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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가 '하소연'을 하다

‘하물며’가 ‘하소연’을 해도 세상은 여전히 하품만 하고 있다


'하물며'가 '하소연'을 하다

‘하물며’가 ‘하소연’을 해도 세상은 여전히 하품만 하고 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는 ‘하물며’가 없다.”

- 김승희의 ‘하물며’라는 말, 시집, 《희망이 외롭다》 중에서


늑대는 평생을 일처일부제로 살아가며 새끼를 낳아도 공동 육아로 더불어 살아가는데

하물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일삼으며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비난의 화살을 날리면서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몰염치는 어디서 배운 것일까


새벽도 희망을 잉태하기 위해 어제부터 어둠의 이불을 덮고 사투를 벌이는데

하물며 사람은 절망이 온몸을 파고드는 절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과감하게 용기를 발휘하여 걸림돌도 디딤돌로 바꾸는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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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떠오르는 얼굴 중에서도 수시로 오래전에 끊어진 인연을 생각하는데,

하물며 가까이 지내는 관계 속의 끈끈한 사람도 관심을 덜 갖고 애정의 손길을 보내주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넘을 수 없는 경계로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빨리 간파하지 못하는 것일까


끼니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밥 먹는 그릇과 부딪치는 소리에도 음악이 들리는데

하물며 바람이 지나가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천상의 음악을 우리는 왜 듣지 못하고 소음에

시달리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모든 사람의 아픔은 자기 몸으로 겪은 처절한 고통이라서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한데 하물며 극심한 통증으로 생사를 넘나들며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사람의 견딜 수 없이 아픈 심정은 무슨 언어로 번역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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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문장에도 저자가 살아오면서 고뇌했던 흔적이 얼룩으로 남는데 하물며 무엇을 쓰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백지 위에서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사람의 얼룩에는 얼마나 심오한 무늬가 담겨 있을까


깊이 파고들어 집중하고 몰입해서 단어와 문장에 담긴 의미의 껍질을 캐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하물며 건성으로 읽으면서 대충 생각하는 독서로 행간에 담겨 있는 숨은 의미를 발굴해내려는 의도 자체는 너무 헛된 망상은 아닐지


바람에 흔들리면서 뿌리 채 뽑힐 수도 있는 나무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노심초사하는 데 하물며 모든 순간을 꽃 봉오리로 피우기 위해 애간장을 녹이며 피곤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고달픈 심정은 어떤 방법으로 위로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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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뭇잎도 불타는 단풍으로 제2의 봄을 맞이하고 있는데

하물며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중년은 모든 역경을 뒤집어 경력으로 만드는 제2의 봄을 맞이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햇빛의 비수에도 나무는 살을 베이지 않고

어떤 침엽수도 제 바늘로 빗방울을 찌르지 않는 “데

하물며 이른 봄에 찾아와 뿌리 채 흔들며 온몸을 떨게 만드는 꽃샘추위는 사실 꽃대를 더욱 뿌리 깊이 뻗게 하려는 ‘꽃 세움’ 바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왜 모르고 있을까


나뭇가지가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나가도 절대로 다른 나뭇가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염치없는 행동은 어떤 자기 합리화로도 방어할 수 없는 몰인격적인 처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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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씨앗이 바람에 날아가다 떨어지면 자리 탓을 하지 않고 그곳에서 일생을 목숨 걸고 살아가는데 하물며 태어난 자리가 불행하다고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의 자세야말로 나무만도 못하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아파하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눈물로 얼룩진 사연이 있는데

하물며 긴 시간 견딜 수 없는 아픔을 호소하며 과거와 단절하는 결단을 내리려는 사람의 아픈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계란 두 개를 동시에 깨뜨려 뜨거운 프라이 팬에 올려놔도 각자의 노른자는 섞이지 않고 흰자끼리는 어깨동무를 하는데 하물며 관심사가 다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울리되 하나가 되지 않으려는 화이부동의 철학은 우리 모두가 지켜내야 할 인간적 희망의 연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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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넘어져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 다시 바람을 맞이하려는 풀들도 의지를 보여주는데

하물며 한두 번 넘어지고 자빠졌다고 좌절의 늪에서 헤오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둘러대는 변명과 핑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한의 추위와 함께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올 때 펭귄들은 동료들과 둥글게 스크럼을 짜고 빙빙 돌면서 추위를 견뎌내는 연대감을 발휘하는데 하물며 힘든 일을 앞두고 솔선수범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가운데 한계에 도전하는 두려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리더십의 뒤안길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늘이 주관하는 일에도 가끔은 치명적인 실수나 실패가 일어나는 법인데

하물며 불완전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일상사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변수들을 모두 다 사전에 통제하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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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여름까지 힘들게 매달렸다 불타는 단풍을 선물로 준 나뭇잎은 욕심을 버리고 땅으로 돌아가는 데 하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눔보다 소유와 쟁취에 혈안이 든 인간의 탐욕은 무엇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할까


뜨거운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은 자기보다 더 뜨거운 물과 섞여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내는데

하물며 한 여름의 뙤약볕을 탓하며 땀 흘리는 노동을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하소연은 무슨 논리로 변명을 면할 수 있을까


모든 강물도 아래로 흘러가며 세상을 배우고 가장 낮은 바다에 모여 다시 비상을 꿈꾸는데

하물며 낮은 자세로 세상의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높이 올라가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은 물처럼 살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물 먹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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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는 오랜만에 거품을 물고

하소연을 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하품이 더 많이 살고 있다

그 순간 ‘더군다나’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는 아직 더 많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된다는 일갈을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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