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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들' 덕분에 '저자'가 된 한 해

책 쓰기에 도움을 준 ‘도구(道具)’에게 보내는 ‘송구영신(送舊迎新)’

책 쓰기에 도움을 준 ‘도구(道具)’에게 보내는 ‘송구영신(送舊迎新)’

덕분에 행복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도구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



올 한 해도 나는 내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도구 덕분에 창작의 기쁨을 누렸다. 나의 생각을 온전히 나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창작할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은인은 내가 만난 다양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흔한 도구 덕분에 생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창작은 나의 창의적인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독창(獨創)이나 독주(獨奏)의 산물이 아니라 내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수많은 도구들이 합작을 통해 이루어낸 협창(協創)이나 협주(協奏)의 산물이다. 내가 아무리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어도 그 생각을 적을 종이와 펜이 없거나 하나의 문서로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컴퓨터, 키보드, 그리고 마우스가 없다면 생각은 잠시 머물렀다가 휘발되는 파편에 불과하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을 붙잡아 메모할 펜이나 노트가 없었다면 찰나에 빛나던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것이 지금 여기서 내 생각의 자손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는 원동력은 생각을 글로 전환하는데 매개 작용을 하는 도구 덕분이다. 도구는 이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기구가 아니라 도구 자체가 내 생각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또 다른 주체다. 이 말은 혁명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 오로지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는 물론 사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체라고 생각해왔다. 주체인 인간을 제외하면 세상의 모든 생명체나 사물은 주체의 생각을 도와주는 객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치며 주체의 자리를 지킨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다면 세상은 수많은 생명체나 물체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의 세계라고 이해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내가 쓴 글과 책은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산물인가를 물어보았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과정에는 나의 창작과정을 도와준 도구의 조력이 결정적이었다. 나를 올 한 해 동안 여기에 있게 만들어준 수많은 은인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해주고 싶은 연말이다. 올 한 해는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내가 깨달은 인간적 지혜의 소중함에 감사드리고 싶은 생각과 더불어 나의 창작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보여준 도구나 기구에 대해서도 깊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을 쓸 수 있었을까. 부정적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책은 나에게 책을 쓸 수 있도록 자극을 준 소중한 행위자다. 내가 책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책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책은 저자가 쓴 작품을 넘어서 또 다른 작가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드는 자극제다. 그런 면에서 책은 누군가 읽기를 기다리는 물체가 아니라 어떤 작가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드는 행위자(actor)다. 책이 행위자로 역할 변신을 하는 근거는 책 또한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을 누군가에 부추기는 과정에서 영향이나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작가인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도구는 단순히 글을 쓰는 수단을 넘어선다. 오히려  작가에게 글이나 책을 쓸 수 있도록 자극이나 영향을 주는 도구나 기구가 언제나 내 주변에서 일정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면서 한 편의 글이나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나 기구가 의의로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창작의 기쁨을 누리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도구 10가지를 꼽아 보았다. 일명 창작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시너지 작용을 일으킨 10개의 도구다. 우선 ①책과 ②메모 노트, 그리고 ③포스트잇과 ④펜, ⑤노트북이나 데스크 탑 컴퓨터는 모두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는, 다른 말로 말하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자극제이자 글을 쓰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도구다. 그리고 글을 쓰면 그 결과를 저장했다가 늘 갖고 다니는 ⑥외장하드와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글의 원천을 찾아보거나 다른 목적으로 검색할 때 언제나 비서처럼 조목조목 알려주는 ⑦스마트폰과 내가 보고 싶은 책과 각종 필기구를 품고 다니는 ⑧가방, 어제와 다른 색다른 체험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의 이치를 파헤쳐 결국 몸으로 깨닫는 지혜의 출발점, ⑨신발은 분발이다. 이런 모든 움직임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동력은 결국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다. 그 몸을 만드는 ⑩운동기구가 체력을 축적해서 뇌력을 낳는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10 가지 도구나 기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글쓰기와 거기에 필요한 글쓰기 근육을 길러주는 행위자(actor)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자는 책을 쓰는 저자만 행위자가 아니라 저자로 하여금 책을 쓰도록 동기를 부여하거나 자극을 제공함으로써 행위의 원인을 제공하는 모든 생명체나 사물도 포함한다. 여기에서 행위자는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비인간(예: 생물, 기계, 환경, 건물 등)을 포함한다. 과속방지턱을 목격한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통과하는 운전을 한다면 과속방지턱은 운전자의 운전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인 셈이다.



