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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부족하면 ‘빈혈’이지만
언어가 부족하면 ‘빈어증

어휘력이 곧 사고력이다

피가 부족하면 ‘빈혈’이지만 언어가 부족하면 ‘빈어증’이다


“인간은 혈액이 풍족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학생은 아는 단어의 수가 많아야 공부가 재미있다. 피가 부족한 병을 빈혈(貧血)이라 하고, 어휘력이 부족한 공부병을 빈어(貧語)라고 하며, 심한 경우를 ‘빈어증(貧語症)’이라고 한다. 빈혈을 방치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전신(全身) 허약자가 되고, 빈어를 그냥 두면 전(全) 과목 공부를 싫어하게 되고 결국에는 공부를 포기하여 사회적응 장애의 문제아로 전락한다.” 2016년 4월 25일 자 주간조선 특집, 빈어증 관련 기사에서 성균관대 중문과 전광진 교수가 지적한 빈어증에 대해 심각한 우려감을 표시하는 주장이다. 전광진 교수가 풀이한 ‘제자(弟子)’의 뜻도 의미심장하다. ‘제자’란 나의 아우 같기도 하고 자식 같기도 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여제여자’(如弟如子)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제자라는 한자어가 품고 있는 깊은 뜻을 알고 나면 제자에 대한 자세와 태도는 물론 생각도 달라진다. 이처럼 어휘력이 달라지면 그만큼 사고력도 덩달아서 달라진다. 역으로 어휘력이 부족하면 사고력도 떨어진다. 사고력을 늘리려면 어휘력을 늘려야 한다. 생각하는 힘은 절대적으로 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어휘력의 수준에 비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어휘력 수준은 물론 일반인들도 과거에 사용했던 어휘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어휘력 수준이 현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레고 블록의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하면 그만큼 만들 수 있는 조립품의 종류도 다양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력이 다양하면 그 어휘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남다른 생각도 풍부해질 수 있는 이치다. 예를 들면 벽돌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으면 다양한 담을 튼튼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게 모색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이나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미식가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식가를 한자로 쓰면 미식가(味食家)일까 미식가(美食家)일까. 실제로 822회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미식가의 미 자(字)는 한자로 무엇입니까’라는 사지선다형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다. ① 米 ② 未 ③ 美 ④ 味 약 30여 명 남은 학생 중에서 미식가의 ‘미’ 자를 아름다울 미(美) 자로 쓴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모두 맛을 의미하는 미(味) 자를 썼다. ‘미식가’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에서 ‘미’ 자는 당연히 맛을 의미하는 ‘미(味)’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빈어증은 이처럼 그 원인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우리말의 대부분이 한자어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주간조선에 인터뷰했던 전광진 교수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과목 교과서에 쓰인 한자어는 총 1만 2787개이고, 누적 출현 빈도는 총 22만 3500회라는 사실, 그리고 학술도 구어의 99%, 개념류 사고(思考) 도구어의 98%가 한자어라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빈어증의 가장 심각한 원인은 결국 한자어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거꾸로 한자어를 많이 알고 필요한 문장에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길이 바로 어휘력 향상의 지름길이며,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빈어증(貧語症)이라는 단어도 역시 한자어다. 빈혈(貧血)이라는 한자어에서 빈(貧)이 모자라거나 부족하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어라는 사실을 안다면 빈혈은 금방 피가 부족한 현상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빈어증도 언어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症)임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전광진 교수에 따르면 빈어증 상태를 쉽게 진단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애국가 1절 가사를 보고 가사에 등장하는 단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진단해보는 것이다. 