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깨질지언정 더러워지지 않는 한 방울의 이슬입니다
당신의 참고 견디다 터지는 한 곡절의 기쁨의 노래이자
나도 모르게 받아쓰는 한 구절의 비탄의 시입니다.
당신은 입어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한 벌의 그리움의 옷이자
쉽게 가시지 않는 한 순간의 서글픔이 몰고 온 어둠의 그림자입니다.
당신은 햇볕을 향하는 나무의 의지이자
희망 때문에 절망을 견디는 절벽의 소나무입니다
당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저녁노을의 황홀함이자
눈이 부실 정도로 바라보기 힘든 일출의 경이로움입니다
당신은 나뭇잎 한 장 다 담아낼 수 없는 아쉬움이자
풀밭이 담고 있는 시인들의 절규입니다.
당신의 시침에 꽂혀 아픔을 호소하는 마네킹의 절규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로 위장하는 서러움입니다
당신은 폭설에 새겨진 추억의 발자국이자
휘몰아치는 바람이 몰고 오는 절박한 소식입니다
당신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밤을 지새우는 영롱한 이슬방울이며
아침을 향해 비장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찬 서리입니다
당신은 바람을 타고 몰려오는 파도소리의 안타까움이며
받아주지 않아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굽히지 않는 애처로운 고백입니다
당신은 이른 아침 흐르는
강물의 외로움을 달래는 새벽안개이자
한낮의 열기를 식히며 떠도는 구름의 무상함입니다
당신은 들판의 야생화 사이에서 하늘로 향하는 몸부림이자
밤하늘이 별이 애타게 기다리는 처량한 새벽입니다
당신은 허둥지둥 일어나 엉겁결에 움직이는 발길이자
허겁지겁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애처로움입니다
당신은 때를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피었다 찬 서리 맞은 놀라움이자
아무 생각 없이 머뭇거리다 바람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입니다
당신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어둠이 몰고 오는 야경이자
심연의 바다에서 생각을 거듭해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막막함입니다
당신은 아등바등 올라가도
도달할 수 없는 허공의 미래이며
내려가도 만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입니다
당신은 보내고 싶어도 번지수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주소이며
아무리 기다리며 열어봐도
만날 수 없는 어둠 속의 소식입니다
당신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연필 자국의 외로운 절규이며
읽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간의 아우성입니다
당신은 누가 연주해도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변화무쌍한 악보이며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슬픈 카리스마의 향연입니다
당신은 찬란하게 피었지만
언제 질지 모르는 동백꽃이며
새봄의 시작을 알리려는
개나리의 꿈틀거리는 합창입니다
당신의 된장국에서 피어나는
냉이의 은은함이며
소고기 국밥 속에서도 자기 본분을 다하는
국물의 은근함입니다
당신은 고요와 적막 사이를 오고 가는
빈자리의 허망함이며
비바람과 눈보라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처연한 외침입니다
당신은 오도 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가 주는 긴장감이자
그럼에도 가능성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전주곡입니다
당신은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고
버텨내는 국화꽃의 절박함이며
면도날로도 벨 수 없는 맨살의 마지막 항거입니다
당신은 상처부위를 어루만지며
새살을 돋우는 치유의 손길이자
치부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아름다운 용기입니다
당신은 햇볕이 지나가다
소식을 남기고 떠나는 빨랫줄의 흔들림이며
아침을 기다리다 지쳐 풀 잎 위에 위태롭게 머무는
한 방울의 이슬입니다
당신은 피곤함의 이불을 덮고
이 밤을 지새우는 눈부신 달빛의 애잔함이며
앞이 보이지 않아도 앞으로 날아가려는 새들의 힘겨운 날갯짓입니다
당신은 손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출렁이는 파도의 새하얀 거품의 허망함이자
다가서면 물러서서 잡을 수 없는 안타까운 뒷걸음질입니다
당신은 쌀 한 톨이 품고 있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이자
천둥번개와 비바람을 이겨내고 고개 숙인 벼이삭의 겸손함입니다
당신은 책을 펼치자 우연히 나타나는
인두 같은 문장의 뜨거운 심장이자
험난한 세상을 불평불만 없이 걸어가는 신발의 결연한 의지입니다
당신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고드름의 위태로운 망설임이자
가을비에 젖어 흐느적거리며
갈 곳을 잃고 기다리는 낙엽의 소리 없는 처절함입니다
당신은 깨질지언정 더러워지지 않는 한 방울의 이슬이자
이슬이 무겁게 내리눌러도 쉽게 꺾이지 않는 도발적인 버팀목입니다
당신은 무자비한 불구덩이에서도 쉽게 태울 수 없는 절연체이자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기쁨을 찾아 쉽게 굴하지 않는 애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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