이렇게 사람을 포함해서 특정한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스템을 연구하는 분야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이다. ANT는 1980년대 중반에 프랑스의 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 미셀 칼롱(Micell Callon), 영국의 존로(John Law) 등이 창시한 이후 많은 학문분야에 영향을 미쳐왔다. ANT에 따르면 인간은 주제이고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다 사물은 모두 객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도 수많은 행위자가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자 다른 행위자가 행위할수록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도구일 뿐이다. 내가 총을 들고 누군가를 쐈다면 나만 행위자이고 총은 행위자가 아닐까? 전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내가 총을 들고 쐈기 때문에 내가 주체이고 총은 객체인 도구가 된다. 그런데 내가 총을 보는 순간 본래 총을 쏠 생각이 없었는데 총은 나에게 흉기로 다가오면서 나로 하여금 총을 쏘도록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점에서 총은 나에게 행위를 부추긴 행위자다.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인간 중심주의나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다른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자는 생태주의 역시 아직 비생명체를 행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금 인간과 총의 관계에서 보듯이 비생명체인 총이 생명체인 인간을 자극해서 총을 쏘게 만드는 행위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모든 인간 행위는 행위자 본인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 행위가 이루어지기보다 행위자를 둘러싸고 있는 네트워크 안의 다른 행위자와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영향력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진다.


책은 저자가 쓰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저 자들이 쓴다


‘저 자들’은 저자의 책 쓰는 데 도움을 주는 수많은 ‘도구들’이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과정도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으로 조명해보면 재미있는 통찰을 얻는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쓰는 저자가 존재해야 한다. 저자만 있으면 책을 쓸 수 있을까. 저자는 책을 쓰는데 필요한 도구의 도움 없이는 한 글자로 쓰지 못한다. 책은 저자 혼자의 힘으로 쓰는 게 아니다. 저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그 속에 존재하는 도구들의 합작품이다. 저자가 책을 쓰고 싶다고 해서 금방 책이 한 권 써지는 경우는 없다, 책은 책을 쓰는 데 필요한 많은 도구와 환경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행위자(actor)가 주고받은 영향력의 합작품이다. 책을 둘러싸고 있는 행위자 네트워크는 우선 책을 쓰는 저자, 책, 노트, 펜, 포스트잇, 키보드와 마우스가 장착된 노트북이나 컴퓨터, 쓴 글을 저장하는 외장하드, 그리고 책을 쓰는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다양한 행위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 권의 책이 탄생된다. 



