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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알 수 없는 내일의 문장이다

당신은 알 수 없는 내일의 문장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방황하는 주어가 

목적지를 모르고 헤매는 명사를 만나

어떻게 걸어갈지 알려주는 동사를 만난다

순식간에 한 문장을 완성하더니

다음 문장을 거미줄 치듯 불러오는 비결은 

어떤 글쓰기 책에서도 만날 수 없다


곡선의 물음표가 허리춤에 품고 있는

호기심이 나른한 한나절을 보내며 하품을 한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많은 의미가

언제 직선의 느낌표처럼 수직으로 달려와 

내 마음에 꽂힐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책은 없다


그리움의 끝자락에 담긴 아쉬움은

왜 날이 저물어감에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깊은 적막 속에서도 소리 높여 아우성을 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들리는 바람에 안간힘을 쓰면서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가

언제나 두려움을 떨쳐내고 

바람을 타고 자신의 몸을 맡길지  

나무에게 물어봐도 며칠간 답이 없다


한여름의 폭염을 쫓으며

온몸으로 항거하는 매미는 안타까운 기다림을 토해낸다

어떤 슬픔의 세레나데를 읊어대고 있는지

매미를 품고 있는 나무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지 

여름의 교과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폭설이 앞을 가로막고 

허공을 무대로 춤을 추며 밤 깊은 줄 모른다

바람을 악기로 연주하려는 눈발의 속마음은

어떤 눈길을 주어야 눈길에서 마주칠지 아는 

눈꽃은 왜 아직 피지 않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엽서를 기다리다 지친 우체통은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에 몸을 떤다

가을 낭만을 담은 소식이 언제 올지 

우체부 아저씨는 왜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피곤함을 잊은 채 몇 달째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책상 위에 짓눌려 쌓여 있는 책들은

언제 숨쉬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왜 나타나지 않는지를 알려주는

책은 왜 없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밤이 되면 할 말이 없으면서도

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을 타고 하늘로 흩어진다

내용이 없는 질문지를 들고 

문을 두드리는 무소식은 

무슨 소식을 전하려는지 알 길이 없다



언젠가 좁은 병 안에 갇힌 와인은

고독이 독으로 바뀌기 전까지 절치부심한다

숨이 막힐 지경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은 덤이다

마침내 세상과 첫 만남의 기적을 일궈낸 와인은 

간직했던 한 많은 시간을 침묵의 절창으로 쏟아낸다


피곤한 하루가 다 가기 전에

잠자고 있던 병(病)들이 저마다의 소식을 머금고

보이지 않는 길로 차가운 밤공기가 엄습한다

조용히 다가오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겪어온 고통의 이력을 병원에서 쏟아낸다


그 누구에게도 물어봐도 정답은 없고

그 어떤 곳에서 자빠져도 

스스로 일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도 없다

도서관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묘수를 알려주는 책도 없고

고수를 만나 대안을 구해봐도 묵묵부답이다



높은 산을 오르다 직면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만나도

구름은 아무 조언도 해주지 않는다

바람은 땀을 식혀주고 산등성을 타고 사라진다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는 

자세를 낮추고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한다


소설로 쓰면 잠자던 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시로 쓰려면 압축과 절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가로막는다

짧은 말로 쓰면 알아듣지 못해서 소설은 안간힘을 쓰고

긴말로 말하면 핵심이 없어서 시는 언어를 아끼는 것일까

소설가와 시인의 화해할 수 없는 사이에

장벽을 부수고 시로 소설을 쓰는 방법은 없을까


오후가 되면 무거운 삶의 짐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거울 뒤에서 머리카락을 가다듬는 속마음이 애간장을 태운다 

도무지 어떤 마음으로 내일을 묘사할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 별이 마련하는 

식탁에게 물어봐도 밤하늘의 별은 이별노래만 불러댄다



세상의 모든 사전을 불태워 남긴 재를

낱낱이 분석하고 해체해봐도 

단어가 품고 있는 속뜻은 알 길이 없다

속마음을 감추고 떠도는 먹구름은 

언제쯤 자기 정체를 밝히며 

반가운 비로 다가올지 오리무중이다


점심을 먹고 길가로 나온 생각들이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고 밖을 헤매고 있다

안에서 만날 수 없는 밖의 즐거움과 통찰이 

낮은 포복 자세로 엎드려서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 지도를 그리며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햇빛의 비수에 상처를 받은 나뭇가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지를 뻗는다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치부심하다 새순을 틔우며

봄 소풍을 기다리는 나무의 인내는 

어디서 배운 지혜의 문장일까



며칠 쌓여 있는 책의 무게에 짓눌려도

가쁜 숨조차 내몰아 쉬지 않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밑바닥에 깔려 더 무거운 인생의 짐으로 눌려 있던

책 한 권이 마지막 반란을 꿈꾸다

어둠이 깔리기 전에 벌써 잠든 이유가 궁금하다


사전 속에 단어들이 

일렬 행대로 초조한 기다림을 먹고 숨을 돌린다

누가 먼저 부름을 받고 문장에 배치될지 

늘 긴장감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드디어 작가의 부름을 받고

백설기 같은 종이 위에서 

다음 단어와 어울려 살아갈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찬바람이 불어와도 늘 그 자리에서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인적이 드문 길모퉁이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

수많은 자동차를 떠나보내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람과 이별을 해도

표정 하나 변화 없이 가는 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의 한결같은 심중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붉음의 끝이 어디인지를 찾아 줄달음치던

저녁노을 옆으로 저물어가는 하루를 

노래하는 새가 날갯짓을 한다

붉게 물든 던 노을은 짧은 하직 인사 뒤에

눈 깜짝할 사이 어둠을 몰고 달려 나온다

새는 구성진 서글픔을 밤공기에 날려 보낸다


한 문장과 함께 가겠어요

어떤 위험이 따라올지 따지지 않겠어요

그것이 적확한 문장인지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 문장이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고 묻지 않겠어요

인두 같은 한 문장과 함께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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