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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랑에 빠지는 10단계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는가?

책과 사랑에 빠지는 10단계: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는가?



독서는 책과 사랑에 빠지는 연애다. 살아가다 보면 한눈에 반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랑하고 싶은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예고 없이 다가와 갑자기 불이 붙듯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중독되는 경우다. 사랑으로 가는 길에는 스피드 범퍼가 필요 없다. 말릴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빠지면 빠질 수 없다. 역으로 빠지면 빠질 수 없는 지독한 사랑, 독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책 중에서 유독 나와 눈이 맞는 책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가 책으로 스며들어가서 빠져들면 속수무책이다. 가장 강력한 책, 속수무책이다. 책으로 잠입했다가 책 속으로 완전히 잠수해버린 상태, 이제 독자는 저자의 메시지 속으로 저자는 독자의 심장 속으로 파고들어 파장을 일으키고 파란을 휘몰아친다. 격렬한 교감 속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독자에게 마사지로 전해진다. 그래서 독서는 저자의 메시지로 독자를 마사지하는 애무다.


책과 사랑에 빠지는 10단계: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https://youtu.be/Iq0uwzFfbRE


전희(全犧): 사랑에 빠져 애간장이 타는 순간


깊은 사랑에 빠지려면 전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전희 없는 사랑은 사장될 수 있다. 깊은 마음의 교감이 이루어진 뒤에라야 몸이 만날 수 있다. 몸이 달아오르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후끈 달아오를 때까지 몸은 서서히 군불을 때듯 달궈져야 한다. 몸이 준비가 되면서 마음도 활짝 열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열리고 있음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 린다. 책도 마찬가지다. 머리로 따져보기 이전에 첫눈에 마음을 빼앗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만나면 들여다보고 거들떠보면서 훑어보다가 서서히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그 시간은 대단히 짧다. 순식간에 빠져들기 시작해서 빠져나올 수 없는 단계로 발전한다. 우선 제목과 책 표지에 마음에 끌리고 목차를 보는 순간 목이 차오르는 듯 뜨거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아직도 책이 주는 메시지가 의심스러워 목차를 훑어보다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내가 원하던 메시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고, 내가 궁금해하던 삶의 이슈가 저자의 체험적 깨달음으로 조목조목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이제 빠져나올 수 없는 책과의 사랑이 시작된다. 달아오른 만큼 책은 순식간에 읽기 시작한다. 막을 수 없는 불길이 시작된다.


들여다보기: 첫인상이 인생을 지배한다

책과 사랑에 빠지는 첫 번째 단계는 주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일어난다. 쇼핑하듯 서점에 들러 매대에 누워 있는 신간을 둘러보기도 하고 가끔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빼보기도 한다. 하지만 주로 책과 눈이 맞는 경우는 매대에 누워있는 신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쓴 노명우 교수에 따르면 양식에 호소하면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서가에 꽂히고 상식을 어루만져주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매대에 누워 있는다고 한다. 책은 저마다 자신을 사가라고 누워서 온갖 자태를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교태를 보여 주기 시작한다. 우선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고 표지 디자인으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극대화시킨다. 독자는 이런저런 책을 만져보며 이 책 저 책에 빠지기 시작하다 결정적인 한 순간에 한 권의 책과 우연히 눈이 맞는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어둠 속에서 광채가 빛나다가 갑자기 전두엽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다 책을 손에 잡는다. 비로소 사랑의 격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계획된 만남이나 누군가의 추천으로 책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책과의 만남에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건은 오로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때다. 책과 우연히 만난 사건이 내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거들떠보기(대강 보기): 이미지가 미지(味知)를 결정한다

