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나의 몸이자
우리의 몸입니다

몸은 나를 가두는 우리(cage)이자 더불어 살아는 우리(we)입니다

내 몸은 나의 몸이자 우리의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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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나를 가두는 ‘우리(cage)’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we)’입니다


“만약 비싸서 더 강력하지만 편리하고 안전한 살균 소독 물질이 있다면 전 세계 보건 기구가 나서서 반드시 그러한 물질이나 기기의 가격을 낮춰야 합니다. 가난한 자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불결할 수밖에 없다면 공중위생은 아무리 부유한 자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공중위생을 책임져야 하는 유한락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격이 저렴해야 합니다.” 유한크로락스 홈페이지에 나오는 말인데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된, 감동적인 기업철학의 일면을 나타내는, 한 기업의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자세입니다. 위생은 내 몸만을 위한 건강 대책이나 조치가 아닙니다. 몸은 다른 사람의 몸이나 생명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독립적인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내 몸이 하루 살아가는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순간도 내 몸은 다른 사람이나 생명체의 도움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내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모든 음식은 내가 스스로 재배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내 몸의 건강을 지킨다고 노력해도 어디선가 재배되는 식재료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오염되면 내 몸도 같이 오염됩니다. 나는 곧 나의 몸이지만 나의 몸은 나의 힘만으로 건강성을 확보할 수 없는 의존적인 몸입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먹는 음식과 음료,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과 읽고 있는 책,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에 관여되는 문방구나 컴퓨터, 저녁에 잠을 자는 집 등 모두가 나의 힘으로 온전히 구축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몸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몸으로 만든 수고와 정성으로 생명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의존적인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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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내 몸은 나의 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몸입니다. "몸은 우리(cage)다. 내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다"(38쪽). 록산 게이의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에 나오는 말입니다. 몸은 나를 가두는 ‘우리(cage)’이자 나를 다른 사람과 연결시켜 공동체를 만드는 '우리(we)'입니다. 나는 내 몸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몸은 나를 가두는 ‘우리’도 맞습니다. 하지만 몸은 우리에 갇혀서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를 벗어나 다른 우리에서 살아가는 몸과 또 만나야 합니다. 우리를 넘어서 다른 우리의 몸과 만날 때 몸은 더 이상 우리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피동적 신체가 아닙니다. 몸은 우리를 벗어나 공동체 우리(we)를 구축하는 우리의 몸입니다. “몸은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라면 모조리 공격하는 전쟁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적절한 환경에서 다른 많은 미생물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정원이다. 몸의 정원에서, 우리가 제 속을 들여다볼 때 발견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타자다”(246쪽).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입니다. 몸은 타자의 몸과 만나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정원의 건강한 몸이 되며, 그런 몸이라야 건강한 정원을 가꿀 수 있습니다. 정원의 파괴는 몸의 파괴를 동반합니다. 정원은 수많은 생명체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의 터전입니다. 내 몸을 지키고 돌보는 일은 개인적인 의무를 넘어 공동체의 생존과 생명성을 보장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we)’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우리(cage)’에만 신경 쓰는 이기적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내 몸을 가두는 ‘우리(cage)’는 또 다른 ‘우리(cage)’와 만나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we)’가 되지 않고서는 몸은 감옥에 갇혀 건강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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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은 함께 만들어가는 정원입니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248쪽). 역시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입니다. ‘서로의 환경’은 한쪽이 오염되거나 파괴되면 서로가 공멸하는 길입니다. 사람의 몸은 다른 사람의 몸과 서로의 환경을 가꾸어가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엮여 있습니다. 면역은 나만의 공간에서 내 몸의 건강을 드높이는 독립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나의 면역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내 몸은 공유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공유된 공간의 오염은 곧 내 몸의 오염과 직결됩니다. 바이러스가 볼 빼 우리 몸은 저마다의 숙주입니다. 다른 숙주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오염시킬 귀중한 파트너입니다. ‘우리’는 고립된 ‘우리’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의존적인 존재들입니다. 내 몸을 돌보고 지키는 노력, 예를 들면 운동을 하고 백신 접종을 맞으며 면역력을 키우는 모든 활동은 온갖 질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일 뿐만 아니라 내 몸과 같은 공유공간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몸을 오염시키거나 전염시키는 나쁜 숙주가 되지 않겠다는 `이타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내 몸은 나와 같이 살아는 내 삶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주체가 주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몸의 건강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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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노력은 내 삶을 책임지는 자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는 이타적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백신 접종을 하는 이유는 내 몸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자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으려는 애쓰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나의 건강은 다른 사람의 건강으로부터 빚을 져서 얻은, 다른 사람의 건강 덕분에 내가 누리는 행복입니다. 내가 감염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이 내 주변에서 바이러스의 침입을 사전에 차단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 몸은 다른 사람의 몸과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의 몸입니다. 연결된 우리의 몸 없이 내 몸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채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상호 호혜적 관계 공동체입니다. 역시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에 따르면 "우리는 제 살갗으로부터 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중략)…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36쪽)입니다. 내 몸은 피부라는 보호막으로 일차 방어막을 구축하지만 더 큰 보호막은 '우리(we)'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공동의 노력을 함께 전개하지 않으면 내 몸은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내 몸은 관계의 그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사적 계좌와 공동의 신탁이 좌우합니다. 사적인 계좌인 몸에 미리미리 운동을 하거나 면역을 해서 투자한다고 내 몸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적 계좌인 몸에 투자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의 신탁이 필요합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이 집단 감염을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서 얼마나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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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아픔은 관계의 아픔입니다