①책을 보면서 만년필로 밑줄을 치고 그 밑줄 친 내용이 포함된 페이지에 ③포스트잇을 붙여 둔다. 그 페이지를 잊어 먹지 않고 책의 특정한 부분에 나의 내용을 백업하기 위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입력한 다음 폴더를 만들어 저장해놓는다. 책은 나에게 글을 쓰도록 자극을 준 행위자고 포스트잇은 바쁜 시간에 특정 문장에 주목할 수 있도록 주의를 집중시키는 또 다른 행위자다. 다른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지 않았으면 그런 생각으로 그런 책을 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연히 들춰본 책의 특정 문장이 인두처럼 심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다. 곁에 있던 ②메모 노트를 펼친다. 참을 수 없는 메모의 기쁨을 참지 못하고 하얀 여백 위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파편을 몇 조각 붙잡아 쓴다. 쓰고 나니 그 메모의 흔적이 다른 생각을 불러와 이미 쓴 메모장의 다른 문장에 연결된다. 내가 쓰려고 해서 쓴 게 아니라 메모장의 유혹의 못 이겨 생각의 파편을 몇 조각 썼는데 마침 지나가던 생각이 그 생각의 파편을 보고 또 다른 생각의 파편을 불러와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게 바로 문장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이 아니라 쓴 문장이 다른 문장을 불러온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문장 역시 나의 쓰고 싶은 문장을 자극하고 다음 문장을 불러오는 행위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글이 글을 쓴다는 말이 나온다. 쓰고 싶은 글을 아무리 쓰려고 해도 나오지 않다가 일단 말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순간 그 글이 다음 글을 물고 이어지면서 한 장의 글이 완성된다. 책과 메모노트, 그리고 포스트잇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체나 도구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행위자 네트워크의 구성요소다.



④펜에는 붓펜, 만년필, 볼펜, 형광펜이 있다. 펜도 그 용도가 다르다. 붓펜은 찰나의 생각을 촌철살인의 아포리즘 형태로 붙잡아두는 도구다. 예를 들면 “공사다망(公私多忙)하면 다 망한다.” ‘공사다망(公私多忙)’이라는 사자성어를 근간으로 바쁜 사람이 위업을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 망한다’는 말과 접목시켜 탄생시킨 아포리즘이다. 붓펜이 하얀 백지 위에서 그림을 그리듯 써 나가는 까만 잉크의 흔적과 획을 그을 때마다 나는 종이와의 마찰 소리는 생각을 더 깊게 도와주는 배경음악이다. 만년필은 나만의 비밀 문장에 책을 읽다 만난 인두 같은 한 문장을 메모할 때 사용한다. 물론 책에 사인을 해줄 때에도 사용한다. 만년필 역시 촉끝에서 글자의 획에 따라 흘러나오는 잉크가 무늬를 그리면서 만들어가는 글자의 형상을 만들어가는 위대한 필기도구다. 볼펜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싶을 때 사용한다. 작은 행간을 파고 들어가 나의 의도대로 밑줄을 치면서 저자의 생각을 내 몸으로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밑줄 친 문장 중에서 특별히 더 기억하고 싶거나 심장에 꽂힌 한 문장은 형광펜을 사용하여 색칠을 한다. 다음에 다시 볼 때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점찍어둔 문장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펜은 내 생각을 도와주는 도구를 넘어 내 생각을 새롭게 잉태시켜주는 자극제이자 촉진제다. 만약 펜이 없었다면 내 생각은 저만큼 멀리서 아직도 과거를 향해 손짓을 하며 허공에 뜬 단상을 주워 담기 바빴을 것이다. 펜은 나에게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다는 명제를 각인시켜준 내 손의 연장이다. 



⑤노트북이나 데스크 탑 컴퓨터는 글쓰기의 절친으로 언제나 함께하는 내 신체의 연장이다. 노트북은 주로 강연할 때 내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빔 프로젝터에 연결시켜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 사용한다. 물론 노트북 없이도 생각을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트북 없이 프레젠테이션하는 결정적인 단점은 시각적 자료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한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텍스트 메시지는 말로 전달하지만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고 이미지에 담긴 상상력을 촉발하기는 쉽지 않다. 노트북은 지방 강연을 가거나 여행을 떠날 때 내 몸에 붙어 다니는 내 생각의 연장이다. 쓰던 글을 마저 쓰거나 색다른 장면을 포착하면 바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며 흔적을 남긴다. 이동 중이 아니면 주로 글은 연구실이나 집에 있는 데스크 탑 컴퓨터를 활용한다. 넓은 모니터에 다양한 자료를 펴놓고 강연자료 만들다가 책을 읽고 읽다가 떠오른 아이디로 강연 자료를 수정하고 그걸 기반으로 지금 쓰고 있는 책을 쓰기도 한다. 읽고 쓰는 일이 독립적으로 벌어지는 두 가지 활동이 아니다. 읽다가 쓰고 쓰다가 읽고 강연 자료를 만들어가는 동시 병행적 창작활동을 벌인다. 키보드는 손가락으로 전달받은 머릿속 생각을 컴퓨터 하드에 저장하는 인터페이스다. 키보드가 없다면 내 생각은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저장될 수 없다. 마우스는 가고 깊은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하고 글을 지우거나 추가할 때 원하는 대로 처리해주는 요술방망이 같다. 쓴 글을 일부 지우거나 복사해서 자리 이동을 할 때도 마우스는 마법의 손과 같은 기능을 발휘한다. 컴퓨터 부속장치이긴 하지만 마우스와 키보드는 구속된 생각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생각을 글로 전환시켜주는 매개 장치다.  