손에 잡힌 책은 이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제 목에 걸린 제목과 목을 차 버릴 정도의 목차가 주는 메시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제목은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문장이다. 한 마디로 한 사람의 한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마력이 있고 매력도 있으며 파괴력도 대단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품고 있어도 그걸 한 마디로 독자를 유혹하지 않으면 독자는 책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독자는 이제 본문을 여기저기 뒤적거리면서 다시 표지를 보고 제목과 맞춰보면서 누가 이런 책을 썼는지 저자 소개를 읽어본다. 저자가 저 자가 아니라는 생각, 이런 책을 쓴 저자의 삶이 범상치 않음에 놀라면서 목차를 다시 순식간에 훑어 읽은 다음 프롤로그를 거들떠보기 시작한다. 이미 독자는 저자의 책의 세계로 빠지기 시작한다. 한 번 빠지면 다시 빠져나가기 어렵다. 본래 프롤로그는 독자가 책을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내용을 품고 있다. 독자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맨 앞애 배치한 글이 프롤로그다. 프롤로그까지 읽은 독자는 책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저자가 이끌고 가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여행에 동행하기 시작한다. 돌아갈 수 없는 책의 궁지에 빠진 것이다. 이제 독자는 저자의 메시지로 마사지를 당하면서 몸을 내맡기기 시작한다. 이 즐거운 읽기의 쾌락을 혼자 조용히 즐기기 위해 독자는 결단을 내리기 일보직전이다. 바로 구매가 결정되기 바로 직전이다. 흐릿했던 저자나 책의 이미지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고 간다.


훑어보고(뼈대만 추려서 보고) 카드 긁기: 저지르면 지름길이 열린다

이미 저자가 던진 메시지로 달아오른 느낌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은밀하게 즐기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든다. 바로 카드다. 첫눈에 반하고 한눈에 빠진 독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은밀하지만 밀도 있는 사랑을 책과 나누기 위해 책을 사기로 결심한다. 앞뒤 안 가리고 카드를 긁는다. 긁지 않으면 긁힌다. 카드의 용도는 긁는 것이다. 긁지 않고 지갑에 보관된 카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많이 긁어줘야 카드는 좋아한다. 특히 다른 상품 소비보다 책을 사는 소비는 권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건을 살수록 허무감에 휩싸이지만 책은 살수록 흡족한 마음이 생긴다. 비록 다 읽지 못해도 바라만 봐도 흐뭇해진다. 물건은 사는 순간 유행에 뒤떨어지는 골동품으로 전락하기 시작하지만 책은 사는 순간 시간이 지나도 책이 담고 있는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물건을 사면 순간 만족하지만 책을 사는 순간 설렘이 시작되고 책을 읽으면서 심장은 더 강하게 박동하기 시작한다. 책이라는 물건이 다른 물건을 소비하는 경험과 다른 이유다. 물건은 사는 순간부터 식상해지기 시작하지만 책이라는 상품은 소비가 시작되면서 더 의미심장한 경험의 가치를 던져준다. 책을 사서 빨리 집이나 조용한 카페로 달려간다. 첫 만남의 설렘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애지중지하고 다시 한번 책 안 밖을 들여다보고 거들떠보다가 훌터보면서 만지는 감촉을 즐긴다.


눈여겨보기(컽모습만 꼼꼼히 보기): 질문이 없으면 관문도 열리지 않는다

격렬한 사랑에 빠져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 읽으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아니 본격적으로 책에 빠져서 읽기 전에 드는 의문 하나가 있다. 저자는 어떻게 책을 썼길래 나를 이렇게 한 순간에 사로잡을 수 있을까? 단순히 제목이 멋있어서일까, 아니면 표지 디자인이 은근히 나를 끌어당겨서일까, 목차가 보기 좋게 내가 고민하는 화두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아서일까, 아니면 프롤로그를 읽고 완전히 저자의 메시지에 매료되어서일까? 도대체 저자는 이런 책을 무슨 생각으로 썼을까? 한 마디로 저자가 나 같은 독자에게 던져주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까? 돌려 말하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책을 다시 보면 책에 빠져서 빠질 수 없었던 나에게 잠시의 순간적 멈춤의 시간은 준다. 고속으로 달려가다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춰 서 있는 동안 내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를 짧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질문을 던져야 새로운 관문도 열린다. 책을 읽기 전에 던지는 질문과 읽는 와중에 생기는 질문,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생긴 질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질적 문제의식의 차이가 살아간다.



