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다반사와 시한부 사이에서 펼쳐지는 무불경(毋不敬)이다
목표에 목숨 걸다 목숨이 끊어진다
인생은 다반사(茶飯事)와 시한부(時限附) 사이에서 펼쳐지는 무불경(毋不敬)이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불교용어가 있다. 일상에서 차나 식사를 하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이지만 그 속에 깨달음의 정수가 들어 있다는 의미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한 말처럼 결정적인 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다반사가 매 순간 펼쳐지면서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時限附) 인생을 산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사람은 남은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순간을 결정적인 순간으로 보내면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가 두 번은 없다는 시에서 힘주어 말한 것처럼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소중한 시간이다. 매번 다른 한순간이 모여서 한평생을 만들어간다.
다반사와 시한부 사이에 살아가는 소중한 미덕이 무불경(毋不敬)이다. 무불경은 '예기'에 나오는 말로, “매사에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라는 뜻이다. 일상다반사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과 사물, 사람과 환경과의 만남은 경이로운 기적이 탄생하는 깨달음의 무대다. 생명체는 물론 모든 비생명체도 그냥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의 이유와 방식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삶을 담담하게 감당하며 살아간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는 없다. 두 번 모든 순간에 부여된 의미의 선물을 붙잡고 어제와 다르게 세상을 맞이하며 자신을 재서술하는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말하는 아이러니스트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다반사와 시한부 사이에서 무불경을 몸소 실천하는 삶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의 하나는 목표를 달성하는 직선주로를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마주침보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느끼는 만족감이나 성취감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질주가 목숨까지 앗아가는 원흉이다. 목표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목표를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디딤돌로 생각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목표 달성 자체만을 강조하고 그 결과에 몰두하다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마주침이나 부산물이 지니는 소중한 의미를 간과하거나 무시해 버린다. 목표를 달성하는 일 말고도 일상다반사는 엄청 많다. 사소한 하루 일과에서도 무불경의 자세로 살아가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게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다 결정적으로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쉼보르스카 시인의 두 번은 없다는 시처럼, 어제와 동일하게 반복되는 순간은 한순간도 없다. 모든 순간은 반복할 수도 없고 공통점도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목표달성은 숙제가 아니라 축제다
목표달성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될 숙제가 아니다. 오히려 목표달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즐기는 축제다. 목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시적 결과물로 생각하는 순간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보다 결과에 치중하게 된다. 자신을 어제와 다르게 탈바꿈시키기 위한 도전 과제로서의 목표가 아니라 일정한 시점에서 반드시 달성해서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노동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목표는 불행을 자초하는 장본인으로 전락한다. 목표는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나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행복’의 원천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지금 그 일을 하는 과정에 애정과 관심이 없는 사람이 결과중심으로 일을 하면 쉽게 지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큰 실패나 좌절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도전하면서 그 일을 즐기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서 생기는 우연한 부산물이 산물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능가할 수도 있다. 목표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목표 이외에 모든 것은 목표달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거나 비효율적 걸림돌일 뿐이다. 반면에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목표라는 결과물은 또 다른 목적지로 출발하기 위한 중간 거점에 불과하다. 목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반드시 달성해야 될 난공불락의 진리처럼 이상적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목표는 주어진 여건에 따라서 달성 수준이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 수단일 뿐이다. 오늘의 목표는 언제나 내일의 더 의미심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디딤돌로서의 수단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더 원대하고 심장 뛰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려가는 기술이다. 잘 내려가지 못하면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 올라가는 속도보다 내려가는 밀도가 행복감과 직결되어 있다. 내려가는 연습은 지금까지 배운 게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니 새로운 생각(rethinking)과 새로운 기술(reskill)로 무장하는 연습이다. 종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은 더 이상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얼마나 빨리 올라가서 목표를 달성하느냐보다 얼마나 더 오랫동안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다시 올라갈 힘을 바닥에서 기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혹 달성하지 못한 목표가 있다고 할지라도 힘을 빼고 바닥으로 내려가 상황변화에 내 몸을 적응하는 느린 기다림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은 속도의 끝에서 밀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시점이다.
고정된 시선에서 눈을 떼고 시야를 넓히자
행복은 ‘속도’에서 오지 않고 ‘각도’와 ‘밀도’에서 온다. 목표 달성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각도는 좁아지고 매 순간 삶의 충만감을 느끼는 밀도감 역시 떨어진다. 2007년 4월 11일 밤 12시 50분, 잠깐 졸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차는 전복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자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분당서울대 병원으로 급송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일명 411 사태라고 명명했다. 일생일대 최대의 대형 참사였다. 죽음의 일보직전까지 내려가 보았다. 그때 깨달은 체험적 지혜는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좁아진다는 사실, 두 달 후에 퇴원한 다음 교회 다니시는 분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의 주행속도에 따라 찬송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60Km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80Km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100Km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120Km 주여 나 이제 갑니다!
