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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일생을 버티게 만드는
그리움 한 벌이다

당신은 일생을 버티게 만드는 그리움 한 벌이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이

현과 플루트와 첼로의 선율을 타고 흐른다

늦가을의 처량한 낭만에 취해

억제할 수 없는 격정으로 파고든다


우두커니 서 있다 불어 닥친 바람에 흔들리며

먼 산을 바라보는 갈대가 갈 곳으로 잃고 헤맨다

라호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기울어지는 서쪽 하늘의 노을을 타고

안타깝게 넘어간다


세상은 언제나 고된 여정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간절하게 그리운 미지의 세계가 있음에

오늘을 선물로 살아간다

내일은 희망과 격정의 노래로 다가올지

절망과 비탄의 음악으로 변주될지

지금 여기서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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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모든 생명체는

목숨 걸고 햇빛이 비추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기울어지는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연이 궁금하다


갈아서 뭉개버려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순간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도 화상 하나 입지 않고

거품으로 항변하는 커피는

누구를 향한 연가를 쓰고 있는 것일까


비바람과 천둥 번개도 이겨낸 노지 배추가

된서리를 맞고도 푸른 잎으로 절망을 항변한다

오늘 밤 몰려오는 긴 어둠의 장막에는

또 누구를 위해 적막 속의 슬픈 연가를

바람결에 실어 나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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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 고요가 찾아왔지만

떠나가는 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을 앞질러간다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온몸을 파고든

그리움의 깊이는 찬물처럼 끝을 모르는 심연으로 향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각형(ㅁ)이 부딪히다

상처받으며 돋아난 새살 주위에

둥근 몽돌 같은(ㅇ) 사랑이 굴러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사’와 ‘랑’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오를 수 없는

벽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추상명사가 일상을 살아가다

한 많은 추억을 먹고 보통명사로 변신한다

오늘은 사랑이라는 추상명사가 그리움에 젖어

하루 종일 양지바른 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허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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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사랑은 동사로 변신해서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여러 가지가 그리움에 줄기차게 입 맞추며

하늘의 별빛으로 무르익어간다

닿아보지 못한 그리움 눈에 선하지만

아이처럼 눈감고 나뭇가지 사이로 눈길을 돌린다


그리움에 지쳐 나도 모르게 마침표를 찍는다

마침표 뒤에는 언제나 때마침 따라오는

말없음표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엎드려있다

언제 이어질 모르는 말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외로움을 달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시궁창이어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있다

고집스러운 막무가내가 온종일 나비를 기다리며

활짝 핀 꽃의 몸부림을 미안해서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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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등지기 전에 바쁘게 움직인 손발들이

쉬지도 못하고 밤새 내릴 이슬방울과 서릿발을 준비한다

상처라는 용광로 속에서 자신을 잃은 단어들이

이슬방울에 세수를 하며 맑은 그리움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별의 아픔도 모르면서

모든 걸 잊기로 결심한 불타는 단풍잎이

자기 몸을 베어내는 듯한

찬바람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움 한 꾸러미 형형색색 옷 입혀

마지막 가는 길을 달래려고

주소 들고 마중 나온다


고뇌로 얼룩진 밤하늘의 별이

그리움의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별들은

어둠의 이불속에서 새벽을 달랜다

살며시 이불 밖으로 나온 아찔한 맨발이

창가에 비친 그리움에게 발길질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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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종이 위에 남긴 그리움의 발자국,

썼다 지웠다 흔적의 깊이만 더해간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말아야 했던 다짐에는

발버둥 치며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만 스며들고 있다


#언어를디자인하라 #언어를벼리다 #언어를벼리지않으면언어가나를버린다 #언어는생각의옷이다 #지식생태학자 #언어를design하지않으면resign당한다 #유영만교수 #내가사용하는언어가나다 #언어는카멜레온이다 #언어는풍경이다 #언어는비늘이다 #언어는문신이다 #단어는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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