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경이로운 7대 사건
행복한 인생의 무지개를 띄우는 7가지 소박한 방법: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경이로운 7대 사건
삶(living)은 사랑(love)하며 배우는(learn) 과정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내가 살아가는 삶도 사랑하는 법이다. 뭔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배움은 경이로운 기적을 일으키며 새로운 가능성의 텃밭을 일군다. 내가 살아가는 매순간이 기적이고 감동이다. 모든 순간이 배움의 터전이며 감탄하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7가지를 기반으로 삶을 사랑하며 배우는 기쁨을 통해 행복한 인생의 무지개를 띄우는 방법을 알아본다.
①땀 흘리는 운동
어김없이 울리는 새벽 알람을 듣자마자 머뭇거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다는 놀라운 내 몸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시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강함에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일은 그렇게 일어난 몸을 데리고 피트니스 센터로 가서 1시간 반 가량 전신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면서 흐르는 땀방울을 만나는 순간은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는 꿈을 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주체 역시 내 몸이다. 유산소 운동으로 흐르는 땀방울과 근육 운동으로 얻은 땅방울은 다르다. 일정 시점을 지나면 비오듯 땀이 흐르는 유산소 운동과는 다르게 근육 운동은 이마에 땀이 나온다는 신호가 오면서 중량감을 높여 운동할수록 은근히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팽창할 대로 팽창한 근육이 밖으로 터질 듯 다가오는 운동의 흔적을 느낄 때, 빠듯한 일상을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몸의 중심이 잡히고 몸의 곳곳에 자리잡아가는 근육감을 신체성으로 느낄 때의 충만감은 언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온몸이 살아 숨쉬는 세포들의 향연장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②인두 같은 문장 수집
책을 읽다가 인두 같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형광펜으로 색깔을 입히고 그걸 나만의 비민문장 노트에 손으로 꾹꾹 눌러 옮겨적는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 알고 있었지만 표현력이 부족해서 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던 저자의 생각에 감탄과 존경을 보내면서 동시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평생 이 문장을 인용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두 같은 문장이 내 몸을 관통하고 나갈수록 나는 문장부자가 된다. 내가 원하는 부자 중의 가장 멋진 부자는 좋은 문장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문장이 나의 언어로 번역되는 또 다른 문장을 낳게 해준다는 믿음도 여전히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한 문장을 탄생시키기 위해 저자는 한평생을 고뇌로 보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그 문장에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물론 위기의식과 목적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글을 통해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느낌도 마냥 행복한 체험이다.
③느낌을 옮기는 글쓰기
책을 읽다가 연상되는 단어, 개념, 생각과 화두가 꼬리를 물고 나의 과거 체험적 흔적을 불러와 상상력을 자극할 때 포착된 글감이 영감으로 바뀌면서 끄적거리며 쓰는 과정을 사랑한다. 안간힘을 쓰며 쥐어 짜내는 글보다 불현 듯 떠오른 생각의 파편이 한 방향으로 모아지면서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불러오면서 이어지는 문장행력을 바라보노라면 행복해진다. 거리를 지나가다 마주친 광과 문구 하나, 신문이자 잡지를 보다가 영감을 자극한 한 문장에 내 생각이 실리고 깨달음의 얼룩이 무늬로 바뀌면서 키보드 치는 동작이 하나의 소박한 작품으로 탄생되는 과정은 경이로운 기적이다. 나는 그런 소박한 흔적이 낳는 기적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마냥 흐뭇해한다. 어떻게 생각의 파편이 각성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단어가 배치되고 문장으로 연결되면서 한 편의 글로 이어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율하는 행복감이며 참을 수 없는 감탄의 연속이다.
④울림을 주는 시 읽기
울적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다 우연히 마주친 시 한 편이 여운은 진한 감동과 함께 깊은 공감을 불어온다. 딱히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위로의 한 마디 일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과 정수를 시 한 편이 온점히 품고 있음을 발견할 때 시인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시가 주는 무한한 영감에 감사를 넘어 감탄하고 경탄해도 부족함이 없다.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오래 전에 시인했기 때문에 수시로 시집을 뒤적거리면서 압축과 절제미로 농축된 시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에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런 시를 읽으며 아픔이 승화되는 시인의 언어 연금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들이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세상의 고달픔을 시적 언어로 번역해내는 보이지 않는 사투에 박수를 보낸다.
