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발달의 7단계, 미적지근했던 근육, 울근불근해지다
달의 6단계,
근육 발달의 7단계: ‘미적지근’했던 근육, ‘울근불근’해지다
일곱 가지 근육이 모여 난상토론을 펼쳤던 흥미진진한 이야기
어느날 근육들이 저마다의 근력을 자랑하면서 난국 타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간신히 출퇴근했던 후줄근했던 근육부터 몸을 단련하더니 어느날 내 인생의 최측근이 되어 칼퇴근할 정도로 삶의 배양근으로 등극한 근육이 모두 참석한 전대미문의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운동을 마친 여섯 명의 근육은 한 자리에 모여서 저마다의 아픔과 사연을 토로하면서 어떻게 하면 근력(筋力)을 극대화시켜 근본까지 파고들어가는 근력(根力)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토론하는 사실 근육은 처음에는 미지근한 움직임을 보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생긴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근력이 생기지 않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근육이 제곱근으로 생겼다는 허풍쟁이 말은 사실무근이다. 자리가 마련되었다. 여기에 참석한 근육은 첫째, ‘차근차근’ 근육을 만들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는 ‘미적지근’, 둘째,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운동을 이어가는 ‘뻑적지근’, 셋째, 참고 견디며 근육운동을 했지만 여전히 ‘비근비근’ 온몸이 흔들려 걸을 때마다 맥이 없는 ‘파근파근’, 넷째, ‘달착지근’한 근육맛에 빠졌지만 여전히 피곤함을 호소하는 ‘노근노근’, 다섯째, ‘슬근슬근’ 근육모습이 드러남을 반가워하지만 끈질기게 근육단련을 거듭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질근질근’, 여섯째, 근육이 피부를 뚫고 팽창하고 있는 것 같다고 ‘사실무근’의 이야기를 자랑하는 ‘두근두근’, 일곱째, 드디어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지만 온몸으로 전율하는 감동을 ‘울근불근’ 느끼는 ‘불근불근’ 근육이 참석했다.
‘무단결근’을 밥먹듯이 할 정도로 근육이 약화된 상태지만 ‘차근차근’ 근육을 만들고 있어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는 ‘미적지근’이 맨 먼저 말문을 열었다. 결심을 거듭하다 큰 맘먹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몸의 변화가 없음을 눈치채고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말문을 연 ‘미적지근’은 어떻게 하면 초고속으로 근육을 만들어서 이번 하계휴가 시즌에는 자신의 멋진 몸을 만천하게 뽐내고 싶다는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하였다. 하지만 ‘미적지근’은 강도 높게 운동을 하루 이틀 하다가 수많은 핑곗거리를 끌고 나와 운동한 시간보다 몇십 배 더 많은 시간을 무방비 상태로 음주와 음료를 무절제하게 먹으면서 며칠간 운동한 자신을 위로하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힘들게 운동한 며칠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작심삼일을 반복하지만 보이지 않는 근육에 좌절과 절망을 반복한다. 내버려 두면 근육은 몸에 붙어 있는 최소한의 양만 유지되다 점차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지방으로 뒤덮인 살덩어리로 온몸을 뒤덮을 위험도 도사린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운동을 이어가는 ‘뻑적지근’이 ‘미적지근’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크게 안심하는 듯 자신도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운동만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근력을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그 효과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운동을 할수록 오히려 몸만 ‘뻑적지근’해지고 한 번 무거워진 몸은 하루 이틀이 지나도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지금 포기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언제나 운동과 행동 사이에 깊은 대화가 오고 간다. 어차피 지금 근육은 극도로 피곤할 상태니까 여기에 근육운동을 추가로 더 하면 설상가상 될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운동하러 피트니스 센터로 걸어가다가도 걷기 조차 힘든 내 몸을 위해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주는 것이 자기 몸을 위한 예의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친다. ‘미적지근’과 ‘뻑적지근’의 공통된 고민은 생각만 큰 근육이 그렇게 빨리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불만이라는 것이다. 근육은 오로지 내가 흘린 땀방울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철부지 근육들의 섣부른 불평불만의 목소리를 다른 근육들은 침묵을 유지한 채 아직까지는 잘 듣고 있는 듯했다.