⑥외장하드는 내 기억의 연장이자 들고 다니는 제2의 뇌다. 가끔 뜻밖의 사고를 당해서 외장 하드에 저장된 글이나 자료가 뜨지 않아서 ‘뜨아~’했던 적이 많았다. 외장하드는 내 생각의 많은 부분을 글이나 자료로 정리해둔 아이디어의 창고이기도 하다. 요즘은 구글 드라이브에 자주 사용하는 강의자료나 책 쓰기 관련 자료를 저장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외장하드에 저장된 방대한 데이터가 불의의 사고로 복구가 불가능한 경험을 몇 번 해본 나로서는 가급적 노트북이나 데스크 탑 하드에 저장을 분산시켜해놓기도 한다. 외장하드는 여전히 나에게 생각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족적이자 창작 중에 있는 모든 책이나 글이 담겨 있는 비밀 보관소다. ⑦스마트폰은 카카오톡을 비롯한 메신저 역할과 각종 SNS에 남겨진 나에 관한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걸어 다니는 비서다. 특히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카톡 내 창이나 페이스북 나만 보기 옵션을 글을 저장해놓았다가 다시 꺼내보는 아이디어 창고이기도 하다. 신문 칼럼이나 잡지 등에 기고된 글 중에서 지금 쓰고 있는 책이나 강연할 때 활용할 단서나 화두가 담겨 있으면 링크를 복사해 역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 저장해놓았다가 본다. 스마트폰의 이메일은 물론 문자 메시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며, SNS는 세상 사람의 심리가 흐르는 마음의 강이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창작하는 사람에 소중한 이미지의 원천을 축적하는 상상력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나가다 기억에 남은 간판이나 낯선 생각을 북돋우는 문구를 찍어 놓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사라질법한 찰나의 장면을 찍어서 글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창작하는 나에게 창작의 원천을 제공해주는 도구이자 창작의 재료를 축적하는 창고이기도 하다. 스마트 폰 덕분에 생각을 스마트하게 유지해나간다.  



⑧가방은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한 군데 모아서 들고 다니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이동수단이다. 가방은 언제나 나에게 말없이 물어본다. 오늘은 내 안에 무엇을 담아서 갈 것인지, 어제 담아간 책은 왜 안 읽었는지, 메모장은 왜 아직도 꺼내 쓰지 않는지, 틈바구니에 꽂혀 있는 볼펜은 언제 사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물어본다. 가방을 여는 순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필기구들이 일제히 아우성을 친다. 나를 데려다가 책 쓰는 데 빨리 사용하라고. 가방은 말이 많은 필기구를 조용한 침묵의 방에 가둬놓고 잠시 그들에게 휴식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다방 같은 곳이다. 가방에 들어가면 들어오기 전의 신분계층에 관계없이 가방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들어가야 한다. 가방이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를 막거나 가방이 원하는 사이즈를 넘어서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가방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지만 일단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온 모든 필기구에게 다음 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따뜻하게 품어준다. 가방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 정해진 양보다 항상 많은 걸 넣어 갖고 다닌다. 배가 너무 벌어져서 아프기도 하고 무거운 하중을 견디느냐고 힘겨운 한숨을 연발 내쉬기도 한다. 가방 끈은 끊어지기 일보 직전에도 불평불만 털어놓지 않고 여전히 근근이 목숨을 이어간다. 가방 끈은 이제 땀에 젖은 손가락 힘으로 버티면서 까맣게 닳고 닳았다.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가방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책과 필기구, 그리고 메모장을 기꺼이 받아주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도록 언제나 낮은 자세로 나를 위해 봉사를 아끼지 않는다. 가방(bag)은 든든한 백(back)이다.