내 몸은 나에게 속하는 독립적 주체지만 사실은 또 다른 몸과 연결된 더 큰 관계나 그물망의 일부다. 내 몸은 진공 관속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cage)’를 빠져나와 더 큰 ‘우(we)리’를 만날 때 비로소 몸은 활동성을 띠며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멤버십을 휙득합니다. 그런 점에서 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로서 독립적인 생명성을 지니지만 다른 몸과의 연대나 관계없이 생존할 수 없는 의존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면 내 몸만 입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관계된 다른 사람의 몸도 같이 입원하는 것입니다. 내 몸이 독립적이지 않고 의존적 관계망으로 연결된 더 큰 우주의 일부라는 점을 이야기해줍니다. 내 몸 챙김은 결국 독립적인 소우주인 나를 챙기는 근면한 노력을 넘어 내 몸과 연결된 다른 관계와 공동체를 돌보는 따뜻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뭔가 잘 못해서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갑니다. 내 몸만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연결된 다른 사람의 몸도 같이 투옥됩니다. 몸은 다른 몸과 연결된 서로에게 소우주입니다. 내 몸을 챙기는 이기적인 노력은 결국 다른 사람의 몸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랑의 표현이 되는 이유입니다. 다시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을 생각합니다. "서로 의존하는 관계라고 생각해봐. 우리 몸은 자기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야.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 몸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지. 우리 몸의 건강은 늘 남들이 내리는 선택에 의존하고 있어"(188쪽). 내 몸을 챙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몸을 생각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내 몸의 건강도 좌지우지됩니다. 내 몸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곧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길이자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입니다. 내 몸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은 개인적인 잘 못을 넘어 관계의 아름다움을 가꾸어나가는 의무를 불이행하는 잘 못이자 공동체의 건강을 지켜나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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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독립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으로 만들어집니다. 내 몸에는 내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회적 관계가 얼룩과 무늬로 축적되어 새겨져 있습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21쪽).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나오는 말입니다. 내 몸이 다른 사람의 몸과 만나서 만든 관계와 공동체의 모습이 내 몸에 고스란히 새겨집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내 몸 밖의 일이 내 몸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내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 깨달음의 관계망이 몸으로 감지하는 지각도 결정합니다. “감각이라는 레이더망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다”(7쪽).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감각적 레이더망으로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느낌을 포착하고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내가 서야 할 자리를 만들어갑니다.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는 책 제목처럼 몸이 만들어온 사회적 관계가 내 몸을 만듭니다. “너무도 많은 면에서 그 과거는 아직도 나와 같이 한다. 내 몸에 과거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매일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과거를 데리고 다닌다”(59쪽). 록산 게이의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문재 시인의 ‘소금창고’에 나오는 말처럼 과거에 내 몸이 경험했던 추억이 현재의 내 몸을 만들었고, 그 몸이 나의 미래까지 결정합니다. 내 몸이 겪은 체험적 깨달음이 내가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결정합니다. 나의 미래는 내 몸에 새겨지는 관계의 흔적이 결정합니다. 그 흔적이 목적의식을 만날 때 기적이 시작됩니다. 내 몸의 미래가 곧 나의 미래입니다. 내 몸이 맺어가는 사회적 관계의 역사가 바로 나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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