몸은 비록 ‘뻑쩍지근’했지만 그래도 운동을 통해 근육을 길러야겠다는 일념으로 근육에 아로새기는 힘을 상상하며 참고 견디며 근력운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이리저리 자꾸 흔들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근비근’해졌다. 이런 상태에서도 과연 근력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정말 내 몸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자꾸 회의감이 앞선다. 이런 상태로 기진맥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비근한 예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희망은 걸을 때마다 다리가 풀리고 맥이 없으며 내딛는 발걸음조차 무거워 몸은 ‘파근파근’해도 근력을 키워보겠다는 일념만큼은 높이 사주고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 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몸은 ‘천근만근’보다 더 무겁게 ‘파근파근’해도 근육이 파열되는 아픔을 겪으며 근력운동을 해보겠다는 의지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몸이 ‘비근비근’한 상태는 안 하던 운동을 며칠 반복해서 하는 와중에 몸에 쌓인 피로로 비실비실한 모습이다. 비근비근한 수준을 넘어 몸이 좀더 피로감을 느끼면 다리라 후들거리고 기력이 없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구를 짊어지는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상태가 바로 ‘파근파근’한 몸이다. 운동으로 가해진 몸의 피로는 다시 운동으로 힘을 가해 풀어야 한다. 이 단계가 지나면 힘든 시기를 극복한 파근파근 근육에 활력의 날개가 달릴 것이다.
‘달착지근’한 근육 맛에 빠졌지만 여전히 피곤함을 호소하는 ‘노근노근’이 참다 참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미적지근’ 너는 근육 운동하는 시간에 투자해서 땀을 흘리지 않고도 너무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냐고 매섭게 몰아붙였다. 근육량은 내가 흘린 땀의 양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뻑적지근’ 역시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있는 거 같지만 운동으로 새겨진 몸의 ‘뻑적지근’함은 오로지 운동으로 회복해야 되는데 ‘천근만근’ 나가는 몸의 무게가 자신을 게으름의 나락으로 몰고 가는 위험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따끔한 충고를 준다. 평생 일상생활 말고는 근육에 힘을 가하지 않아서 비실비실해진 ‘비근비근’한 근육은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채근하면서 근력을 키우겠다는 의지 자체는 아직 살아 있음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고 ‘노근노근’이 거들었다. 하지만 ‘노근노근’ 역시 남을 비난할 처지가 못된다, 자신도 큰맘 먹고 격렬한 운동을 며칠 했지만 기대한 만큼 운동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자 잠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순간이다. ‘노근노근’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변곡점은 운동을 하면 몸이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피곤해진다는 절망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초기에 느꼈던 ‘달착지근’한 운동 맛이 먹으면 달콤한 초콜릿처럼 나를 운동하게 만든 당근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슬금슬금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는 자기 합리화의 함정으로 빠져들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할 지경이다. ‘노근노근’은 큰 맘먹고 시작한 운동이 내 몸을 활력 있게 만들지 못하고 근육에 가한 강도 높은 힘이 오히려 내 몸으로 발휘하는 힘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좌절감에 물든 항변을 한다.
그때 ‘슬근슬근’ 근육 모습이 드러남을 반가워하지만 끈질기게 근육 단련을 거듭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질근질근’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기 몸에 붙은 근육에 대해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 역시 온갖 유혹의 손길이 근육 만들기 위해 애쓰는 노력을 나락의 길로 끌고 갔던 아픈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질근질근’은 자신이 운동하면서 몸으로 깨달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깨달음을 ‘미적지근’, ‘뻑적지근’, '비근비근', ‘노근노근’에게 솔직 담백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근육은 힘들어간 만큼 힘이 생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들어 올리면서 버틸 때 아픈 만큼 근육에 상처가 생기고 그 위에 핀 꽃이 아름다운 근육이다. 늘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식으로 자신도 끈질기게 버티면서 근육운동을 한 결과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들어가는 근력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질근질근’이 펼치는 근육에 대한 철학과 신념은 지루한 반복운동의 진지한 실천만이 어느 날 갑자기 느끼는 근육량의 반전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근육에는 속도와 효율 복음이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느릿느릿 다가오는 변화만이 근육 세계가 감지하는 모습일 뿐이다.