⑤다른 사람과 만나는 모임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주고받는 대화를 사랑한다.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내 생각으로 이룰 수 없는 다른 가능성을 꿈꾸는 사람이다.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나와 다른 일을 하면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상에서 나는 언제나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운다. 밥맛나는 사람과 밥을 먹으며 보내는 담소의 시간은 살아가는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아직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기쁨이다. 존재 자체가 기쁨을 주는 사람은 내가 아직도 세상을 더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과 함께 뭔가를 구상하고 함께 느끼며 깨닫는 즐거움을 사랑한다.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서 기쁨을 주는 사람과 마시는 와인은 삶의 활력소요 원기소나 다름없다. 같이 살아가며 나누는 가치가 배가되는 만남에서 사람에게 배우는 사랑의 위력은 한계가 없다. 오늘의 만남과 다른 내일의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늘 나를 설렘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게 만들어준다.
⑥함께 깨달음을 얻는 공부
나는 인식과 관심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깨닫는 즐거움을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혼자 공부해서 얻는 깨달음의 즐거움도 있지만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며 저마다의 생각으로 다양하게 주고받는 의견은 나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줌은 물론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게 만들어준다. 일정한 주제를 정해놓고 고독을 벗삼아 혼자 공부하며 느낀 점을 갖고 다 함께 모여 토론하며 저마다의 생각을 들어보고 공유하는 공부모임은 그 어떤 모임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넘친다. 언제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오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잉태하기 위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공부는 그 자체가 앎의 행위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다. 삶으로 앎을 증명하고 그것으로 실천하는 행위 과정과 결과를 성찰하는 가운데 또 다른 앎을 생산하는 공부는 언제나 나에게 혁명이자 탄생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로 변신하는 중심에 언제나 공부의 즐거움이 자리 잡고 있다. 죽을 때까지 뭔가를 공부하고 나누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언제나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⑦우연한 마주침을 낳는 여행
낯선 세계와의 마주침은 나에게 언제나 새로운 깨우침을 선물로 주는 만남이다. 시간을 내서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떠남은 곧 만남이다. 이전과 다른 세계를 만나려면 지금 여기를 떠나야 한다. 색다른 깨달음을 선물로 안고 돌아온다는 전제가 떠남을 설레게 만드는 이유다. 낯선 음식을 먹어보고 낯선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고, 낯선 환경에서 머무르는 즐거움은 인생을 직선으로 달려온 사람에게는 느낄 수 없는 한적한 여유이자 뿌듯한 감동이다. 목적지를 정하지만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에서 만나는 색다름에 빠져 거기서 하루를 머무를 수도 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고속열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패키지 여행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어슬렁거리며 낯선 곳을 배회하는 여유로움을 사랑한다. 우연한 만남이 주는 경이로운 감동을 여행이 전해줄 때, 여행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원천이다. 내가 말하는 여행은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떠나는 모든 행동이다. 가까운 곳에서 잠시 머무는 짧은 여행은 물론 먼 곳에 가서 비교적 오랜 기간 머무는 긴 여행 역시 우연한 마주침으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어제와 다르게 변신하려는 노력과 모습, 힘들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다른 세계를 지향하려는 몸부림은 나를 재탄생시키는 행복한 과정이다. 밥 먹듯이 땀 흘리며 반복하는 운동과 인두 같은 문장 수집, 느낌을 옮기는 글쓰기와 울림을 주는 시 읽기, 다른 사람과 만나는 모임과 함께 깨달음을 얻는 공부, 그리고 우연한 마주침을 낳는 여행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모두 오늘의 나와 다른 나로 탄생하는 생성과정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창조나 생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아니라 기존의 유와 유를 낯설게 배치하거나 엮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대학교+연구실+책읽기+글쓰기+강의실+강의=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수를 생성하지만 병원(지식임신클리닉)+진료실+상담+진단과 처방=유영만 지식산부인과의사를 낳는다. 한양대학교 교수였던 유영만은 지식산부인과 의사 유영만으로 변신한 것이다. 들뢰즈는 이런 변신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를 다양체(multiplicity)라고 한다. 유영만 교수로 존재할 때 나를 둘러싼 배치, 즉 아장스망(agencement)과 유영만 지식산부인과의사로 존재할 때 나를 둘러싼 배치가 다르다. 아장스망이 바뀌면 그 사람이 겪는 경험적 주름이 바뀐다. 유영만 교수로 존재할 때 마주치는 주름은 유영만 지식산부인과의사로 마주치는 주름과 다르다. 그래서 유영만 교수의 다양체와 유영만 지식산부인과의사의 다양체가 다른 것이다. 오늘의 나와 다른 다양체로 변신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나는 아장스망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7가지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