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은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격렬한 속삭임이다

움직임 예찬론-나의 ‘쓰임’을 결정하는 ‘움직임’의 7가지 숨은 의미

‘움직임’은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격렬한 ‘속삭임’이다

움직임 예찬론-나의 ‘쓰임’을 결정하는 ‘움직임’의 7가지 숨은 의미


‘움직임’은 어제와 다른 나로 변신하는 ‘길들임’이다. 길들여진 내 몸은 움직임을 통해 어제와 다른 나로 다시 변신한다. 변신한 몸은 당분간 길들여진 상태로 움직인다. 지루한 움직임을 진지하게 반복하는 순간 내 몸에도 반전이 일어난다. 움직이면 가장 먼저 심박동수가 증가한다. 그것도 일정 시간 꾸준히 움직일 때 맛볼 수 있는 짜릿함의 반증이 심동 박수의 증가로 나타난다. 끈질긴 움직임이 일정 시간 동안 반복되지 않으면 짜릿한 쾌감은 절대로 느낄 수 없다. 힘겨운 사투 끝에 맞이하는 절정의 짜릿함은 없었던 힘을 나에게 선물로 준다. 없었던 힘은 힘겨운 상황에서 기나긴 싸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모든 동작은 동사(動詞)가 낳은 작품이다. 동사의 축적이 사회적으로 저명한 명사(名士)를 만든다. 그들은 지루하지만 작은 실천을 진지하게 반복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업적도 매일, 매 순간 반복되는 작은 움직임의 누적되어 어느 순간 반전을 일으킨다. 반전의 결과 흔적이 축적되어 기적의 산물이 탄생된다. 움직이지 않고 창조되는 작품은 없다. 내 몸이 움직인 만큼 몸에도 감동적인 기억이 축적되고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오늘의 나는 내 몸이 움직인 결과 생긴 동작의 산물이다. 매일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면 작가로 변신하고, 매일 그림을 그리는 동작을 반복하면 화가가 태어난다. 매일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 가수가 되고, 영감을 따라가 곡으로 만들면 작곡가가 된다. 우리 몸의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움직이면 해당 분야의 운동선수가 되고, 늘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은 여행가가 된다. 매일 움직이는 일이 나다. 어제와 다른 나로 태어나려면 어제와 다르게 움직여라. 움직임이 품고 있는 7가지 의미심장한 의미를 파헤쳐본다. 이렇게 움직이면 세상을 바꾸는 프레임이 바뀌고 갑자기 속삭임을 전하며 설레게 만든다. 움직임은 몸부림으로 항거할 때 내 몸은 어제와 다르게 바뀌고 모든 순간 몸이 느낀 반응을 되먹임 하면서 사기를 드높이며 용틀임을 한다. 움직임을 반복하는 사람만이 자기 앞가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최적임자로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어울림의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①움직임은 세상에 대한 안목을 바꾸는 프레임(탁트임)이다

