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강사 종료
친구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이 먹을수록 설레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0대 , 20대 시절 느꼈던 어떤 강렬한 감정들…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이때 돌이켜보면 무언가 아련하기만 한 그것들이 그립기도 하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의 얼굴들은 마치 인생을 다 산 것 같아 보여 우습기도 했다.
10대 시절, 30대가 되면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초연해질 줄 알았다.
그때는 너울대는 감정의 파도가 힘들었기 때문에 무뎌지기만을 기도했던 거 같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무뎌진다는 것은 어딘가 고장 나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헤어짐의 순간은 늘 힘들다.
얼마 전 정들었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임상강사가 종료되었다. 내시경을 하는 일도 일종의 육체노동이라 반나절 동안 내시경실에 있다 보면 힘이 쭉 빠진다. 그럴 때마다 내시경실 간호사들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중간중간 그녀들의 사는 이야기, 나의 사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다른 듯하지만 묘하게 닮아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녀들은 나를 어떻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많은 힘이 되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올 즈음에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새로 산 옷은 처음 입을 때 그 신나는 감정은 사라지지만 입을수록 애착이 생기고, 취향에 맞는 노래도 처음 들을 때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듣는 열정은 사라지지만 날 위로해주는 하나의 큰 요소가 되어 의미가 생기고, 사랑하게 된 사람을 처음 봤을 때 호기심, 처음 손잡았던 설렘, 처음 입을 맞출 때 두근거림 모두 사라지지만 내 옆이 아닌 그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고 제 일부가 되어 버리죠.
감정은 물 같아서 금방 변해버리지만 감정이 지나간 그 자리 뒤에 오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은, 땅에 깊게 내린 나무의 뿌리처럼 뽑아내기 힘든 것 같아요.
처음으로 의사면허를 따고 임상강사까지 1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중에 지나간 수많은 인연들. 인상 깊었던 환자분들.
헤어짐의 순간이 처음은 아니지만, 무뎌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삶의 깊은 추억이 되어 한구석에 소중히 존재한다.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인연들.
그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같다.
항상 소중히 가슴 한 구석에 간직할 것이다.
나무의 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