사랑에 빠져 빠져나올 수 없는 책아일체(冊我一體)가 되는 과정


나였던 독자는 이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책과 사랑에 빠지면서 나는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라 책과 혼연일체, 즉 책아일체(冊我一體)가 된 내가 되었다. 이전의 나를 잃어버리고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나로 재탄생된다. 책이 나를 바꾼 것이다. 책을 읽고 말았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렸고, 읽어버렸기 때문에 나를 버렸다. 나를 정신적으로 잃어버리고 육체적으로 나를 버렸기 때문에 책 읽는 나는 없어졌다. 오로지 저자의 숨결에 따라 숨도 죽이고 독자는 독자성을 잃어버리고 저자의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 그 와중에도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에 물들어 쏟아져 나오는 생각의 물꼬를 막을 수 없다. 저자의 행간에 내 생각을 적어 놓기도 하고 이모저모 헤쳐서 뜯어보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책은 온통 지저분해지고 너저분해지면서 격렬했던 사랑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다. 저자의 책이 책을 읽은 독자가 다시 저자로 탄생되는 순간이다. 저자의 세계로 빠져든 독자는 저자가 던지는 모든 메시지를 마사지로 해석한다. 독자를 전율케 하는 마사지의 출처는 저자의 메시지다. 독자는 점차 저자의 메시지에 온몸을 농락당하기 시작한다.


뜯어보기(이모 저모 헤쳐서 보기):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이미 극에 달한 흥분은 활자의 바다를 격랑의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차게 건너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도저히 페이지마다 담긴 저자의 심오한 철학과 체험적 교훈에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주옥같은 문장의 향연이 나를 더욱 뜨겁게 달궈준다.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문장이 품고 있는 의도와 의미를 반추해본다. 그리고 난반사로 떠오르는 다른 생각이 파편을 긁어모아 책의 여기저기 빈 공간에 메모한다. 그것도 모자라 별도의 메모장에 눈 맞은 문장을 기록하고 심장을 멎게 했던 그 문장에 밑줄을 치고 형광펜으로 뜨거운 감정을 물들인다. 그리고 다시 그 문장의 의미를 뜯어보며 책과 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넘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다. 책아일체(冊我一體)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한 챕터를 읽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순간 이미 앞장은 밑줄 친 문장에 내 생각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페이지마다 남아있는 여백에는 온통 내 생각의 파편으로 너저분하게 난장판이 되어 있다. 그것도 모자라 형형 생색 형광펜으로 내 생각과 느낌의 강도와 수준에 따라 인두 같은 문장마다 저마다의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춘다. 지저분하게 읽은 만큼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지분이 늘어난다. 지저분하게 책을 읽으려면 책은 빌려보지 말고 사서 봐야 한다. 내가 산 책이라야 나의 정성과 열정이 훑고 지나간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읽으면서 내가 적은 만큼 네 몸속으로 각인된다. 책은 그래서 몸으로 읽는 것이다.


따져보기(육안을 심안에 맞춰서 보기): 부분 속에 전체가 있다(후랙탈 독서법)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숨결을 따라가며 의미의 껍질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독서란 저자의 날숨이 독자의 들숨으로 되고, 독자의 날숨이 저자의 들숨으로 맞교환되면서 저자는 독자의 심장 속으로, 독자는 저자의 숨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저자의 숨결이 갑자기 독자의 호흡과 맞지 않는 내용이 나타나는 순간 독자는 발을 빼고 잠시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리기 위해 달려들었던 독자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 페이지를 건너뛰다가 목차로 돌아가 자신이 걸어간 길을 잠시 반추해본다. 그리고 목차를 다시 훑어보다 지금 읽고 챕터를 건너뛰기로 결심하고 목차가 주는 소제목 중에 유난히 끌리는 부분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기서 다시 독자는 저자의 메시지로 마사지당하면서 느슨했던 긴장관계가 다시 팽팽한 긴장감으로 돌변한다. 그 순간 활자의 바다는 다시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폭풍우가 몰고 오는 파도의 높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는 저자가 끌고 가는 세계로 다시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읽다가 중간에 건너뛴 내용이 끊어져 있다가 다시 지금 읽고 있는 내용과 암묵적으로 연결되면서 다시 저자가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 고리에 내가 연결된다. 다 읽지 않았음에도 저자가 던져주려는 메시지의 의미를 다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다. 바쁜 일상에서 한정된 시간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마음에 거슬리거나 주의를 분산시키는 내용은 과감히 뛰어넘어야 저자가 꿈꾸던 경지도 넘어설 수 있다. 육체적인 눈(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읽어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한다. 바로 마음의 눈(심안)으로 저자의 메시지가 품고 있는 아픔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헤아려 보기(한 걸음 깊이 들어가 마음으로 셈하여 보다):

발췌하지 못하면 의미를 발굴할 수 없다.