②움직임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임(속삭임)이다

③움직임은 어제와 다른 나로 변신하는 몸부림이다

④움직임은 사력을 다해서 승부수를 던지는 되먹임이다

⑤움직임은 사기를 충전하는 드높임(용틀임)이다

⑥움직임은 책임을 다하는 앞가림(최적임)이다

⑦‘움직임’은 더불어 살아가는 ‘어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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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움직임은 세상에 대한 안목을 바꾸는 프레임(탁트임)이다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에 보면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서 숙고하는 것을 손전등에 그리고 밖에 나아서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을 전조등에 비유하는 표현이 나온다. 책상에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써도 주변밖에 비출 수 없는 손전등 밖에 안 되지만 밖에 나가서 몸을 움직여 이리저리 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아이디어가 나와서 멀리까지 비출 수 있는 전조등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책상머리에서 요리조리 잔머리 굴리면 늘 비슷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꽉 막힌 아이디어 터널에 갑자기 빛이 들어오면서 서광이 비출 때가 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밖에 나서 몸을 움직이며 운동을 하다 보면 갑자기 탁 트이는 아이디어가 먹구름 속의 태양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다. 움직임이 가져온 놀라운 성과다. 이처럼 몸을 움직이면 생각의 물꼬가 터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뀐다. 프레임이 바뀌면 이전과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꼬였던 문제의 난맥상에 갑자기 대안의 광맥이 터지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움직이지 않으면 문제가 꼬이고 꼬임을 거듭할수록 더욱 난관에 부딪히지만 가볍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면 보이지 않았던 가능성의 문이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다. 꽉 막혔던 답답함이 말끔하게 해소되면서 몸에는 활력이 넘치며 정신에는 명쾌한 에너지가 감돌기 시작한다. 움직이면 뇌혈류량도 증가하면서 이전과 다른 신선한 생각 에너지로 가득 찬다. 이전과 다른 프레임이 탁 트이는 깨달음은 바로 몸이 가져다준 움직임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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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움직임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임(속삭임)이다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시작하면 다시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중독이 되는 게 운동이 주는 마력이다. 많은 사람이 시작했다가 지속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움직임으로 주어지는 짜릿함의 전율을 맛보지 못해서다. 천근만근 나가던 육중한 몸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졌던 몸이 움직임의 흐름을 타고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해서 동작을 만들어간다. 다음 동작을 어떻게 가져갈지 순간적으로 고민하지만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해서 또 다른 동작이 반복된다. 움직임을 통해서 생긴 사연과 스토리는 가슴속 깊이 간직되고 시간이 지나도 그 당시의 몸이 겪었던 짜릿한 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려놓는다. 움직임으로 만든 스토리는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다가온다. 내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런 동작이 나에게 속삭이며 같이 느껴보자고 호소하는 듯하다. 저절로 내 마음도 설렌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결승선을 끊기 위해 달려드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순간 내 심장도 같이 뛰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처럼 착각이 들기도 한다.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시각적 경험(visual experience)을 넘어 감정적 경험(visceral experience)이기도 하다. 타인의 움직임을 공감할 때, 당신은 그 움직임을 당신 ‘자신’의 일부로 감지한다”(201쪽). 이런 움직임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과 함께 심장박동은 가속화되고 미래의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다짐을 한다. 그렇게 몸은 계속해서 속삭인다. 오늘도 고생했는데 내일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오늘보다 더 짜릿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오늘의 움직임으로 느낀 짜릿한 감동이 내일 움직임에게 계속 속삭인다. 오늘의 움직임으로 바뀐 내 몸은 오늘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움직임의 기적을 맛볼 것이라고. 설렘도 움직여야 맛볼 수 있는 감정의 동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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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움직임’은 사력을 다해서 승부수를 던지는 ‘몸부림’이다


움직임은 나의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각성제다. 예를 들면 케틀벨 10Kg 무게로 스윙을 하다가 20Kg으로 늘려 스윙을 하는 순간 앞뒤 동작에 현격한 무게감이 온몬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한 번도 못할 것 같은 스윙을 한 번 두 번 점차 늘려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몸은 20Kg의 케틀벨로 한꺼번에 4-50회 정도를 할 정도로 현격하게 힘이 늘어난다. 몸부림은 몸을 부림으로써 얻는 노력의 강도다. 이 정도면 그만해야지라는 마지막 스윙이 다가올수록 몸부림을 치고 안간힘으로 버티다 마침내 마지가 스윙을 하고 케틀벨을 내려놓는 순간의 성취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짜릿하다. 내가 평상시에 뿌리 깊게 믿고 있었던 신념이나 가정도 몸부림치며 움직이는 동작으로 무너지거나 수정될 수 있다. 나는 절대로 풀코스 마라톤은 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천천히 5Kg부터 시작해서 10Km를 완주하고 여러 번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게 만든다. 매 순간 몸부림치는 고통이 다가온다.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에게 하프 마라톤은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목표가 하프 코스 완주라고 생각하면 10Km를 넘는 지점부터 피로감이 엄습할 수도 있다.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나머지 절반을 뛸 생각을 하면 좌절감이 다가온다. 하지만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게 목표인 사람에게 하프 마라톤 골인지점인 21Km 지점은 이제 절반 정도 달렸으니 나머지 절반의 거리를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몸부림을 시작한다. 한 발 한 발 모든 움직임이 몸부림이다. 움직인 만큼 이룬다. 그것도 힘든 순간에 움직임은 매 순간이 몸부림이다. 스쾃을 한 번에 100번 하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10번, 20번 점차 숫자를 늘려가다 50회를 하는 순간 절반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안도감이 든다. 다시 힘을 모아 100에 가까워질수록 몸은 더욱 무거워지고 매 순간이 사투를 벌이며 안간힘을 쓴다. 드디어 스쾃 100회에 도달하는 순간 몸부림쳤던 몸을 향해 감동과 감탄하며 스스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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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움직임’은 어제와 다른 나로 변신하는 ‘되먹임’이다


