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곳없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랑곳없이는 거처할 곳이 없는가?
아랑곳없이라는 말의 의미는?
“혹한에도 아랑곳없이 수선화가 무리 지어 꽃을 피워 싱그러운 향기를”
- 김승희의 ‘아랑곳없이’라는 말, 《희망이 외롭다》 시집 중에서 -
폭염의 날씨가 한 낮을 습격 해도 소나기가 갑자기 세상을 뒤덮어도 아랑곳없이
개미는 먹이를 물고 자기 집으로 사투를 벌이며 끌고 간다
사람들의 불평불만에도 아랑곳없이
매미는 한 여름의 허공을 가르는 시끄러운 합창을 그치지 않는다
불현듯 몰아닥친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때를 모르고 새순을 틔운 나뭇가지는 산들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세상을 노래한다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방황하는 파리의 날갯짓에도 아랑곳없이
미동도 않은 채 낮은 포복 자세로 엎드린 개구리는 아른거리는 먹이를 노려보고 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며 거미줄을 뒤흔드는 불안감에도 아랑곳없이
거미는 귀 기울여 먹이가 오는 소리를 듣는다.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한낮의 공포에도 아랑곳없이
까치는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안식처를 짓는 건축가로 변신을 거듭한다.
불타는 단풍이 노래하는 가을의 낭만에도 아랑곳없이
저녁노을은 몰려오는 어둠에 지친 나머지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져만 간다
나뭇잎 한 장에 쓰인 우주의 메시지가 아우성치는 몸부림에 아랑곳없이
낙엽은 정처를 잃고 가을바람에 흩날리다 찬바닥에 엎드려 뒤척인다.
폭설에 새겨진 추운 발자국이 휘몰아치는 야속한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새벽을 손꼽아 기다리며 기억의 흔적을 아로새긴다.
모든 단풍잎이 뜨겁게 불타는 열기에도 아랑곳없이
가을은 칼처럼 스쳐 지나가다 쉽게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 남기고 떠나간다.
이른 봄부터 꼿꼿하게 드넓은 광야를 지키던 벼가 힘겨워 고개를 숙이는 겸손에도 아랑곳없이
잠자리는 그 위에 앉아 가을 연가를 연주하느라 무거운 선율을 쏟아내고 있다
밤사이 이불도 없이 추위에 떨던 차디찬 이슬이 먼동의 온기에도 아랑곳없이
잎사귀에서 곡예를 펼치며 새벽을 맞이한다.
한낮의 열기를 품은 파도가 끊임없이 허리를 때리는 통증에도 아랑곳없이
바닷가 바위는 자신의 사랑고백을 외면하는 파도의 거절에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간다
밤새 쉬지 않고 걸어 내려온 강물의 하소연에도 아랑곳없이
새벽안개 온기로 강물을 덮어주고 오늘 읽을 책장을 넘긴다
거대한 수레바퀴 기계가 굉음을 내면서도 돌아가도 아랑곳없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틈새에 끼어 앉아 책을 바라보는 눈빛은 차라리 서글프다
사전을 불태워 재가 된 언어를 마셔도 아랑곳없이
다음 문장에 써야 할 단어는 여전히 오리무중 속에서 헤맨다
산적한 고민을 책 속에 집어넣고 해결해달라는 아우성에도 아랑곳없이
책장 속의 문장은 벌써 몇 시간 째 누워서 깊은 수면을 취하는 중이다
절망으로 얼룩진 구름 사이로 미소 짓는 태양에도 아랑곳없이
행간에 흐르는 저자의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 눈길은 문장 위를 어루만지고 있다.
시침에 꽂힌 등판의 아픔에도 아랑곳없이
마네킹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쓴웃음을 짓는다.
하루 종일 세찬 사막의 파고를 넘나들다 힘에 짓눌린 어깨에도 아랑곳없이
낙타는 작렬하는 태양빛의 무게가 더 실려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막을 건넌다
온갖 핑계가 난무하고 하기 싫은 이유가 장벽을 만들고 있어도 아랑곳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철’을 들으러 짐gym으로 간 사람은 아직도 ‘철’이 들지 않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박한 상실감과 앞이 보이지 않는 난국에도 아랑곳없이
지금 여기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 덕분에 나도 현재(present)라는 선물을 받는다
‘아직’ 살아갈 날은 남았고 ‘이미’ 살아온 추억 사이에서 배우는 하품의 희망에도 아랑곳없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절망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운다
아랑곳은 어디 있는지
오늘도 아랑곳없이
그곳을 찾아 분투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