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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물어줄 박씨는 없다.

불행의 이유

by 키튼

내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분들을 보게 된다. 그중에는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에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분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분들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알콜성 간경화라는 병은 수많은 병들 중에서도 악마 같기로 손에 꼽는 병이다. 일단 간경화가 생기면 '복수'라고 하는 배에 물이 차는 증상을 겪게 되는데, 심하신 분들은 일주일 만에도 배가 산만큼 불러와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분들은 '복수 천자'라는 시술을 통해 주기적으로 배에 물을 빼주는 시술을 하면서 간이식이 가능한 날까지 버텨야 한다.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 분들은 의료진의 말을 잘 따라 주시 지면 그중에는 그렇지 못한 분들도 종종 있다. 어떤 환자분은 술 때문에 간경화까지 얻으셨으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분이 계셨다. 거의 매주 응급실에서 복수를 빼드리면서 보호자 분과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환자분의 와이프 분은 아직도 남편분을 많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남편이 술만 안 먹으면 정말 잘해주고 착해요'


실제로 환자분은 간성혼수에서 깨어나면 세상 겸손하고 젠틀하신 분이었다.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하고 어떻게든 가장으로써 책무를 다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그러기엔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힘겨워 보였다.


그분들을 보면 흥부 부부가 떠올랐다. 가난하지만 금슬이 좋고 착하신 분들. 전래동화에서 흥부 부부는 제비가 물어준 박씨로 부자가 되었지만, 현실에서는 더욱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간다.




많은 책들이 우리는 현실을 '긍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와이프 분은 당신의 남편을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 '술을 좀 많이 좋아하는 자상한 남편'쯤으로 '긍정'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대학교 정신과 채정호 교수님은 긍정에는 진짜 긍정과 가짜 긍정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 긍정이란, 사물의 존재방식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긍정'이 이니라 '왜곡'이다.


알콜성 간경화라는 병은 하루 이틀 폭음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다. 수십 년간 꾸준한 음주로 간이 버틸 수 있는데 가지 버티다가 기능을 잃어버리는 병이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잘못된 선택의 순환 고리가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다 -> 다니던 직장에서 잘린다 ->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우울하다 -> 술을 마신다. -> 간경화가 악화된다. -> 병원에 입원한다.


이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본인이 스스로 알코올 중독자라고 인정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구했더라면 이 정도까지 오진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리고 와이프 분도 남편의 알코올 의존을 그저 술을 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잘못도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질수록 삶이 팍팍해짐을 느낀다. 보고 싶은 가족들 조차 볼 수 없고, 친한 친구들과 술 모임 하는 것도 할 수 없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잘 봐야 한다. 아직 코로나 19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해 여름이면 좋이 지겠지, 우리나라는 곧 좋아지겠지 라는 가짜 긍정이 아니라. 묵묵히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주변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면

이렇게 스스로를 시각화해 보세요.

주변 사람들이 태풍이고 내가 태풍의 눈이라고요.

태풍에 휘말리지 말고

고요한 태풍의 눈에서 나오는 지혜의 소리를 따르세요.


-혜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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