모든 책은 앞에서 뒤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저자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나간다. 따라서 책을 읽는 순서도 저자가 책을 쓴 순서와 무관하지 않게 조정한다. 하지만 모든 책을 앞에서 뒤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갈 필요가 있을까? 이 문제는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결부되어 있다. 책은 분야와 종류를 막론하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에 상대적으로 마음이 더 쏠린다. 두꺼운 책일수록 재미보다 의미를 앞세워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끝까지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두꺼운 책일수록 독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노리는 책이다. 가볍고 얇은 책일수록 책 이외의 다른 메시지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두껍고 난해한 책일수록 독자가 이해하기 쉽거나 이해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취사선택해서 읽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지금 여기서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문학작품은 대부분 순서대로 읽어야 전후좌우 스토리 전개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구조가 기승전결이나 발단과 전개, 절정과 결말과 같은 일정한 논리적 체계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집이나 특정 목적을 근간으로 쓴 자기계발서, 에세이나 철학적 성찰을 담은 책, 또는 평론집은 굳이 순서대 읽지 않고 특정 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도 된다. 즉 순서대로 읽지 않고 마음이 당기는 대로 읽는다. 하지만 아무 곳이나 막 읽는 게 아니다. 저자의 핵심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생가 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다. 발췌해야 저자가 숨겨놓은 핵심 메시지의 터전을 발굴할 수 있다.


알아보기(속살과 속내를 하나로 보다): 요약하지 않으면 비약할 수 없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격렬한 사랑도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면서 끝을 향해 치닫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에 읽어버린 책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읽고 말은 책도 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읽은 책이 있는가 하면 우연이 잡은 책이 내 정신을 앗아가 버린 책도 있다. 깊은 감정적 몰입으로 책 속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와보니 수많은 메시지가 뒤엉켜 정리가 잘 안 되는 책도 있고, 다 읽었지만 감정의 파고가 없어서 기억나는 메시지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뇌리에 꽂힌 한 마디는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을 읽고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도 없기에 읽은 책만이라도 요약해서 정리해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저자가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어떤 문제의식을 풀어내려고 했는지를 생각해보자.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의 머리 속에 어떤 이미지를 남기고 싶은 것인지, 그 이미지를 한 마디 메시지로 정리하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를 읽고 나서 빠른 시간 안에 요약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지금 여기서 저기로 비약할 수 없다. 책을 읽는 중요한 목적은 지금 여기서 저기로 도약하기 위한 사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 해서다. 생각의 디딤돌이 다양해야 내공이 탄탄해진다. 탄탄한 내공은 다양한 책을 읽고 요약하는 연습을 반복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책을 읽고 감동받았지만 내 손으로 요약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책은 내 생각으로 잉태되어 새로운 생각의 자손으로 출산되지 않는다. 남의 생각이 파편으로 얼룩져 사고의 식민지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책을 읽고 내 생각으로 요약하는 연습을 하자. 요약이 비약을 낳는다.



후희(後犧): 후회하지 않기 위한 다음 책 읽기 준비


책과의 한바탕 격정이 끝나갈 무렵,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하면 독서는 무용지물을 넘어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저자의 책과 독자가 한 몸이 되어 격렬한 사랑이 끝나갈 무렵, 책은 이제 독자의 몸에서 빠져나가 다시 누군가의 몸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책에서 빠져나온 독자는 이제 다음 책과의 사랑에 앞서 내 몸속으로 들어온 저자의 메시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내 삶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아 내가 살아가는 삶에 비추어 나를 생각해본다. 버렸던 내가 다시 돌아와 지금의 나와 다른 나로 바꿔보려는 공부가 시작된다. 내가 받은 감동적인 울림이 내 심장의 울림으로 끝나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감동을 전해준다. 나아가 개인차원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독자에게도 감동의 파장이 울려 퍼지게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나만 감동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감동을 다른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읽고 감동받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전해주면서 감동받은 줄거리를 전해준다. 개인차원의 감동 파장이 파고를 넘어서 공감의 연대망으로 확산되어 공명의 파장이 장기간 울려 퍼지기를 기원해본다.


