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은 바닥을 치고
솟아오르는 용솟음이다

당신은 바닥을 치고 솟아오르는 용솟음이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바다가 되지 않는다

숱한 눈물이 흘러 강을 만들어

온갖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흐르고 또 흘러 도달한 종착역이자

위대한 반전이 시작되는 전환점,

바다는 다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비상을 시작한다

바닥보다 더 낮은 곳, 밑바닥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바닥을 치다가

갑자기 솟구치는 힘으로 밑바닥을 힘차게 친다.

정상에 이르는 여정이 바로 하늘 밑에서 기다린다.

밑바닥은 언제나 발바닥이 먼저 알아챈다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 균열처럼

길바닥에서 방황하며 걸어온 생의 흔적이

선명한 얼룩으로 균열이 새겨져 있다

내 생에 가장 정직한 삶의 흔적,

발바닥 굳은살로 오늘 하루도 견뎌본다

가뭄.jpg


뙤약볕이 수직으로 내리쬐어야

비로소 탄생하는 염전(鹽田)의 하얀 소금들

염부의 땀방울과 짠 소금이 범벅이 되어

폭염 속에서 영글어가는 소금산의 염도(鹽度)가

뜨거운 바닷바람 타고 몸서리치며 날아든다

절벽에 가까운 벽을 넘어 사투를 벌이는 연어 떼가

넘어설 수 없는 콘크리트 보 앞에서

급 물결을 거슬러 뛰어오르기를 반복한다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로 물들어도

모성을 향한 절박한 사투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에게

벽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꿈으로 향하는 버팀목이자

일상에서 비상하는 사다리다

혼자 오르기 힘들어

곁에서 오르는 담쟁이덩굴 동료를 만나

어깨동무를 하고 오늘도 절벽을 기어오르다 새벽을 맞이한다

alley-1690053_960_720.jpg


역풍에 돛을 단 배만이 앞으로 진군할 수 있다

순풍에는 바람개비조차 돌지 않는다

죽은 물고기만이 급류에 떠내려 간다

맞바람을 가로질러 날기를 거듭해야

새도 오늘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역류를 선택한다

파도가 바람을 거슬러 밀려왔다가

뭍에 오르지 못하고 절망에 섞인

하얀 거품을 쏟아낸다

곁에 있던 바위가 절망의 거품을 받아내며

한 마디 위로를 건네며 파도를 받아준다

파도는 더 세차게 아픔을 쏟아낸다

나무는 비바람이 불어와도 뿌리째 뽑히지 않고

칼바람이 불어 닥쳐도 칼날에 베이지 않는다

자리 탓을 하지 않고 언제나 자세를 가다듬는 나무는

오늘도 주어진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불안감에 떨고 있다

nature-3082832_960_720.jpg


손가락이 뜨거운 침을 맞듯 세차게 통증을 느끼지만

기타 줄을 잡은 손가락은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버티며 허공으로 선율을 보낸다

기타(guitar)는 오늘도 기타(其他)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기타 줄을 튕기며 적막을 깨운다

무게가 짓누르는 힘을 견디다 못해

온몸을 떨며 바벨을 간신히 들어 올린 순간,

더 무거운 인생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른다

견디다 못해 찢어진 상처 위에

근육이 흘리는 눈물이 땀으로 뒤범벅된다

감자탕에 뛰어든 돼지 뼈는 마지막 뜨거운 고문에

뼈도 못 추린 채 흥건하게 몸을 내 맡긴다

피 끓는 열기에 녹아드는 감자는

어느새 녹초가 되어 흐물거린다

소주에 뒤섞여 몸속으로 흘러든 감자는

언제 나올지 모를 깊은 심연의 늪에서 절창을 토해낸다

gv40000083286_1.jpg


바람결에 날아가다 바위틈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이 절치부심하다 앞날을 걱정한다

비옥한 땅에 떨어진 친구는 목재로 자라다

목수에게 안타깝게 목숨이 끊겼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갖은 고생을 하다 분재 채집가에게 발견된 분재는

양지바른 곳에서 백년해로를 약속받는다

고생 없이 자란 여름의 넉넉한 나이테가

다른 나무에게도 애정을 담은 나무의 연서를 보낸다

간격을 유지하던 나무줄기가 살짝 흔들리며 가지를 뻗지만

영원히 닿으면 안 되는 거리가 있어야

아름다운 숲을 이룰 수 있다고

스치는 바람을 악보 삼아 숲 속의 나무들이 합창을 한다

마음을 담아 보낸 한여름의 연서에는

한겨울 사투를 벌이며 쓴 난중일기는 없다

자기 몸 안에 아로새긴 여름날의 흔적이

얼룩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끼니도 채우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남긴 흔적은

고단한 한 시절의 난중일기로 나이테 간격을 파고든다

wood-2820581_960_720.jpg


짓궂은 가을바람에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고 처량한 가을의 낭만을 즐기던 단풍잎 한 장

동의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겨울에 떠밀려

어느 순간 불안감을 뒤로한 채

포근한 땅 이불 위로 자기 몸을 던진다

쓰고 싶지 않은 뒤숭숭한 마음이지만

노트북이 어둠 속에서 하얀 워드 화면을 내민다

키보드가 자판으로 내 손가락을 끌어다 춤을 춘다

마우스가 동선을 바꾸며 알 수 없는 길을 간다

동사가 목적어를 데리고 일렬로 걸어가는 행진곡을 만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는 내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몸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