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최승자, ‘20년 후, 지(芝)에게’).
우리가 만나는 아름다움은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도
대체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는 절박한 희망 속에서 잉태되지.
극심한 피곤함이 온몸을 휘감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동안 살아오며 간직한 간절함이 절망을 이기는 가운데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이 탄생되지.
걸림돌에 넘어지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디딤돌을 넘어서면서도 자만하지 않으며
자빠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그 순간 사이에
흐르는 침묵의 기다림이
우리를 아슬아슬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지.
기다리는 사람은 약속 시간을 넘어서도 오지 않고
스치는 바람은 무수한 무소식을 실어 나르며
창밖을 서성이며 앞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그 사람의 종적을 찾을 수 없을 때
안타까운 기다림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 사이에
허공을 내다보는 나의 고독에는 숨길 수 없는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이 숨을 죽이고 있지.
기대를 저버리고 떠나갔던 그 사람을 회상하며
흩날리는 낙엽이 전해주는 안부에 귀를 기울여도
한낮의 지루함과 하품은 멈추지 않을 때
버림과 저버림 사이에 고뇌하는 신중한 야속함은
참 아슬아슬하게도 빛나는 아름다운 그림자지.
누군가의 부름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무수한 시간 속에 몸부림쳐도
소음만 크게 들릴 뿐 내가 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소음과 소리 사이에 흐르는 떨리는 소름은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 저버리는 신호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자세는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춤이지.
읽기도 전에 중압감을 주는 벽돌 책 앞에서도
언젠가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만나는
참을 수 없는 읽었음의 무거움 앞에
읽기 시작한 나와 다 읽은 내가 기다리는 사이,
나도 모르는 낯선 나를 미리 생각하는 일은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지.
읽고 또 읽어내며 세상을 다르게 읽어내도
여전히 책장의 책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치고
책상 위에 몇 겹으로 눌려 있는 책은
숨쉬기조차 어렵다고 항변을 하지만
읽고 있는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에는
읽어도 끝이 없다는 허망한 좌절감과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열망이 만나
절치부심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장면은
참 아슬아슬하게도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지.
일주일 붙잡고 있는 글감은 영감으로 바뀌지 않고
하얀 백지 위를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면서
흔적을 남기며 고뇌의 흔적을 토해놓지만
뻥 뚫린 허전함을 메꿀 단어는 언제나 오려는지
오리무중 상태로 마감시간으로 향하는 무책임한 시간은
참 아슬아슬하게도 아름다운 순간이지.
쓰는 시간에는 사는 시간을 붙잡아
무엇을 쓸지 물어보고
사는 시간에는 쓰는 시간을 잡아매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물어보지만
쓰는 시간과 사는 시간에서 벌이는 사투는
안간힘을 쓰며 침묵을 지키는
참 아슬아슬하게도 아름다운 작업이지.
결전의 날이 빛의 속도로 다가와도
결정적인 한방과 필살기는 연마되지 않고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도
난국을 돌파할 혜안을 떠오르지 않고
시간의 압박은 망치로 머리를 두들기며 다가올 때
참 아슬아슬하게도 아름다운 고역이지.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오늘 마주친 순간의 추억들이 재생되기도 전에
다가올 내일의 일들이 골머리를 아프게 만들어도
오늘 밤과 내일 새벽 사이에 흐르는
느긋한 긴장감은 나를 위로해주는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이지.
지금 비록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극심한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혼돈 속에서 질서라는 새로운 창조의 불꽃이 핀다는
신념을 체념하지 않는다면
흙탕 물속에서도 정화수를 꿈꾸는 비극적 희극 사이는
참 아슬아슬한 아름다운 구속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시작은 위험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니체의 말을 되새기며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시작하려는
다짐과 결단, 과감한 행동과 추진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꿈틀거림은
참 아슬아슬하게도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지.
#최승자 #20년후지에게 #시쓰고싶은지식생태학자 #언어생태학자 #언어의연금술사 #패러디 #삼행시전문시인 #지식생태학자 #언어를디자인하라 #유영만교수 #날선언어 #낯선생각 #언어를벼리다 #언어를벼리지않으면언어가당신을버린다 #아이러니스트 #시쓰기 #시인의마음 #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