은 날에는 어김없이 담배 생각이 난다. 나의 말 한마디가 환자분들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을 조심 또 조심하려고 한다.
여자 친구의 기분을 살피듯이
아무튼 그날 지금의 와이프와 헤어질 뻔했다. 처음에는 눈물 찔끔 흘리던 와이프는 나중에는 거리 한가운데서 대성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나의 무심함이 쌓였댄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결혼을 하고도 와이프의 생일날은 여전히 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