되먹임은 의학적으로 “생체 내의 대사 과정 가운데 물질의 합성이나 분해 과정에서 생성된 중간 산물이나 최종 산물에 의하여 대사 과정이 조절되는 작용”(참고: 네이버 사전)을 말한다. 움직이는 매 순간 근육은 계속 말을 한다. 이 정도면 더 들어 올릴 수 있어. 조금만 더 힘을 내봐라고 피드백을 주면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안간힘을 써서 버텨낸다. 어느 순간 나의 한계 무게라고 생각될 정도로 전신에 반응이 올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스쾃을 130Kg까지 해낸 다음 양쪽에 5Kg씩 10Kg의 무게를 더 추가하고 바벨을 메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무리를 해서 잠시 무릎을 굽혀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무게가 내 몸으로 되먹임을 해준다. 그 순간 멈추지 않으면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되먹임 정보에 내 몸이 반응하는 순간 어느 정도 무게까지 견뎌낼 수 있을지를 몸이 알아차린다. 어제보다 조금 더 무겁게 들어 올리는 한계를 움직이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알아낼 수 없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봐야 몸의 한계를 몸으로 알아내고 그 결과를 몸으로 감지하는 것은 되먹임 덕분이다. 관념적 되먹임이 아니라 신체적 되먹임만이 내 몸을 어제와 다른 몸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몸의 움직임을 생각만 하면 거기서 나오는 되먹임은 오히려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해보지 않고 주는 또 다른 생각은 몸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근거 없는 사상누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몸이 움직여 매 순간의 동작을 관찰한 결과로 다음 동작에게 주는 되먹임은 신체적 경험에 근거한 피드백이다. 내 몸을 이전과 다르게 바꿔놓은 살아 있는 되먹임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에는 활기가 넘치고 다시 뭔가에 도전할 수 있는 원기도 생긴다. 움직임으로 축적한 에너지와 자신감이 다시 되먹임 되어 생긴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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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움직임’은 사기를 충전하는 ‘드높임’(용틀임)이다


움직이며 흘리는 땀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엑스터시 같은 마약이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며 세상이 경이로워 보일 때가 있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올 만나는 세상이 그렇다. 움직이고 나면 내가 만나는 세상은 어제의 세상이 아니다. 모든 세상이 살아 숨 쉬는 경이로운 일상으로 다가온다. 내가 더 소중해지고 다른 사람과의 맛남 역시 운명을 바꾸는 소중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움직임으로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운동이 주는 즐거움에 빠질수록 다음 운동을 상상만 해도 몸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냄새나 소리, 운동장면과 풍경, 동료들의 안간힘 쓰는 모습, 그 속에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파이팅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운동 전문가들은 이렇게 몸을 움직여 얻는 짜릿함을 쾌락 광택제(pleasure gloss)라고 한다. 움직임으로 느낀 즐거운 기분이나 감정, 당시에 몸으로 느낀 긍정적 경험이 암호화되어 운동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려는 욕망은 엔도르핀과 도파민 분비를 더욱 촉진한다고 한다. 이제 움직임은 움직임으로 끝나지 않고 나의 사기를 용솟음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움직임의 강도를 드높일수록 몸은 순간적으로 힘들지만 그 순간을 빠져나오면서 느끼는 사기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충전된다. 움직이지 않으면 이제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운동은 내 삶을 드높이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 원천이다. 움직임 그 자체는 소극적으로 항우울제이자 적극적으로 짜릿함을 증가시키는 자양강장제나 다름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우울 모드에 빠지기 쉽고, 근거 없는 불안감에 빠지기 쉽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한 사기가 충전되고 어제와 다른 나로 드높이는 디딤돌이 생긴다. 움직임으로 충전된 사기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전해준다. 운동하는 사람의 격렬한 움직임만 봐도 감정적 교감이 생기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움직임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나 역시 어제와 다른 높이로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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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움직임’은 책임을 다하는 ‘앞가림’(최적임)이다


