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보다 밀도가 행복의 척도다
우리 시대의 역설
삶의 속도보다 밀도가 행복의 척도다
빛의 속도로 나누는 ‘정보’는 많아지고 있지만
나의 체험적 ‘지식‘을 나누는 기회는 사하지고 있다.
범람하는 ‘정보’는 도처에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주는 ‘지혜’는 상실되고 있다.
중요하고 급한 내용을 더 빨리 주고받는 SNS는 많아지고 있지만
소중하고 가치 있는 내용을 의미심장하게 공유하는 만남은 실종되고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욕심(慾心)은 늘고 있지만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욕망(慾望)은 점차 상실되고 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의 법칙과 기술은 배웠지만
침묵으로 가려진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치유는 배운 적이 없다.
따듯한 만남으로 치유하고 힐링하려는 마음보다
논쟁을 통해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는 마음이 앞서가고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에서 즐기는 순간의 여유는 없어지고 있다.
목적지로 가는 수많은 간이역에 살아가는 즐거움이 널려 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맛보는 행복의 밀도는 얇아지고 있다.
소통의 ‘양(量)’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소통의 ‘질(質)’은 날로 퇴보하고 있다.
소통의 빈도(頻度)와 속도(速度)도 늘어나고 빨라지고 있지만
소통의 강도(强度)와 밀도(密度)는 약해지고 있다.
메신저 친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친구는 줄어들고 있다.
만나자는 사람은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불특정 다수와 주고받는 메시지는 늘어나고 있지만
체험적 깨달음이 담긴 메시지를 나누는 시간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정작 소중한 사람과 소통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순간적 욕망을 자극하는 영상 메시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일평생 사유의 샘물이 될 수 있는 인두 같은 한 문장은 줄어들고 있다.
삶을 더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수단과 방편은 늘어나고 있지만
불편한 삶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가르침은 실종되고 있다.
근사한 집은 늘어나고
아파트 평수도 넓어지고 있지만
따듯한 정담이 오고 가는 가정은 줄어들고 있다.
밖에서 먹고 마시며 수다 떠는 시간은 늘어나고 있지만
집에 들어가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과 나누는 대화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다양한 분야를 발전시키는 ‘기술(技術)’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매너나 ‘기본(基本)’은 날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
‘기본(基本)’을 지키지 않으니 ‘기분(氣分)’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과시욕에 물들어 ‘인맥(人脈)’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더 많이 전개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인격(人格)’은 날로 격하되고 있다.
인맥은 넓어지고 있지만
‘치맥’보다 치명적인 인맥은 더 많이 형성되고 있다.
자기만의 깨달음을 담았다고 생각하는 영상은 늘어나고 있지만
다름과 차이를 통해 배우려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분노와 적개심으로 손 좀 봐야겠다는 ‘앙심(怏心)’의 댓글은 늘어나고 있지만
‘진심(眞心)’으로 상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댓글은 줄어들고 있다.
‘진심(眞心)’으로 손 잡아주는 ‘소통’보다
‘사심(邪心)’으로 ‘소탕(掃蕩)’하려는 불온한 의도가 부각되고 있다.
분쟁이 빈번해지면서 가슴에 박히는 못은 많아지고 있지만
박힌 못을 빼내는 따듯한 관심과 배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지기보다
상처받으며 속상해지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권총‘도 있고 ’따발총‘도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총은 눈빛에 적개심을 품은 ‘눈총’이다.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사람보다
눈총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싸우면서 뭔가를 쟁취하고 ‘소유(所有)’하는 법은 배웠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나누고 공감하는 ‘소양(素養)’은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펼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대화는 단절되고 관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생기고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은 발전하고 있지만
감성적으로 ‘설득‘하고 공감하는 미덕은 사라지고 있다.
머리로 이해는 가지만 여전히 골치 아픈 일은 쌓여가고
가슴으로 공감하며 감동하는 일은 줄어든다.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와 처방전은 많아졌지만
오히려 문제는 설상가상으로 악화일로에 있고
대증요법적 처방전은 날개를 달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과 싸우면서 분노와 패배감은 늘어가고 있지만
문제와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할 대안과 혜안은 종적을 감추고 있다.
사고 싶은 상품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사고 싶게 만드는 광고나 홍보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사면 살수록 살아내려는 의욕과 희망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의 철학과 혼을 담아내는 작품은 온데간데없다.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는 방법은 더 많이 제시되고
목표도 더 많이 달성하고 있지만
또 다른 목표가 목표 달성 욕망을 자극하고
목숨조차 위협하는 성과주의와 능률 복음은 더 강렬해지고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은 더 많이 먹고
건강에 좋은 음료도 더 많이 마시지만
몸은 예전보다 나빠졌고,
몸에 좋다는 약도 더 많이 먹고 있지만
건강은 예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품은 책은 더 많이 쏟아지고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줄어들고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쓰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깊은 사색의 지혜를 품은 텍스트보다
순간적 욕망을 자극하는 영상이나 이미지에 더 많이 노출되어
텍스트 혐오증이나 텍스트 난독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경제논리를 설명하는 경제학은 더 정교해지고
기업경영의 노하우를 제시하는 경영혁신 기법은 더 많이 제시되고 있지만
세계 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업은 더 심각한 위기와 난국에서 빠져나올 혜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교육문제와 역기능을 설명하는 교육학과 교육학자는 더 많아지고 있지만
교육 현실과 현장은 더 많은 문제로 또 다른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자식 공부와 미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는 많아지고 있지만
자식의 개성과 재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부모는 줄어들고 있다.
먼 미래를 향한 원대한 꿈과 비전을 품으라는 학부모는 많아지고 있지만
주어진 현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웃을 살피라는 부모는 줄어들고 있다.
학력은 높아지고 고급 지식은 많이 배웠지만
삶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의 지혜는 배우지 못했다.
단기간에 돈을 벌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하우는 많아지고 있지만
번 돈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진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먼 거리를 다녀오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이해하는 예술은 실종되었다.
바깥세상을 정복하는 기교는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내면으로 파고들어 나를 만나는 길은 막혀버렸다.
서두르고 허둥지둥하는 시간은 많아지고 있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며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시간은 없어지고 있다.
뭔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나고 있지만
편하게 살아가는 얄팍한 유혹의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이 글은 제프 딕슨의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글을 참고로 작성되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