빈어증 조기진단은 예상외로 간단하다. ‘애국가’ 1절을 불러 보면서 여기에 등장하는 몇 가지 단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테스트해보면 빈어증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예를 들면 ‘보우(保佑)’라는 단어가 사람을 잘 보호(保護)하고 도와준다(佑)의 한자어의 조합임을 아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가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보전(保全)이라는 단어 역시 보호(保護)하여 유지(維持)의 합성으로 탄생한 한자어임을 안다면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언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빈어증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의도적으로 우리말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를 찾아서 열심히 어휘력을 향상하는 별도로 갖지만 우리말을 공부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특히 검색도 텍스트 메시지보다는 유튜브로 영상을 검색하는 시대에 어휘력은 더욱더 빈약해지고 있다(참고 "귀찮게 왜 읽어?"…요즘 10대들 검색도 네이버·다음 아닌 유튜브로. 텍스트는 훑고 넘어가는 스마트폰 세대… 읽고 쓰는데 약해, 조선일보 2018.1.19일 자 기사). 단어로 된 문장을 읽고 해석하며 생각하기보다 영상을 보고 이미지로 상상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문장 속의 어휘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이 일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얻고 생각해보자. 일 년 전에 사용했던 개념과 지금 사용하는 개념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지를. 특정한 주제로 짧은 글을 써보면 여기에 동원되는 단어나 개념의 수준을 보면 내가 얼마나 개념이 없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면 반성(反省)과 성찰(省察), 백미(白眉)와 압권(壓卷), 변동(變動)과 변화(變化)와 변천(變遷), 비난과 비판, 그리고 비평의 차이점(최성우, 2009)을 구분해서 글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두가 한자어로 된 미묘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유사한 말이다. 개인차원의 일회적인 반성과 다른 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지속성을 띠는 성찰은 다르다. 뛰어난 작품에는 백미와 압권을 함께 쓸 수 있으나 뛰어난 사람에게는 압권을 사용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변동이 일정기간에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하고 변화와 변천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이를 강조한다. 다만 변천은 사물의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는 곳, 예를 들면 맛이나 표정의 변화에 변천을 쓸 수 없다. 비난은 주로 잘 못된 점을 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고, 비판은 옳고 그름을 따져 말하되 주로 부정적으로 언급할 때 사용하는데 반해 비평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가리지 않고 상대의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을 말한다.



사고(事故)와 사고(思考), 사색(思索)과 사색(死色), 의사(醫師)와 의사(義士), 시작(始作)과 시작(詩作), 용기(勇氣)와 용기(容器), 부자(父子)와 부자(富者), 사원(社員)과 사원(寺院), 관장(管掌)과 관장(灌腸)은 우리말 발음은 같지만 한자어로 뜻은 다르다. 동음이의어다. 이런 동음이의어를 이해할 수 있는 원동력도 한자어로 된 어휘력을 의도적으로 공부할 때 생긴다. 한자어로 된 어휘는 하나를 앎으로서 비슷한 유사 개념 간에 연결고리를 늘려가면서 하나의 연대망을 구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시인(詩人)’의 ‘시(詩)’는 시정(詩情), 시집(詩集), 시심(詩心), 시문학(詩文學), 서정시(抒情詩)와 연결되고, ‘시작(始作)’의 ‘시(始)’는 시동(始動), 시말(始末), 시원(始原), 시조(始祖), 시종(始終), 시초(始初), 개시(開始)와 연결되어... 그물망과 연결 고리를 갖는 낱말은 그 자체를 설명하는 힘도 그 그물망에서 얻지만 더 나아가서는 그 그물망을 풍요롭게도 한다. 한 낱말은 항상 다른 낱말에 의지하여 그 뜻을 드러낸다”(황현산, 2018, 143쪽). 한자어로 된 어휘의 위력은 단어에 포함된 한자어 뜻을 알면 그 뜻을 가진 다른 단어의 뜻도 어느 정도 유추해서 짐작할 수 있다. 시작(始作)과 시작(詩作)에서 앞의 ‘시작(始作)’은 우리말의 ‘시작’한다는 의미이고 뒤의 시작(詩作)은 시(詩)를 짓는다(作)는 의미다. 이렇게 같은 ‘시’라는 말이지만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한자단어를 알면 그와 유사한 단어와 연대를 이루면서 하나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고(思考)와 사유(思惟)와 사상(思想), 그리고 사색(思索)은 모두 생각한다는 의미의 사(思)로 시작하지만 미묘한 의미상의 차이를 지닌다(최성우, 2009). 사고가 고정된 시점에서 개별적 대상에 대한 일시적인 생각인데 반해 사유는 체계적이며 논리적이며 사고에 비해 부드럽고 유연하며 지속적이다. 이에 반해 사상은 사고가 거듭되어 사유가 생기고 사유가 숙성되면 어느 시점에서 하나의 일정한 논리적 체계를 갖게 되는 생각을 뜻한다. ‘사색에 잠긴다’에 ‘사색’ 대신에 사고나 사유 또는 사상을 집어넣으면 어색해지는 이유는 각 단어들이 지니고 있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빈어증은 외국어 공부를 방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영어의 ‘accomplishment’를 우리말로 관철(貫徹)이라고 번역하면 관철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중고가 따른다. 