근육이 피부를 뚫고 팽창하고 있는 것 같다고 ‘사실무근’의 이야기를 자랑하는 ‘두근두근’이 더 이상 참고 있으면 근본이나 근원이 무너지는 근육 담론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위기의식으로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미적지근’, ‘뻑적지근’, '비근비근' , ‘노근노근’, ‘질근질근’은 저마다의 자기 합리화에 능한 근력의 표본들이라고 일갈한 ‘두근두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만의 색깔 있는 근육 팽창론을 펼친다. 사실 자신도 근육운동을 하면서 생각한 만큼 바로바로 근육이 생기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할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근육만큼 근육 단련에 투자하지 않고 근육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미적지근’은 미지근한 운동량으로는 절대로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 ‘뻑적지근’한 상태는 모든 근육운동의 초기 상태로 누구나 겪어야 하는 뻐근한 근육의 몸부림이다. ‘비근비근’해진 몸을 이끌며 근력운동을 계속하는 ‘노근노근’한 근육은 ‘뻑적지근’한 근육 상태를 넘어서긴 했지만 근육에 맺힌 피로감으로 도저히 운동할 의욕을 상실한 상태다. 이상태를 넘어서서 운동을 지속하지 않으면 ‘나근나근’해지는 근육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질근질근’한 근육은 그나마 끈질기게 사투를 벌이며 내 몸에 만든 꾸준한 단련의 가시적 성과다. 하지만 끈질긴 노력이 어떤 유혹으로 잠시 일상의 루틴을 벗어나면 슬금슬금 운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는 강력한 유혹의 손길이 몸과 맘을 덮쳐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남들이 아무리 ‘사실무근’이라고 비난해도 내 몸의 가시적 변화를 몸으로 느낀 사람의 심장은 ‘두근두근’ 뛸 수밖에 없다. 운동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심장박동의 빈도와 속도도 빨라진다.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순간, 눈 한 번 질금 감고 한 번 ‘더’를 외칠 때 그만큼 근육량이 증가한다.
근육량을 늘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실제로 굴뚝에 오를 정도로 힘든 노동을 즐기면서 근육을 만들어야 되는지 근본적인 문제와 회의가 생길 수도 있다. 정규 대회에 나가지 않을 건데 왜 이리 힘들게 운동하는지 자기 성찰적 문제가 떠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운동으로 자기 몸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느껴본 사람은 운동을 어떤 핑계와 합리화를 끌어대고 포기하지 않는다. 운동은 일상생활과 별도로 시간을 내서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기도 하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 갖고 있는 표준 이상이 근육은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힘든 운동을 하는 와중에 자기 몸에 생긴 힘든 사투의 흔적이다. 드디어 근육이 찢어지는 ‘두근두근’의 즐거운 고통을 느끼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몸이 실감하지 못하다 몸은 물론 마음의 변화가 동반되는 느낌을 온몸으로 직감하기 시작한다. 자세가 바뀌고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모습도 반듯해지며 예전과 다른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도 생긴다. 매사를 적극적으로 해보겠다는 열정도 스멀스멀 올라오며 운동의 즐거움이 일상화돼된다. 온몸으로 전율하는 감동을 몸으로 느낀 ‘울근불근’은 자신의 근육운동에 관한 신념과 철학을 조목조목 밝혀주고 있다. 근육은 힘들고 아픈 만큼 내 몸에 생기는 상처 속에 핀 신의 축복이다. 근육은 꾸준한 반복이 어느 날 반전을 일으키며 양적 축적이 질적 반전을 가져오는 기적의 원둥력이다. 근육의 변화는 근력의 강화를 가져와 몸의 변화는 물론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변화를 동반한다. 돈 주고 살은 뺄 수 있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투자해도 근육은 생기지 않는다. 근육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버팀목이다.
저마다의 의견을 펼친 일곱 명의 근육, ‘미적지근’, ‘뻑적지근’, '비근비근', ‘노근노근’, ‘질근질근’, ‘두근두근’, ‘불근불근’은 저마다의 고뇌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생각과 의견은 다르지만 몇 가지 점에서 합의에 이르고 있다. 우선 근육이 어느 순간 ‘제곱근’으로 늘어난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낭설이며 ‘사실무근’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둘째, ‘후덥지근’할 정도로 운동하면 근육도 열을 내고 더워지기 시작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방을 태우면서 겉으로 표출되는 열량이며 기초대사량을 늘리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셋째, 근육 단련을 너무 과도하게 하면 근육도 피곤함을 느껴 쌔근쌔근 졸기도 한다. 힘든 근육운동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내 몸을 망가뜨리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넷째, 근육은 나를 삶의 중심으로 세우는 가장 강력한 ‘배양근’이자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최측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근육이 만장일치의 합의를 하며 박수로 화답했던 의견이다. 미지근한 결단과 행동으로는 미증유의 세계를 극복할 근력이 생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모든 근육이 합의했던 사항은 미지의 세계로 출발하는 과감한 결단과 한계에 도전하려는 불굴의 의지는 모두 내 몸을 중심에 세우는 근력에 나온다는 것이다. 내 몸의 어딘가에서 붙어 있는 모든 근육은 몸에 기생해서 생명을 유지하기보다 몸을 바로 세워 나를 재탄생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자는 힘찬 주장과 함께 근육들의 난상토론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