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는 한 번도 홀로인 적은 없다

영화, '위대한 작은 농장'을 보고 느낀 생태학적 깨달음

우리는 한 번도 홀로인 적은 없다:

영화위대한 작은 농장(The Biggest Little Farm)을 보고 느낀 생태학적 깨달음


미국의 TV 다큐멘터리 감독인 존 체스터는 어느 날 동물 학대 현장을 촬영하다가 마주친 강아지를 반려견으로 입양하고, '토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문제는 체스터와 아내가 집을 비울 때, 토드는 분리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의 항의가 빗발치는 순간부터 생긴다. 거대한 변화는 작은 다짐이나 계기로 시작한다. 분리불안으로 괴로워하는 토드와 건강한 자연식재료로 요리를 하고 싶은 몰리의 꿈을 위해 결단을 내린다.



체스터 부부는 고민 끝에 황무지나 다름없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24만 평 규모의 '애프리콧 레인 농장'을 사들이고 귀농을 실천에 옮긴다. 도착해 보니 그야말로 막막한 황무지가 아연실색하게 만들 정도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농장과 황대한 첫 대면을 시작한다. 유기농장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모르는 체스터 부부는 자연 농법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데 스승이 필요했다. 바로 앨런 요크를 멘토로 모시고 황무지에 가까운 폐허 농장을 다시 비옥한 토지로 바꾸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비옥한 토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특정 작물이나 동물만 길러서는 안 되고 가급적 다양한 동식물은 물론 심지어 야생동물까지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과 공영의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는 멘토, 요크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쉽지 않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특히 식물은 물론 미생물 없이는 비옥한 땅을 만들 수 없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생물 다양성과 복잡성의 정도를 높이기 위한 많은 노력을 전개한다. 다양성과 복잡성의 정도가 새로운 가능성을 낳은 척도가 된다. 생물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외부의 잦은 위협이나 이상 사태에도 파괴되지 않고 생명성이 유지될 수 있음을 자연에서 배운다.


40여 년 동안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완벽한 숲을 조성하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존과 몰리는 먼저 땅을 살리기 위한 유기농법을 시작한다. 지렁이가 흙을 일궈내면서 자연산 유기농 비료를 만들고 풀을 부패분해시키는 퇴비 시설을 짓고, 분해작을 촉진하는 미생물을 키우고, 피복 작물을 심는다. 피복작물을 재배해서 소와 양의 먹이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작물을 먹은 소와 양의 배설물은 다시 땅에서 분해되어 작품의 거름으로 작용한다. 점차 생명성을 되찾아가는 대지에는 돼지 엠마, 수탉 기름기, 목축견 카야와 로지 등 소, 양, 염소, 닭, 오리 등 다양한 종류의 가축을 방목하고, 75종의 과실나무와 200종 이상의 작물들을 키우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순환시키는 유기농법으로 8년의 노고 끝에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지상낙원을 건설했다.  