즉 속도를 높이면 주님을 빨리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각도가 좁아지는 이유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 주변의 다양한 행복을 즐길 수 없다. 가을날 코스모스 핀 길을 시속 200Km로 달리면 코스모스는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속도가 가을의 아름다운 풍광도 삼켜버린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각도를 넓혀야 한다. 각도를 넓혀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도 볼 수 있다. 경제 빙하기가 계속될수록 앞만 보는 시선보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야가 더 중요하다. 시선이 고정되면 사선도 무의식 중에 넘어버린다. 고정된 시선에서 눈을 떼고 시야를 넓혀야 이전과 다른 시각이 생긴다.
강남에 50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하는 두 부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야근도 불사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아파트를 마련하는 순간, 부부는 진한 행복감이나 가슴 벅찬 성취감을 맛볼 겨를도 없이 또 다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간다. 베란다도 테라스 카페처럼 꾸미고
비싼 독일제 커피 머신도 설치하고 극장의 음향시설처럼 첨단 오디오 시스템도 설치했다. 하지만 집안의 모든 물질적 시설을 즐기는 사람은 부부가 아니라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두 부부는 자신들이 이룬 물질적 시설을 향유할 시간이 없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야 한다.
부부는 아파트 평수가 부족해서 더 늘려야 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목표를 향해 질주했다. 아침 먹을 시간도 없어서 운전하면서 짜 먹는 죽으로 식사를 대신하면서까지 목표를 향한 질주를 계속하다 신호등을 잘 못 보고 안타깝게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그 집안의 모든 시설을 즐기던 가정부가 결국 그 집을 차지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행복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에서 나온다. 밀도는 우리가 삶의 매 순간 느끼는 삶의 행복감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야 하지만 다른 목표가 이전과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를 요구한다. 목표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마지막 골인 지점이 아니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지나가야 할 간이역에 불과하다. 목적지를 향한 질주가 행복이 널려있는 수많은 간이역을 지나치게 만드는 원흉이다.
물건을 사지 말고 경험을 사라
제주도에서 100Km 마라톤을 뛴 경험이 있다. 첫날 한라산 중턱을 돌아오는 30Km 코스부터 둘째 날 해변도로 30Km를 달리는 코스는 물론 마지막 날 오름 언덕 20Km를 왕복할 때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는 일본 선수는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전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이다. 선두권에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후미에서 뛰는 나 같은 사람은 1등이 목표가 아니라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즐겁고 행복한 마라톤을 하는 즐기는 경험을 통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기는 것이다.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리다 경제 빙하기에 동사당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설정했던 전혀 다른 목표를 설정해 놓고 어제와 다른 방식으로 목표 주변을 배회하면서 상황변화도 감지해야 한다. 목표 설정 자체가 순식간에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등이 목표인 사람은 기대했던 결과를 달성해서 성취감을 맛보았지만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제 1등이 목표로 삼았던 목적지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없어질 수도 있는 시기다. 목표는 한 번 정하면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달성해야 되는 절대적 이상지대가 아니다. 지금은 목표를 설정했어도 그것이 과연 달성할만한 목표인지를 수시로 의심해야 되는 상황이다. 1등을 목표로 달리기보다 뒤에서 천천히 달리면서 주변 상황변화를 관조하는 목표 달성 여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나처럼 뒤에서 달리는 사람은 달리기로 일등 하기보다 달리면서 제주도의 풍광을 감상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이유다. “멈출 때마다 나는 듣네”라는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애머슨의 명구를 필사하다가 느낀 깨달음으로 시작하는 고두현 시인의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는 사랑할 시간을 따로 떼어 놓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 시를 놓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사랑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울리는 한 편의 경종이자 각성제다.
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목표 달성하다 목숨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핵심가치(열정, 혁신, 신뢰, 도전, 행복)대로 매일 생각하고 행동하며 작은 스토리를 만드는데 전력투구한다. 5가지 핵심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만드는 스토리를 근간으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주력한다. 사람은 목표가 주는 숫자보다 숫자에 담긴 의미에 목숨을 걸 때 행복해진다. 5가지 핵심가치는 내가 사람을 판단하거나 어떤 일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자 규범이다. 물건을 사는 욕망에 끌려다니기보다 핵심가치 관련 경험을 사서 어제와 다른 감각적 각성체험의 얼룩과 무늬를 만들어나가는 삶을 사는 게 행복한 삶이다. 목표 달성하다 목숨 끊기지 말고 목표 달성하는 과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핵심가치 중심 경험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