가방을 뒤져보면 펜으로 끄적거리다 만 메모장에 별 표시★가 되어 있어서 자기를 봐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보인다. 별을 주목하다 연상되는 글귀가 있어서 노트북을 열고 쓰다가 만 글에 이어서 다시 문장을 이어나가다 막힌다. 거기까지만 쓰고 저장을 노트북에 하고 다시 외장 하드에도 저장한다. 그 순간 단톡 방에 올라온 이미지가 곁들인 명언이 다시 글발을 촉발시킨다. 복사해서 카카오톡 내 방에 저장해놓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그동안 여기저기 써놨던 글을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글의 전체적인 구조를 맞춰본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겠다고 해서 창작이 시작되었다기보다 책을 읽고 만난 어떤 문장이 나의 문리를 자극해서 시작될 수도 있고 메모장에 적힌 작은 흔적 하나가 잠들어 있는 글발을 흔들어 깨운 경우도 있다. 이렇게 글이나 책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가 다른 도구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행위자가 되어 글 쓰는 행위를 촉발시킨다. 이제 글발을 신나게 날리기 위해서는 말발을 잠시 멈추고 몸을 단련해야 한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쓰는 육체노동의 산물이다. 뇌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체력이 있어야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끝까지 쓴다. 체력이 고갈되면 끗발을 발휘할 수 없다. 글발은 내가 걸어온 삶을 적확한 개념을 동원해서 표현할 때 휘발되지 않고 분발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촉발시켜 준다. ⑨신발은 나에게 언제나 출발이자 분발이다. 새벽에 일어나 신발을 신고 차로 이동해서 피트니스 센터에 도착한다. 내 몸을 단련하는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⑩운동기구는 내 몸의 피가 잘 돌게 만들어주는 유산소 장치다. 뿐만 아니라 지방을 제거하고 근육을 만들어 기초 대사량을 늘려주고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활력제다. 내가 운동을 시작하면 운동 도구는 따라와서 나의 몸을 만들어주는 객체가 아니라 운동 기구가 나로 하여금 운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행위자가 되기도 한다. 운동은 내 몸과 기구가 합작할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운동 기구는 내 몸 밖에 있는 물체가 아니라 이미 나와 한 몸이 된 내 몸의 연장(延長)이다. 운동하는 연장이 있어야 근육을 만들고 힘을 길러 더 오랫동안 창작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延長)할 수 있다. 뇌력도 체력에서 나온다. 운동은 시간 내서 하는 동작이 아니라 밥 먹듯이 언제나 반복하는 하루의 일과이자 습관이다. 운동기구도 만들고 싶은 근육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 몸의 근육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큰 근육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가슴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벤치 프레스, 등근육을 비롯하여 상체 근육과 하체 일부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데드 리프트, 그리고 허벅지와 힙, 그리고 기립근 등을 단련시켜주는 스쿼트 운동이 대표적이다. 벤치 프레스, 데드 리프트, 그리고 스쿼트 모두 바벨에 일정한 무게를 걸어서 하는 운동이다. 누워서 무게를 들어 올리는 벤치 프레스를 하면서 나에게 내리누르는 세상의 짐을 견뎌본다. 내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면서 힘든 상황을 버티는 지구력을 기른다. 역시 내 몸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일어나는 안간힘을 쓰면서 없었던 힘을 기른다. 돈 들여서 살은 뺄 수 있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근육을 만들 수 없다. 운동으로 만드는 근육은 나의 글쓰기 근육이자 뿌리까지 파고들어 본질을 밝혀내는 근력(根力)의 원동력이다. 근육의 힘, 근력(筋力)이 생겨야 근본을 파고드는 글쓰기의 힘, 근력(根力)도 생긴다. 운동 기구 덕분에 생긴 근력(筋力), 근력 덕분에 생긴 글의 힘이 생겼다. 근육은 다시 나의 글쓰기 근육을 자극해서 글의 힘을 만들어준다. 근육으로 단련된 내 몸은 글쓰기를 자극하는 행위자다.