제2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그만큼 많이 알아야 한다. 영어를 공부할 시간에 관철이라는 한자어를 별도 가르치는 노력이 따르지 않는 이상, 모국어를 기반으로 외국어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contribution’과 ‘involvement’를 각각 번역하면 ‘기여나 공헌’과 ‘관여나 개입’이라고 한다. ‘기여나 공헌’과 ‘관여나 개입’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contribution’과 ‘involvement’의 의미는 물론 두 단어의 의미상 차이를 이해할 길이 없다. 영어의 ‘contribution’은 어떤 일에 몰입해서 헌신적으로 기여한다는 의미다. 헌신적 기여는 온몸을 던져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몰입과 집중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영어 ‘involvement’는 'contribution'에 비해 몰입과 집중의 강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적극적 ‘기여나 공헌’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서의 ‘관여나 개입’으로 번역한다. 이런 한자어는 물론 한자어의 미묘한 차이를 반영해서 번역할 때 본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하지만 영어 단어의 미묘한 차이점은 물론 한자어를 모르면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 학습과정을 방해하는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등장한다. “외국어로는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144쪽). 외국어를 배우기 이전에 모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깊은 사색을 통해 사고방식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근원은 깊은 문제의식을 적확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어휘력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숙고하는 것이 손전등이라면 행동하는 것은 전조등이다”(270쪽). 롤프 도벨리의 《불행피하기 기술》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말을 학부 수업시간에 설명해주면서 숙고와 행동의 차이점을 멋지게 비교한 문장이라고 소개했더니 잘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의아한 적이 있다. 속사정을 물어보니 손전등은 알겠는데 전조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숙고를 손전등에 비유하고 행동을 전조등에 비유한 수사법이 바로 은유법이다. 은유법은 복잡한 생각이나 현상을 알기 쉽게 표현하면서도 각각의 현상이나 대상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핵심을 꿰뚫어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사법이다. 하지만 은유법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은유에 동원되는 어휘력 수준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독서는 피클’이라고 은유적으로 묘사했을 때 독서가 피클인 이유 이전에 오이와 피클의 차이점을 알아야 은유법으로 표현된 독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독서는 피클’이라는 은유는 책을 읽기 전에는 오이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자자의 생각에 물들어 피클로 바뀌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오이가 피클이 될 수 있지만 거꾸로 피클이 오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책을 읽기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바로 독서의 위력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결국 은유적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풍부한 어휘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은유는 관계없는 두 가지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아 연결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사유법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관계 없는 두 가지 익숙한 어휘를 얼마나 많이 동원해서 양자를 연결시킬 수 있느냐가 은유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관건이다. 결국 어휘가 풍부할수록 그만큼 다양한 은유를 통해 다양한 사유를 전개할 수 있다. 알고 있는 어휘가 풍부할수록 두 가지 단어를 연결시켜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증가한다. 어휘력을 길러야 사고력도 깊어진다는 말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앎과 삶을 연결시키는 실존적 정언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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