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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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교 다닐 때 매일 과탑을 도맡아 하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사실 이 친구와 나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못했다. 병원 실습을 할 때는 이름 순서대로 같은 팀이 되는데 이 친구와 나는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항상 같은 팀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한 팀 내에서 상대평가로 A, B, C가 갈리는 것이었다. 과탑이 었던 그 친구는 항상 팀 내 A를 도맡았고, 나는 잘해봤자 B 아니면 C가 되었다. 사실 성적에 크게 의미를 두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별 생각이 없다가 틀어지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신경과 실습을 돌 때였다. 항상 실습이 끝나고 나면 1주일 동안 자신이 맡은 환자를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발표를 기준으로 실습 점수가 갈리게 되어 매우 중요한 이벤트 중에 하나이다. 신경과는 의대 내에서도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한 과라서, 나는 준비한 슬라이드 한 장 한 장마다 교수님과 레지던트들의 비난과 콧웃음을 받았다. 그래도 나름 열심 준비한다고 만들었는데 너무 심하게 혼나서 속이 많이 상했다. 다음은 과탑인 그 친구가 발표하는 차례였다. 이 친구가 만들어 온 ppt 자료는 무려 100장. 발표가 끝나고 나서는 나중에 꼭 우리 과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교수님과 레지던트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이제 병원 실습을 한지 어언 10년 전 일인데도, 그날의 창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그 친구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을 테지만, 나는 그 친구와 발표로 엮일 때마다 열등감에 몸부림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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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만년 2등이었다. 하필이면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소위 말해서 엄친아였다. 운동도 잘했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인기도 많았다. 본인은 안 하고 싶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적극 추천을 해서 학생회장으로 당선이 되었을 정도이다. 고등학교 때는 나름 공부에 자부심이 있던 터라, 어떻게든 그 아이를 이기고 반에 1등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나의 고등학교는 고3 때 전 학년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시스템이라, 그 친구가 자러 가면 무조건 1시간씩 더 남아서 공부를 하고 자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그런데 결국은 수능 보기전까지는 한 번도 못 이겼다. 나의 그 친구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의 역사는 너무나 유명해서 아직도 고등학교 동기들을 만나면 나를 놀려먹는다. 고등학교 얘들이 보기에 나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던 살리에르 같아 보여 재밌었나 보다.
사실 이 나이 먹어서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성적 이야기를 하는 거 자체가 너무 우습다. 공부를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떤가, 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는 것을.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그때는 못했다.
그냥 나보다 잘하면 무조건 질투부터 났고 미워하고 피해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아쉽다.
우연히 만난 과탑 하던 친구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서울 토박이인 친구였는데 지방이 페이가 좀 더 세다는 말에 임상강사도 하지 않고 취직해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이 곳에서 형 만나서 너무 반갑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도 진심으로 반가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친구에게 좀 더 잘해줄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 드는 생각은 친구보다 시험 점수가 좀 더 뛰어난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뛰어난 친구랑 잘 알아두고 연락하고 지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소위 말해서 인맥이라는 것이겠다.
그래서 누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냐고 물어보면 부끄럽다. 너무 잘하려고 만해서 주변을 챙기지 못했던 게 생각나기 때문이다. 때론 잘하는 것보다 잘 지내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항상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 세상이다. 군의관 때 동료였던 친구는 군대에 있으면서도 항상 최신지견을 잘 알고 있었는데, 레지던트 동기 카톡방에서 다 올라온다고 하였다. 그 친구도 뛰어난 친구였지만, 그런 것이 그 친구의 경쟁력이 되어주겠구나 싶었다. 사실이 말이 쉽지, 인맥이라는 것이 억지로 생기지도 않고, 자존심만 센 나 같은 성격은 먼저 안부 문자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씹힐까 봐 무섭기도 하고, 누군지 기억도 못할까 봐 겁나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위악만 부리지 말자. 일부로 못되게 굴고, 피해 다니면 나처럼 후회하게 되어 있다.
그 친구는 훌륭한 안과의사가 되어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총명하던 친구가 두 아들을 케어하느라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도 하였지만, 한 명은 벌써 다 키워서 유치원 보낼 거라는 말에 부럽기도 했다. 하여튼 뭐든지 빠릿빠릿한 건 알아줘야 한다.
진심으로 그 친구가 잘 살길 빈다.
뭐든 열심히 하는 친구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말 안 해줘도 잘 살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