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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시술했던 환자분이 혈변을 보셨다.

펠로우 성장기

by 키튼

오늘 내가 시술했던 환자분이 혈변을 보고 응급실로 오셨다.

1cm 정도 되는 용종을 10개 정도 제거했고, 항응고제까지 먹고 계셨던 분이라(시술 3일 전부터는 중단하신 상태셨다) 혈변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분이었다. 환자분은 시술 당일 입원하셨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괜찮았다 퇴원해서 다시 항응고제를 복용하자마자 피가 나셔서 오셨다. 다행히 많은 양의 피는 아니었지만, 고생하셨을 환자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내가 아니라 좀 더 경험 많은 교수님이 시술하셨으면 피가 안 났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걸 어떻게 아셨는지 지도교수님은 먼저 와서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나도 펠로우 때 피가 났던 환자가 있었어.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 원래 1달에 한번 정도는 꼭 이런 환자들이 있으니까. 운 나쁘게 박 선생이 걸렸다고 생각해.”




환자분께 죄송한 마음에 괜찮으신지 여쭤보러 갔다. 찾아뵙기 전에 환자분이 화를 내시지 않을까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막상 환자분을 찾아가니 본인이 선생님 말 안 듣고 퇴원해서 생긴 일이라 오히려 죄송하다고 하셨다.


이런 환자분과 교수님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 교수님께 크게 혼내시고 환자분께 당신 탓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환자분은 꽤나 깔끔하게 시술을 잘했다고 생각했던 분이라, 내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와이프의 작은 이모께서는 소아과 전문의신데, 지금은 의사를 안 하시고 살림만 하신다. 그분께서 하셨던 말이,

'병원이 너무 무섭다'라는 것이었다. 의사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 말이 너무 실감이 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술기는 더 복잡해지고,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럴수록 의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는 더욱 높아진다.

오늘도 하루 종일 내시경실에서 시술을 하고 나왔다. 합병증을 겪고 나서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 써서 내시경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조직검사를 하더라도 꼭 물로 씻어보고 피가 멈추는 중인지 확인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른 한 사람분의 훌륭한 내시경 의사로 성장하는 게 나를 믿어주고 허물을 감싸주신 교수님과 환자분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내일도 열심히.

그것밖에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제 그만 우울감에서 빠져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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