제 앞에 닥친 일을 제힘으로 해낼 때 앞가림을 한다고 한다. 앞가림은 최소한의 자기 방어 능력이자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마지노선이다. 앞가림을 못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다. 앞가림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문제 상황과 위기국면에 직면했을 때 나의 능력으로 지금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면 앞가림을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닥친 일을 내 힘으로 해내지 못하거나 나의 약점이나 부족함 점을 가려내지 못할 때 나는 앞가림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앞가림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임기응변력을 발휘해 주어진 난국을 탈출하고 타개할 능력이 필요하다. 앞가림은 부단한 움직임이 낳은 자식이다. 앉아서 생각을 거듭한다고 주어진 위기 상황을 탈출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앞가림은 심각한 문제나 위기 국면의 앞을 가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앞가림은 앞을 가리는 수준에서 주어진 난국을 타개하는 피상적이고 수동적인 눈가림이 아니다. 진정한 앞가림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몸으로 터득한 체험적 각성이 깨달음의 흔적으로 정리될 때 생기는 자기다움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자질과 역량이다. 움직이지 않고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을 반복해서는 난국 돌파를 위한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앞가림을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눈앞의 위기를 머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가림이 안 되는 이유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로 생각만 거듭하기 때문이다. 앞가림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자리가 주어져도 몸을 움직여 다양한 움직임을 주어진 자리에서 시도한 다음 자신이 그 자리에 가장 잘 맞는 최적의 당사자임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 따위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나 어떤 임무나 일에 가장 알맞은 최적임일 때 가장 이상적인 앞가림 상태다. 단순히 내 앞에 벌어진 일을 뒷수습하는 수동적인 대응능력을 넘어서서 어떤 일이 주어져도 그걸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난국을 돌파하는 최적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을 때 앞가림을 넘어 최적임 상태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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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움직임’은 더불어 살아가는 ‘어울림’이다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울했던 심정도 말끔하게 해소되고 복잡했던 머리도 명쾌해진다. 그런 기분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충동도 당연히 생긴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즐거운 기분으로 이루어진다. 만남을 통해 교감하고 공감하는 동안 맑고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운동하는 날에 주변 사람들과 더 긍정적으로 소통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움직임의 힘》을 쓴 켈리 맥고니걸에 따르면 함께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협력의 짜릿함(cooperation high)이나 함께 운동하면서 가족 같은 유대감을 느끼는 집단적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은 물론 예감의 짜릿함(anticipatory high)도 같이 불러온다고 한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협력만 해도 엔도르핀, 엔도 카나비노이드와 같은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감정을 고조시킴은 물론 이전에 협력했던 사람과의 이전 경험만 떠올려도 뇌 보상체계가 활성된다는 것이다. 남을 도와주는 것만으로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는 남을 도와줄 때 느끼는 짜릿함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짜릿함(runner’s high)을 서로 나누면서 남이 힘들 때 도와주는 과정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함께 만난다면 그들은 금방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공동체 결속력은 한결 더욱 튼실해질 것이며,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집단(tribe)으로 발전할 것이다. 달리기를 통해서 기분이 좋아지면 남을 위해 봉사하려는 헬퍼스 하이도 동반되어 높아진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같이 운동을 하다가도 상대와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원동력은 운동하는 사람에게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사람과 유대관계가 금방 생기고 운동하는 도중에 힘든 상황에 직면하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는 애틋한 감정도 덩달아서 생기는 이유다. 몸만 움직여도 주변 사람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은 얼마든지 열어젖힐 수 있다. 단지 함께 어울려 움직이는 것만으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벽이나 경계도 무너지고 곧 우리라는 연대로 어울림의 하모니를 낳는다. 우리 속에 존재하는 집단적 열망이 경계 없는 관계를 맺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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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은 나의 가치를 몸으로 증명하는 재신임이다. 모든 리더는 말로만 하지 않고 몸으로 보여준다. 가장 믿음직한 리더십은 미사여구를 말하는 입담에서 나오지 않고 몸으로 보여주는 솔선수범에서 나온다. 리더십의 핵심은 말과 행동, 앎과 삶이 하나로 통일되는 지행합일에서 나온다. 지행합일의 원동력은 아는 지성이 아니라 움직이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어디서든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살아 숨 쉬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사람이다. 움직임은 곧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안간힘이다. 소임을 다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고민을 거듭하는 사람은 해임된다. 책임을 역임하고 중임을 다는 사람은 하나같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흔들림이 찾아온다.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 거듭하면 머릿속의 생각의 저장고도 뒤틀린다. 움직이지 않고 장고(長考)를 거듭할수록 망설여진다. 움직임의 반대는 망설임이다. 망설임이 거듭될수록 내장은 꼬이고 의지는 꺾인다. 움직임의 또 다른 반대말은 꼬임이고 꺾임이다.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쓰라림이 찾아온다. 속이 쓰린 이유는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는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움직여라. 이전과 다른 세상이 열린다. 움직이는 사람은 움직이는 사람을 만난다. 더 힘들게 움직이는 사람은 더 힘들게 움직이는 사람과 쉽게 연결되고 연대를 맺는다. 관념적으로 생각해서 뭔가를 깨우치는 사람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친밀감을 느끼고 믿음을 주고받는다. 힘든 움직임으로 거둔 성과나 성취일수록 오랫동안 우리 몸에 짜릿한 추억으로 남는다. 움직임이야말로 나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몸부림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움막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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