황무지가 점차 푸르름을 띠면서 대지가 살아나고 그 위에서 동식물이 어울려 위대한 대자연의 하모니를 연주하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게 자주 터진다. 존과 몰리 부부는 잘 익은 과일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새 떼로 인해 대부분 과일은 가축 차지가 되는 자연재해 앞에 한숨만 쉴 뿐이다. 과일 농사가 풍년을 이룰수록 새는 더 많이 날아들고 농장이 번성할수록 더불어 생명체의 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유해요소 또한 더 많이 늘어난다. 하지만 새를 사냥하는 독수리가 나타나자 그 많던 새의 개체수가 현격하게 줄어드는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하지만 자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순환을 거듭하면서 다른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부각된다. 자연에는 홀로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다. 모두가 연결고리로 물고 물리며 돌아가는 거대한 연대망 속의 부분일 뿐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농장의 과일나무엔 진딧물이 끓이질 않고, 작물의 잎이나 과일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달팽이가 먹어 치우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 번식한다. 달팽이로 인해 농작물의 폐해가 발생하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본 부부는 뜻밖의 자연적인 해결책을 찾아낸다. 방목하던 오리에게 달팽이는 둘도 없는 맛있는 간식이 되어 단숨에 해결된다.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기만 하면 코요테가 불시에 나타나 애꿎은 닭과 오리 수십 마리를 죽여놓고 사라진다. 존은 급기야 총으로 고요테를 사살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양치기 개가 야밤에 급습하는 코요테의 접근을 가로막자 코요테는 다른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도중 농장 주변의 골칫거리인 뒤쥐를 잡아먹는다는 걸 깨닫는다. 사실 뒤쥐는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한 해의 농사를 망치게 만드는 주범일 수도 있는데 닭과 오리를 사정없이 죽이는 코요테가 체스터의 골칫덩어리인 뒤쥐를 잡아먹어줌으로써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한 편에서는 문제였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 문제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바뀌는 것이 자연의 위대한 순환 원리다. 실패로 드러나는 문제가 또 다른 측면에서는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해결대안으로 부각되는 게 자연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경이로운 지혜다. 단편적인 시각과 관점으로 접근해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 연결관계를 기반으로 해결책을 구상하면 그 순간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해결되지만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생태계는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고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결과에 작용하는 원인은 참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존과 몰리의 아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농장으로 이주하게 만든 주인공 토드라는 반려견은 숨을 거두고 다시 자신을 뛰어놀게 했던 대지로 돌아가며 다른 생명체의 거름으로 작용한다. 비옥한 땅을 만드는 데에는 동물의 배설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가 배설한 똥에 파리가 들끓기 시작하면서 낳은 알은 구더기가 되는데, 구더기는 그 자체만으로는 골칫덩이다. 한 발 물러나서 구더기를 관찰하는 순간 구더기는 닭의 먹이가 되고 그 덕분에 파리 개체수는 정상으로 유지된다. 땅속에서 자라는 90억 개의 미생물과 세균은 땅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휘저으며 분해를 반복하며 살아 숨 쉬고 있다. 생물 다양성이 확보되면 그들 간의 먹이 사슬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해결책으로 골머리를 앓던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곳이 바로 자연 생태계다. 과연 자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자연이 그 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회의도 했지만 역시 자연은 위대한 해답의 보고였다. 



자연에서 자라는 생명체의 다양성과 복잡성의 정도가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한다는 사실은 자연에서 배우는 가장 소중한 교훈 중의 하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관찰을 하면 생태계를 복원시킬 수 있는 참신한 발상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당장 시급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등장하는 골치 아픈 문제도 한 발 물러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놀라운 복원력과 순환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자연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지상 낙원이 아니다. 자연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놀라운 생태계의 유지와 발전 원리로 상상을 초월하는 복원력을 지니고 있다. 농장이 번창할수록 새로운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이런 문제가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자연에서 농장을 가꿔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인간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분명한 실패지만 놀랍게도 그런 실패가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는 동인임을 알 수 있다. 야밤의 불범 침입자 고요테가 닭과 오리를 죽이는 주범일 때는 심각한 문제였지만 식물의 뿌리를 해치는 뒤쥐를 잡아먹는다는 측면에서는 생태계의 엄청난 아군이자 우군이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중심으로 바라볼 때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개별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와 연대 속에서 어떤 순환적 과정을 통해 흐름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구조와 관계가 보이는 현상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숨은 동인들이다. 내가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생명체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비밀 열쇠를 쥐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자연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영향력을 주고받는 숨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느 한 개체가 이룩한 독창적인 산물이 아니다. 자연은 무수한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어진 위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는 위대한 하모니의 산물이다.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한 잠재적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한순간도 홀로인 적이 없었다. 완벽하다.”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핵심 메지지가 담긴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에게 사소한 일도 누군가에게는 수고한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