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양귀자-
#모순#
저자 : 양귀자
발행 : 1998.6.27
출판 : 쓰다 출판사
(page.9) 어느 날 아침 문득,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꼭 그래야만 해!"
한 번만 더 맹세코, 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다면 평소의 나는 이런 식의 격렬한 자기반성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게다가 그런 식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열혈한을 만나면 지체 없이 경멸해버리고 두 번도 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침,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부르짖었다.
내 인생을 위해 내 생애를 바치겠다고.그런 스스로를 향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눈물이,기척도 없이 방울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밤사이 비가 내려 허약한 천장이 또 새는 것인 줄 알았다.그것도 아니라면 흥분해서 얼굴에 땀이
흐르는 줄 알았다.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눈물이었다.
(page.20) 니네 어머니,아니 우리 어머니와 이모를 놓고 비교하는 일을 멈춘 때는 내가 사람들 표현대로
'심심하면' 가출을 하기 시작한 무렵과 같았다.나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그래서,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 다 거두어버렸다.
이런 것이 운명이라면, 그것을 내가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것이 사춘기의 내가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어머니의 경험이 나에게서 멋진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동기 유발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 vorosbenisop, 출처 Unsplash
안진진.그녀의 나이 스물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래,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진진은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고찰해본다.
이름,나이.학교,사무직지라는 직업 등등......그것뿐이었다.
그녀를 설명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그래서 그랬나보다.아침부터 외마디 외침을 한 것은.
생의 부피가 얇은 안진진의 삶.부모의 불화와 어려운 가정 형편,아버지의 부재와 아등바등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고초스런 인생사.진진 역시 이른바 K장녀로 세상에 대한 어떤 호기심과 기대를 하지 못한채
어머니와 비슷하게 치열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삶이었다.
안쓰러운 진진의 어머니.진진의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었다.성격이나 외모는 물론 결혼할 날짜까지 같은
어머니와 이모. 그 둘은 둘도 없는 자매였고 친구였으며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만우절인 4월1일에 똑같이 결혼한 어머니와 이모는 그 결혼을 기점으로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던 이모네와 달리 진진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착쥐로 인해 더 이상
쌍둥이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삶의 굴곡을 겪게 되었다.
한 때 진진은 이모가 자신의 어머니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적당히 자신의 감정을 숨긴채
적당히 살아왔고,그저 하루하루를 흘러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진진에게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나유겸과 김장우. 1분1초 단위로 모든 것을 계획을 세워서 일을 진행하는 나유겸과 감상적이고 몽환적인 김장우.
진진은 그 날 아침 외마디 부르짖음과 함께 결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부피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고
김장우과 나유경, 두 사람 사이에서 감정과 현실 중에 선택을 하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어머니의 삶, 자신이 갖지 못한 이모의 삶
무엇인 현실적인지 알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된 그에게 점점 다가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