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의사, 중간 의사, 큰 의사
소화불량을 주소로 환자 한분이 오셨다. 그분은 6개월 전에도 위 대장 내시경 포함, 복부 CT 검사까지 하셨지만 여전히 소화가 잘 안되셨고, 심지어 구토 증상까지 있으시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자신의 병은 심인성이라는 말을 들었고, 자신도 그런 거 같긴 하지만 너무 걱정돼서 밤잠을 못 이루겠다고 하셨다. 실제로 환자분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하신 상태였다. 눈길은 어디에 둘지 모르는 상태로 땅바닥만 보고 계셨다.
나는 평소와 똑같이 소화불량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마지막 내시경은 언제 받았는지, 특별히 드시는 약이 있는지 차근히 묻다가 어떤 질문에 도달했다.
“환자분, 요새 걱정거리 있으세요?”
무심코 묻는 나의 질문에, 환자분은 머뭇거리시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사실 환자분의 두 아들들은 현직에서 훌륭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의사라고 하였다. 큰 아드님은 가정의학과, 둘째 아드님은 정신과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순간 나는 어설프게 환자분께 건강상담 정도 하려고 하였다가 멈칫하였다. 의사 아들을 두 명이나 둔 환자분께서 뭐가 모자라서 나 같은 햇병아리 임상강사에게 찾아오셨을까?
“사실 아들들한테 아프다는 말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에요. 그때마다 엄마는 마음의 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요. 저도 알아요. 제가 남들보다 예민한 거. 그렇지만…”
환자분께서는 결국 눈물까지 보이셨다. 나는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
바로 어제였다. 평소 때처럼 속이 쓰리다는 어머니께 퉁명스럽게 “나도 그래”라고 말하고 약국 가서 약 사먹으라고 그랬다.
환자분은 걱정은 너무되고 아들들에게 말하면 혼만 날 거 같아서 어렵게 걸음을 하셨다고 하였다. 아드님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가지고 오신 건강검진 자료에는 정말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검사가 첨부되어 있었다. 머리 MRI부터, 각종 암표지자, 초음파 심지어 헬리코박터 면역혈청 검사까지.
각종 검사 너머로 어머님께 효도하고픈 아드님들의 마음도 전달되었다. 일단 나는 더 이상의 검사는 불필요한 거 같지만, 환자분께서 너무 힘들어하시고 구토까지 하셨다고 하니 내일 당장 위내시경 정도만 해보자고 설명드리고 환자분을 돌려보냈다.
위내시경을 검사하고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뵙던 날이었다. 환자분의 위내시경은 역시나 깨끗하였다. 위축성 위염 소견이 조금 있었지만 나이를 감안하였을 때 그렇게 특별하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환자분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검사 결과가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자셨다고 하였다.
“어머니, 위는 너무 튼튼하고 건강하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맛있는 거 마음껏 드시고 편히 주무세요”라고 말하고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드렸다. 환자분은 마치 암이라도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거 같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해드린 거 같아 머쓱하고 민망하였다.
“어머니, 둘째 아드님께서 저보다 훨씬 전문가시니까 더 잘 아시고 설명하셨겠지만, 가끔 이렇게 우울함과 공허함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요새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아드님 말처럼 약도 드셔 보시고 상담도 받아 보세요.”
환자분은 본인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의 말이 너무 차가운 거 같아 속이 상하셨다고 하였다.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면 자신이 덜 힘들었을 거라고 말씀하였다.
사실 많이 부끄러웠다. 저 환자분이 진짜 나의 어머니였다면 내가 그렇게 친절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께 무심코 던졌던 차가운 말들이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도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다. 어머니는 못난 아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당신의 우울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셨다. 어머니는 정신과 치료 후 몰라보게 좋아졌다.
어머니에게 많은 사람들이 의사 아들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이고, 다 소용없어. 자기 건강 자기가 챙겨야지” 하면서 농반 진반 섞인 이야기를 하신다.
오히려 나에게 어설픈 의학지식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속쓰림과 우울함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듣고 싶었던 건 나의 의학 소견이 아니라
“엄마, 목소리가 우울해 보이네? 무슨 일 있어?”
이 말 자체가 아니었을까?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고치는 건 감히 생각도 못하겠고, 부모님 마음이라도 살필 줄 아는 줄 작은 의사라도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