뚫어보기(알아보다의 깊이와 넓이가 심화 확장): 배우지 못하면 배우가 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책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함으로써 저자가 책을 속 마음을 알아봤다면 이제 한 단계 더 깊이 파고들 순간이 왔다. 단순히 알아보기를 넘어서는 뚫어보기 단계다. 알아보기 위 깊이와 넓이가 심화되고 확장되는 순간이다. 뚫어보려면 책을 통해서 배운 핵심 메시지가 나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책은 저자가 쓴 글의 집합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독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순간 책을 떠나 책을 읽은 나와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책이 던져주는 의미와 의도가 나와 내 삶에 무슨 시사점이 있는지를 한 번 더 고뇌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알랭드 보통은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책의 저자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책은 여전히 저자의 책이다. 저자의 생각이 내 몸으로 파고들어와 새로운 생각이 임신되기 위해서는 내 생각에 비추어 저자의 메시지를 반추하고 내 삶에 던져주는 화두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수한 생각의 파편들이 뇌리 속을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만 내 삶을 움직이는 생각의 씨앗으로 발아되는 생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삶의 주연 배우는 모든 것에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독서는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배움의 원천이자 보고다. 책을 덮고 이제 나를 읽어보고 내 삶을 읽으면서 독서로 배운 내용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과정이 진짜 독서를 통해 내가 배우는 과정이다.


꿰뚫어보기(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상태): 책선물(膳物)이 뇌물(腦物)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봐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책을 선물로 줄 수 있다. 책 내용과 상대방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책과 사람 사이를 꿰뚫을 수 있다. 선물로 책을 주는 사람은 그 책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있어야 선물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다. 꿰뚫어 본다는 것은 보기의 마지막 단계다. 뚫어보면서 깊이와 넓이가 심화되고 확장되어 이제 더 이상 볼 게 없는 상태가 바로 꿰뚫어 보기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고 들여다보았으면 책장이 뚫어져버렸을까? 그것도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고 책 속의 메시지를 파고드는 눈빛만으로 종이 책을 꿰뚫어버렸다는 것인가? 그만큼 책을 들여다보는 눈빛과 마음이 뜨겁다는 이야기다. 내가 읽어버린 책, 내가 읽고 말은 책이라야 그 책의 메시지를 꿰뚫어 볼 수 있고, 비슷한 다른 책의 의미도 이전과 다른 내공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 책은 그 자체가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고 용기와 희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읽고 감동받은 책으로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는 책과 상대방의 마음을 연결시켜 꿰뚫어 봐야 한다. 선물해주는 책과 선물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의 연결통로로 꿰뚫어질 때 책 선물은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뇌세포를 자극하는 선물, 뇌물(腦物)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은 감동이 한 사람의 심장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심장에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파동을 일으키는 상대의 심장은 또 다른 사람의 심장과 연대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책으로 감동을 나누는 공명(共鳴)의 파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책은 개인을 떠나 집단과 단체로 연대망을 구축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위험한 혁명을 불씨가 되는 것이다. 지덕체(智德體)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교육이라야 올바른 교육이다. 하지만 현실은 지(知)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만 지혜는 창조되지 않고, 덕(德)은 없어졌고 공감능력을 실종되었으며, 몸(體)은 망가져서 건강한 신체 기반은 무너진 지 오래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며 깨닫는 체험적 교훈보다 머리를 쓰는 지능을 통해 지식을 쌓아나가는 창백한 책상 교육이 주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체험을 통해 현실의 무게를 깨닫는 교육이 없다 보니 타자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공감하는 능력은 거의 없어졌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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