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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보 의사

먹고사는 일

by 키튼

얼마 전에 진료하면서 겪은 이야기다. 한 환자분께서 검진차 대장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환자분의 대장에는 8mm 정도 되는 혹이 있어 내시경 중에 제거를 하였다. 수면에서 깬 후 제거한 혹을 보여드리고는 조직검사가 2주 정도 걸리니 조직검사 결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내원해 달라고 설명드렸다. 환자분께서는 조금 알 수 없는 표정을 하시고는 진료실을 나갔다.

2주 뒤, 환자분을 다시 뵈었을 때 뭔가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조직검사 결과는 선종입니다. 다행히 선종이 많이 있지는 않고, 잘 제거가 되어서 대장내시경은 5년 뒤에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드렸다.

“선생님”

환자분께서 낮은 목소리로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제가 이제까지 받아왔던 곳에서는 대장내시경 가격이 이 정도 나왔던 적이 없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내야 될 돈이 많은지 설명 좀 해주시지요”

나는 조금 당황한 상태에서 다시 설명드렸다.

“환자분, 이제까지는 용종을 제거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사진을 보여드렸다시피 이번에는 용종을 제거하였고,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대장내시경 하기 전에 설명드렸습니다. 그것은 환자분도 동의하신 사항입니다”

환자분께서는 화를 꾹 참는 얼굴이셨다. 얼굴에는 한가득 억울함과 과잉진료를 받았다는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환자분이 진료실을 나간 뒤에도 한참을 집중하지 못하고 컴퓨터 빈 화면을 보았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실비 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용종제거술을 하고 나면 보험을 청구하시게 된다. 그러면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환자분은 실비 보험이 없으셨나 보다. 하지만 힘들게 장을 비우고 대장내시경을 했는데도 실비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있는 용종을 떼지도 않고 그냥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요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육체노동부터 감정노동, 정신노동까지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쉬운 일도 그렇게 쉬워 보이기까지 쏟아부었던 많은 보이지 않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가 나에게 너처럼 쉽게 돈 버는 직업이 어디 있냐고 한 적이 있었다. 잠깐 환자 보고 돈 받는 거 보면 땡보 아니냐고. 물론 농담 반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 친구처럼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분도 사실은 “젊은 놈이 쉽게 돈 버는구먼”하고 한 소리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김 부장 바지에 묻어 있던 검은 기름이 베이지색 시트에 묻는다.

으악!

...

시트에 붇은 기름을 발견한 손님의 언성이 높아진다.

“아.. 죄송합니다”

“이거 어떡할 거야!”

...

큰 소리를 들은 형이 달려온다. 큰형이 가죽 클리너와 헝겊을 가지고 온다.

“너무 세게 하면 가죽 색이 하얗게 변해”

깨끗하게 기름때를 지운 후 큰형이 손님에게 말한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90도로 세 번은 인사한 거 같다.

...

큰형 는 그렇게 살아왔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남 등쳐먹고 사기 치는 줄 알았는데, 허리가 부서져라 굽혀가며 인사하고, 사죄하고, 일하면서 기계처럼 미소 짓는다. 김 부장은 그런 형의 모습에 적잖은 깨우침이 있다.


"형, 괜찮아? 미안해"

"야,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저 정도면 양반이야. 소리 지르고 차 값 물어내라 하고 물건 던지고 발로 차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 그래도 만 원 받았잖아. 약품 값 받았으니 본전이지 뭐. 남의 돈 가져오는 게 쉬운 줄 알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中>


김 부장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짓는 사람이다. 서울에 자가로 살면서 대기업에 다니는 본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대기업을 나가게 되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자신을 얼마나 편협하게 만들었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이 멸시했던 카센터를 하고 있는 형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이 만만치 않고, 세상엔 쉬운 일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사들의 인생이 편한 인생인지 아닌지, 의료 수가가 적정한지 아닌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엄살 부리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내가 다른 분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냥 가운을 입고 무표정한 의사가 사실은 남모를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냥 서로 비교하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새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참 불편하다. 집을 가진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 주식을 하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 아이를 가진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 여자와 남자.

다들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개인일 뿐. 서로 비난하고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정색하고 말씀드렸나 싶다. 다시 그 환자분이 오면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다. 올가미로 큰 용종을 걸어서 잘라내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고. 의사들이 사기꾼들 같지만, 너무 미워하지 마시고 혈압약 잘 챙겨 드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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