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영어 영어!

한국인에게는 언제가 영어가 있다

by 키튼

어릴 적 상처에 대해 하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시험 후기에서 트라우마 이야기까지 꺼내나 싶으시겠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 같아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 적어봅니다.

저는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지방 도시였지만 학구열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곳이었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나름 반에서 1등도 해보고,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제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간과하신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영어’였습니다. 당시 저는 알파벳 정도 겨우 뗀 상태에서, 그 지역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아이들이 다니던 영어 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영어 학원 레벨 테스트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당황스러움과 암담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종이는 하얗고 글씨는 까맣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윤선생 파닉스에서는 이런 어려운 단어는 없었는데...”

“황금 알파벳을 찾으면 되는 게 영어 아니었어?”

그 순간의 막막함과 좌절감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습니다.



레벨 테스트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고 낮은 레벨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면 되었을 텐데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욕심을 부리셨습니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저를 학원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에 넣으셨죠. 어쩌면 새끼 사자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절벽에서 미는 어미 사자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저는 2년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모멸감과 열등감을 주기적으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 반에는 외국에서 몇 년씩 살다 온 아이들, 혹은 한국에서 이미 영어 선행 학습을 완벽히 마친 아이들만 가득했습니다.

수업은 한국인 선생님과 원어민 선생님이 번갈아 진행하셨는데, 특히 한국인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책상 밑에 숨고 싶을 정도로요. 오히려 원어민 선생님 수업은 수월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든 말든, 저는 딴생각을 하며 멍때리고 있으면 시간이 알아서 흘러갔습니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니 오히려 멍때리기 쉬웠죠.

하지만 문제는 한국인 선생님 수업… 한국인 선생님 수업은 멍때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한 명씩 지적하며 영어로 문장을 만들어 보게 하셨거든요. 예를 들어, 그날 decide라는 단어를 배웠다면, "나는 오늘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다"라는 문장을 영작해 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수업은 학생이 10명 남짓이었기 때문에 예외가 없었습니다. 모두 한마디씩 해야 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영어가 정식 과목으로 포함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야 비로소 I am a boy 같은 문장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던 시기였죠.

결국 어머니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셨는지, 학원의 선행 학습을 따라가기 위해 과외 선생님까지 붙여주셨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과외 선생님께서는 초등학생에게 영작을 시키는 건 너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미리 선행 학습을 해야 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학원의 냄새, 분위기, 그리고 수업 중 느꼈던 그 무거운 압박감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PTSD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영어에 대한 공포감은 저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의과대학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저와 비슷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영어권 국가가 아니니까요.

어렸을 적 외국에서 살다 왔다거나, 토익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한들, 솔직히 일상에서 영어가 필요한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학문적으로나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테스트하는 도구로 변질된 지 오래입니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영어 시험 점수도 높은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데 20여 년의 세월을 쏟아부은 결과, 이제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지적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며, 영어를 잘하기까지 필요한 것은 단지 더 많은 노출과 반복의 양일 뿐이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영어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꾸준히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외국에 살지 않아서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꾸준히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준다면 충분히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반복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국어 천재입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묘한 우월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아마 영어 원어민들도 자신들의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만날 때 비슷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론은 주눅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영어를 잘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전반적인 영어는 아니더라도 OET에 합격할 정도의 영어 실력, 혹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과 경험을 PR할 정도의 한정된 영어 실력은 단기간의 피나는 연습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취직해서 다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다음 장에서는 비록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제가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에 대해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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