공간(空間)은 공신(功臣)이다


공간에서 인간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서 한 인간의 역사가 바뀐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합작품이다. 공간은 인간에게 창작욕을 부추기는 강력한 행위자다. 체력을 단련하는 피트니스 센터와 뇌력을 단련하는 지식 임신실, 즉 연구실이라는 공간은 인간 유영만을 창작하는 작가이자 강연하는 명사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다. 피트니스 센터에 가득 들어선 운동기구와 장비는 내 몸의 곳곳을 지명하며 자신을 사용해달라고 침묵의 항변을 한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보낸 시간은 인간의 몸을 만드는 역사로 기록된다. 내가 거기서 흘린 땀의 양은 지방을 태우고 근육으로 보답해주는 증표다. 별일이 없는 한, 나는 매일 여기서 몸을 변함없이 만든다. 변함없이 운동하니까 내 몸이 놀랍게 변한다. 허벅지가 두꺼워지고 엉덩이는 볼록해지며 팔뚝근육이 팽창하며 기립근이 바로 서고 뱃살은 빠지고 익살은 늘어난다. 가슴은 펌핑(pumping)되어 찢어지는 근육 맛이 나고 어깨 근육은 솟아오른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단련된 체력은 뇌력을 자극하는 강력한 행위자다. 힘이 생기니 글의 힘도 생긴다. 운동하고 연구실에 들어서는 순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이 아우성을 친다. 나를 뽑아서 읽어달라고.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책 역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허리가 아프다고. 나를 일으켜 세워 쓰다듬어 달라고.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 공간은 어제와 다른 지식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지식분만소다. 글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찾고 또 찾으며(Research) 생각하고 그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면서 보내는 탐구의 시간은 새로운 지식을 탐색하면서 이전과 다른 글을 구상하는 몸부림의 시간이다. 연구실은 그래서 안간힘을 쓰면서 이전과 다른 지식을 출산하는 지식 출산실이다. 



이렇게 탄생된 글이나 책은 이제 독자의 세계로 넘어간다. 독자는 저자와 다른 세계에 산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잡아드는 순간 독자는 더 이상 독자가 아니다. 독자는 저자의 글을 읽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창작자다. 저자의 글에 대한 독자의 피드백은 저자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행위자다. 독자는 더 이상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독자는 책과 접속하는 순간 저자의 낯선 생각과 만나 자기 생각을 변화시켜 나간다. 독자의 생각이 저자의 생각과 만나 생각의 자손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저자의 책에 대한 독자의 생각은 다시 저자에게 입력되어 다른 글의 씨앗으로 발아된다. 독자(讀者)는 이제 독자(獨自)가 아니다. 독자는 저자의 생각으로 이전과 다른 생각을 잉태시킨 미래의 작가다. 독자는 그래서 작독자(作讀者)다. 작가이면서 독자이고 독자이면서 작가다. 독자는 저자의 저술 행위를 자극,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자 네트워크의 인플루엔서(influencer)다.



내년에는 더 멋진 글과 책을 쓸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자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거기서 건강한 지식을 임신하고 출산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하자. 덕분에 행복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기쁨을 맛보았고 덕분에 책을 내는 저자로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즐거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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