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량한 가을의 낭만이 낙엽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더 아름다운 아픔은 내일의 것입니다
상처 주는 내 말을 당신은
꽃 떨어지고 열매를 맺듯 받습니다
아픔과 슬픔의 얼룩이 무늬처럼 빛나기만을 기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아픈 추억만 남겨도 당신은
슬픔 속에서 자라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럼에도’라는 섬에서 피는 꽃이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당신을 눈물과 번뇌의 시간만 주어도
당신은 나를 여전히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사랑했다’가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소낙비를 맞고도 물가에서 떨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려 온몸을 떨고 있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애처롭습니다
가을의 처량한 낭만이 낙엽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가끔씩 불어닥치는 바람에 엎치락뒤치락
어디로 갈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만추의 가을이 남기고 간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질린
은행잎을 허공에 날립니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봅니다.
불타는 단풍도
나무가 맞이하는 제2의 봄이라고 합니다.
곤경의 아픔도 풍경으로 탈바꿈되는
제2의 봄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기원합니다
앞산이 먼 산을 바라보며 먹구름을 부릅니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해님을 향한 그리움의 끝은 없고
어둠이 이불을 덮어주어도 서러움의 온도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흐르는 강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밤하늘을 지켜내던 달도 오늘 밤은
빨갛게 질린 얼굴로
레드문(Red Moon)을 만들었습니다
눈물겹게 앓음다운 순간의 추억입니다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활자의 바다를 건넙니다
비천해지지 않기 위해 읽던 책도 마저 읽습니다
비애를 잊기 위해 산책도 잊지 않고
스치는 바람에 오늘 만난 단어를 실어 보냅니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처량한 가을의 낭만을 멈추게 할 수 없고
서글픈 마음을 흐르는 강물에 씻어 보낼 수 없습니다
위태롭게 떠 있는 밤하늘의 별 하나 딸 수 없고
먼동이 터오는 새벽의 안간힘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절망이 간절하게 길을 물어도
어떤 문장이 처절하게 단어를 찾아 나서도
대답 없는 하소연이 하품만 합니다.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도 잠시 멈춰 섰지만
그리움의 밤길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몸에 스며든 고통의 얼룩에 수많은 주석을 달아봤지만
그 의미의 심연은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행간에 숨어있던 의미의 바다를 건넙니다
문장 계곡 사이로 흐르는 침묵의 통곡은
어둠의 바다를 헤엄치며 더 높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여전히 쓰고 싶은 문장은 문 앞에서 서성거립니다
어디선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비수의 날갯짓은
살아내려는 안간힘의 힘줄을 붙잡고
아등바등 사투를 벌입니다
저녁으로 향하는 시간의 화살은
눈치 보지 않고 오늘도 속도만 높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건너온 우리들에게
세상도 무심하지 않다면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이름,
‘우리’라는 이름이 침묵의 아우성으로 들릴 수 있는
그날이 무한 반복되기를 간절히 애원합니다.
칼베듯 다가왔다 사라져 가는 가을의 낭만과 함께
울음으로 알린 당신의 오늘,
‘울음 뒤에 웃음’이 온다는
어느 시인의 깨달음의 흔적처럼
앞으로 살아갈 날을
가장 눈부시게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
사람이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삶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겪은 체험과 책으로 배운 개념의 절묘한 만남과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배웠다. 체험이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이 없는 체험을 위험할 수 있다는 통찰에서 개념과 체험을 융복합, 새로운 창작의 문을 여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우연한 경험과 마주침으로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배움을 사랑한다. 앎으로 삶을 재단하기보다 삶으로 앎을 증명하며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고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 지식생태(生態)학자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조립한 지식으로 지시하기보다 격전의 현장에서 몸으로 깨달은 체험적 지혜로 지휘하는 삶을 추구한다. 언어가 부실하면 사고도 미천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낯선 경험을 색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연금술사로 변신하고 있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낯선 언어를 사용하여 어제와 다르게 표현하는 과정을 즐긴다. 비루한 삶이지만 익숙한 일상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똑같은 현상에서도 비상하는 상상력을 언어로 낚아채는 공부에 관심이 많다. 오늘도 뜨거운 체험의 모루 위에서 틀에 박힌 언어를 갈고 닦고 벼리면서 잠자는 사고를 흔들어 깨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체인지體仁智》, 《공부는 망치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으로 승부하라》,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 《브리꼴레르》 등 저서와,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빙산이 녹고 있다고》 등 역서를 포함해서 총 90여권의 저역서를 출간하며 다양한 사유를 실험하고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강연하는 지적 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메일: u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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