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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른 나뭇가지에서도
꽃을 피우는 낯 모를 기쁨

당신은 어설픈 흉터라도 보듬어주는 낮은 숨결입니

당신은 마른 나뭇가지에서도 꽃을 피우는 낯 모를 기쁨입니다



평생을 그늘 속에서 숨어 살던 이끼 한 포기

새벽이슬 기다리며 밑줄 그어진 한 문장에게

참을 수 없는 신경쇠약의 산골 생활을 이야기해도

당신은 어설픈 흉터라도 보듬어주는 낮은 숨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리어카 한 대

그 위에 실린 폐품 기타가 

찬 바람에 울리는 서글픈 선율에도

당신의 아픈 과거가 실려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정처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곳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두려움을 머금고

물길을 따라 흐르던 물살에

잠시 햇살의 온기가 전해졌어도

당신은 놀라지 않고 목적지를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무수한 오해의 젖을 빨며

서늘한 찬 기운을 머금고 주인을 기다리던

한 잔 술의 정적에도

살갗을 비벼대는 애처로움이 담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밤잠을 설치며 신음하던 새벽녘의 적막이

골목을 헤매며 수소문하던 나그네 발자국을 만나

우연히 밟힌 흩날리던 지푸라기조차 무시해도

당신은 세월의 무상함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찬 비바람에도 엉거주춤 버티다

새벽 찬기운을 머금고 바닥에 떨어진 감에게

앙상하게 말라붙은 나뭇잎 하나가 말을 걸어도

당신은 멋쩍은 내색이라도 보여주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가을 단풍이 형형색색 물들여 연정을 품어도

소식 없는 안타까움에 몸을 떨던 우체통이

온종일 내리는 비에게 비애 섞인 애통함을 말해도

물컹한 서글픔에도 견뎌내는 내공이 당신에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종일 동분서주했던 발자국이 

지친 얼굴로 피곤함을 감춘 채 이불을 덮으려 하자

체념한 저녁 반찬이 마른 눈물로 하소연을 해도

당신의 하루는 서늘한 따듯함의 문장으로 간직되기를 기도합니다.


노을의 낭만에 한 눈 팔려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야를 가리며 잠시 머물던 먹구름 한 점이

난해한 위치에서 어둠으로 변신하여 급습한다고 해도

오늘 당했던 매옴한 이별의 사연은 허공에 날렸으면 좋겠습니다.



찬기운을 머금은 겨울비가 처마 끝에서 사정없이 떨어지고

떨어지다 놀란 낙엽 한 장 비바람에 흩날리는데

불만으로 가득 찬 커피 한 잔이 세월을 한탄해도

당신은 소금도 설탕으로 바꾸는 변신술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갇혀 있던 사소한 흐느낌이

빈자리를 찾아 머뭇거리는 사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과 마주쳐도 

당신은 흐릿한 추억마저도 그리움의 편지에 담아내면 좋겠습니다.


섣부른 소망과 결탁하거나 야합을 해도

희망은 오지 않는 미래를 붙잡고 사투를 벌이는데

이미 기울어진 서산의 해는 절망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 

당신은 그럼에도 뒷걸음치는 낙망보다 낙관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루해가 저무는 퇴근 무렵 뒷모습이 다가와

아침에 데리고 온 그림자의 주린 고민을 묻는 사이

창밖을 지나던 헛기침 소리에 종적을 감춘다고 해도

당신은 식은 밥상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깊어가는 밤의 적막에 내려앉은 무거운 사연이

흐릿한 혈관 사이로 흘러가는 낮은 힘겨운 고뇌를 만났지만

어느 사이 문 닫고 갈길을 잃은 침묵의 메뉴판이 방황을 해도

당신은 한 많은 눈가에 눈길을 보내주는 따듯한 손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의문부호가 품은 심각한 의심이 그 깊이를 모르고 있을 때

단 한 번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 마침표가 나타나

의심에 휩싸인 의혹의 화살조차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은 물음표가 품은 문제의식을 존중해 주면 좋겠습니다.



세상만사 지나가는 이야기로 질척이며 풀어내던 농담이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 촌음을 다투던 불구의 시간을 만나

불온했던 한 순간의 꿈이 품은 추억을 절름거리며 이야기해도

당신은 각성의 흔적을 찢어진 추억의 한 페이지에 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해독하는 방법을 동원해도 해석되지 않는 순간과 순간 사이

알 길이 없는 침묵과 고독이 사이를 메꾸는 시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음이 불현듯 날아들어도

당신은 소음도 전율하는 소리로 번역하는 언어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형용사 형님들이

정체를 모르는 수많은 명사들을 만나 

상상 초월의 변신을 약속한다는 흥정이 오고 가도

당신은 탕진된 감각으로 허기를 달래는 오솔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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